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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May 11. 2022

[15] 보통사람들의 밤

서민음식의 탄생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수줍은 경상도 말투로

선거유세장에서 그는 늘

자신을 보통사람이라며 강조했다.


노태우의 자서전, 그리고 그의 선거 포스터


87년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 선언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취임행사의 이름을

"보통사람들의 밤"이라 공식적으로 칭했다.


취임행사에는 버스운전기사와 안내양, 전화교환원,  

나환자, 지체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

약 3,500명의 보통사람들이 초대됐다.


취임 행사장에는 보통사람들을 위한 서민음식인

김밥과 순대, 어묵, 소주, 막걸리가 차려져

자유로운 행사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뛰어난 능력과 재주가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 취임식을 마치고

이 자리에 서게 되니 감회가 깊습니다"


유독, 평범한 사람이자 보통사람이라는 수식어를

강조했던 그는 사실 전두환 전 군사정권의 후임자이자

하나회의 연으로 이어진 12.12의 주역이었다.




80년대는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잔재가 남아있는

어두운 정치의 지형이었다.

민족문화 창달이란 명목으로 국풍 81, 프로야구,

아시안게임, 올림픽 유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치적 과오를 3S로 가렸던

보여주기 과시용 행정의 끝판왕이었던 전두환.


뜻하지 않은 풍작과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라는 3저로 인한 호황이  

정치의 과오를 민족문화 육성이라는 색채로 가리기 쉬웠고,

군부의 색채는 보통사람이라는 보기 좋은 이미지로

포장되기도 쉬웠던 시절이다.


보통사람의 결말

보통사람은 12.12와 수백억의 비자금으로

퇴임 후 징역 17년을 선고 확정받게 된다.

보통사람 대통령의 씁쓸한 퇴장이었다.




이때부터였을까.

서민음식은 정치의 표본이 되기 시작했던 게.

YS가 자신의 청렴, 검소, 개혁의 상징을

칼국수로 대변하기 시작하면서

MB는 재래시장의 허름한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 시원하게 먹는 이미지로

서민을 위한 경제 대통령이라는

표상을 만들었다.


유독 선거철마다 시장을 찾아 분식을 먹고,

어묵꼬치 하나 먹는 장면들이 많이 연출된다.

심지어 나경원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로

노량진 수상시장을 방문해

통 개불을 먹는 장면까지 연출되기도 했다.


그들의 서민음식


처음에는 굉장히 신선한 정치광고라고 생각했다.

국밥 한 그릇 먹는 이미지가,

서슴없이 시장을 찾아 서민들과 웃으며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이미지가

나름 진정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진한 믿음이었다.


MB는 대통령 재임 기간에

'노점상 없는 깨끗한 거리'를 만들겠다며

무차별적으로 노점상들을 단속했다.

서민음식을 먹던 선거철 이미지와 달리

내빈 만찬에서 먹던 샥스핀과 송로버섯이

그 신뢰를 급격하게 무너뜨리기도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인데

물론 값비싼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몸보신을 잘해 체력을 길러 나라의 살림을

잘 육성하는데 노력한다면 무슨 문제겠는가.


다만, 서민정치라며

내세운 그 허세들이 너무 꼴이 안 좋은 탓이다.

차라리 보통사람들의 밤을 열지 말든지...




국민소득이 만불을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이젠 월급봉투 받는 날만  

치킨이나 피자를 사 먹는 시대는 지나갔다.

분식 값도 더 이상 서민들이 먹던 값싼 시대를 지나

떡볶이 하나에 만원도 훌쩍 넘어가는 시대다.

오히려 친환경 식재료로 만든 김밥은

한 끼 밥값을 훌쩍 넘기기도 하고,

커피 한 잔 값이 밥값보다 비싼 곳도 있다.


가난하고 한 끼 밥상조차 힘들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다.

허리띠 졸라매고 겨우 끼니를 해결하며

살았던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밥상 정치가 중요했고,

보통사람의 시작은 호응이 좋았다.


다만, 그 보통사람, 서민, 문민, 동네형...

이런 이미지가 어떤 보통의 기준을 넘어선

보통이 아닌 보통사람인 척하는 삶을 보여줄 때

정말 서민들이 갖는 박탈감은

더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우리 정서에 인이 박힌 "배고픔의 향수", "가난의 기억"

"보릿고개의 정서", "근검절약의 미덕"은

나라를 이끄는 통치자들이 가슴에 깊이 박아야 할 이다.

더 이상 표를 얻기 위한 보여주기 서민이 아닌

서민 속의 삶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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