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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Jan 23. 2024

[암투기 2]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

발암률 높은 성격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비법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서강대교를 건넜다. 새벽 3시였다.

방송 일이 워낙 갈팡질팡 스케줄이라

시사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밤새는 일도 흔하고

자정을 넘기면 택시 잡기가 여간 쉽지 않아서

가끔은 걸어서 한강 다리를 건넌다.


무리한 탓이었나.

다리를 반쯤 건넜을 무렵 우산은 바람에 뒤집히고

결국 온몸으로 폭우를 받아냈다.

동남아 스콜처럼 그날 밤 폭우는 그렇게

억수같이 쏟아졌다.


물에 빠진 생쥐가 돼 집에 들어온 후

아이들이 깰까 봐 조심스레 화장실에 젖은 옷을

대야에 담아놓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들고 며칠간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조금만 욕심 덜 부리고 일찍 들어올걸...

돈 좀 더 주고라도 블랙 택시라도 잡아타고 올 걸...

그것도 안 되면 잠든 아내라도 깨워서 부탁이라도 해볼걸...


아픈 뒤에 오는 후회는 다 부질없지만

그래도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원인을 되짚어보는 건 쓸모 있는 일이다.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들이 요인이었을까


철부지 같은 후회.

사실 암환자라는 낙인이 찍힌 뒤

들었던 후회에 대한 기록이다.


마흔 나이를 살면서

가장 많이 했던 바보 짓은 나를 학대하는 행위였다.

일도, 육아도, 사람 간의 관계도 모든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일.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는 곧잘 듣지만

내 안에 담아둔 스트레스는

결국 장기 곳곳으로 침투했겠지.

부정적인 생각들은 내 심신을 공격했고,

술로, 담배로, 커피로... 몸에 해로운

진통제를 곳곳에 맞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주변 상황이 좋았을 때가 언제 있었을까?

입사 이래로 나날이 쇠퇴해 가는 방송국,

매번 파업이다 집회다 추위에

여기저기 거리로 나뒹굴어도

결국 도루묵처럼 후퇴하는 회사...

회사 월급은 그대로인데 뭐가 좋다고 그렇게

회사에 온몸을 바쳤을까.


프로그램 하나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맺게 되는 모든 관계들.

작은 흐트러짐 하나 보기 싫어서 스스로 밤을 새가며

스스로 감당하게끔 돌렸던 무한책임들이

대체 무슨 소용이었을까.


판결문, 회계자료, 수사자료 등

산더미 같은 자료를 쌓아놓고

밤새 가면서 읽었던 것들.

방송이 나가도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데

난생처음 보는 현장에 가서 취재원과 몸싸움해

어떤 정당성을 얻어내고, 자칫하면 소송당하고, 

생명에 위협도 느끼는 거친 취재는

대체 무엇을 위함이었을까.


가끔은 산재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정말 우스운 후일담이지만

7월 말 방송이 나가고 이틀 후인 8월 초에 수술을 했다.

수술 이틀 전까지 그렇게 지독하게 몇 날 밤을 새웠는지 모른다.

그것도 내가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가장 밀도 있게 싸웠던 주가조작 아이템이었다.

취재했던 업체 관계자와 주주들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전화도 문자도 필요 외에 닫아두었지만 

워낙 입원기간이 지루하게 길었고,

그래도 핸드폰까지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니

암 수술 후에도 스트레스는 계속됐던 것 ㅠㅠ


결국, 병가 중에도 회사에 나가 소송 준비를 했고,

내가 취재를 시작하고 만났던 모든 날들과

모든 사람들의 기록들을 정리했다.

취재했던 업체 세 곳은 당시보다 주가가

8분의 1 토막이 났다.

그리고 몇몇 쩐주와 기획자들은

큰돈을 벌고 잠적했다.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해서 나중에

주가조작 편에 별도로 기록해야지)




이쯤 되면 내 병의 원인이 거진 증명된 셈이다.

사실 산재일 가능성이 높다.

13년째 방송일을 하면서 쉬운 프로그램을

맡아본 적이 별로 없다.

쉬운 프로그램도 어렵게 푸는 스타일인지 모르겠지만

늘 긴장감 속에 일을 했고, 늘 긴장 속에 쉬었다.


한때 술과 담배는 일을 위한 필요충분제라는

생각도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암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를 괴롭힐지 모른다.




오늘은 결론이 가장 중요하다.

암에 걸린 후 내가 바꾼 가장 큰 포인트가

이것이기 때문이다.


"매사 한 걸음 뒤떨어져 보는 것"


내가 나를 스스로 자학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일은 내가 풀어야 한다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그냥 믿고 맡겨두는 것. 그리고 방관하는 것.

결국 내가 아무리 스트레스받아도 안 될 일은 안 되는 거!

작금의 회사 상황이 위기에 직면했고,

제작자율성 따위 x나 갖다 주라며

모든 경험들이 부정당할지라도

이전 같으면 엄청난 스트레스와 함께

매일 술로 지새우겠지만

이젠 남일처럼 생각하게 다.


어차피 내가 발버둥 친다고 풀릴 수 있는

일들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마냥 방관할 수는 없으니

뭐라도 출구전략은 짜야 되기 때문에

도피처 하나는 만들 생각이다.

그렇게 마인드컨트롤하는 게 꽤 효과가 좋았다.


이제 모든 일에 관대해졌다.

이제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이제 모든 일은 내가 해결해야 된다는

자존심 따위는 내세우지 않는다.

이제 모든 일에 가장 큰 중심은 내 행복이다.


나는 좀 더 나를 사랑하고 아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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