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기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과자, 새우깡
"파블로프의 개"라는 조건반사 실험이 있다.
개가 먹이를 보면 반응하며 침을 흘리는 것은 학습되지 않은 반응인데
먹이를 주는 조교만 봐도, 먹이 주기 전에 종을 울려도
반복된 학습의 결과 침을 흘리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뜬금없이 파블로프의 개와 새우깡을 연상시킨 이유는
바로 새우깡 봉지만 봐도 내 침샘의 자극이 극대화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새우깡이라는 과자를 즐겨 먹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미 내 기억 속, 새우깡이라는 과자 맛은
자극적이라기보다 단짠단짠한 맛이었다.
그런데 이 새우깡에 대한 놀라운 경험담이 있다.
수술 후 보름쯤 지났나 막 상처부위가 아물고 있을 무렵
아이가 새우깡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의사가 침샘에 자극이 될 수 있으니
한달간 먹지 않길 당부한 건
"시고" "맵고" "단" 음식이었다.
새우깡은 단맛은 있지만 짠맛이 더 강하다.
하나만 먹어볼까? 하며 새우깡 봉지를 본 순간
갑자기 침샘에 엄청난 자극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과자도 아니고, 자극적인 맛도 아닌데
갑자기 침이 왜 이렇게 고이는 걸까???
아이가 과자 먹는 소리만 들어도
마치 내가 씹는 것처럼 침샘이 아려왔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음식만 보면 무조건 반사가 온 걸까?
침샘은 위 그림처럼 귀, 혀, 턱 쪽에 분포되어 있는데
귀밑샘이라 불리는 가장 큰 이하선, 혀아래 있는 설하선,
그리고 턱 아래 위치한 악하선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 종양의 발병확률이 가장 큰 부위는 당연히
가장 크기가 큰 이하선이다.
우리가 흔히 볼 아래가 부어오르는
볼거리 바이러스가 바로 이하선 쪽에 발병되는
유행성 이하선염이고,
내 몸에 생긴 악성종양도 바로 이하선(귀밑샘)암이었다.
특히 이하선의 위치는 우측 사진처럼 안면신경이 모두 모이는 곳으로
종양이 심해지거나 수술이 자칫 잘못될 경우
안면신경마비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그래서였나? 이하선암이었던 나의 케이스에서는
유독 침이 고일 때 통증이 심했던 것 같다.
안면신경 마비 증상이 안 왔던 덕분이기도 하고.
침샘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볼줄이야.
새삼 아파보니 몸 구석구석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수술부위는 생각보다 컸다.
실제 발병 부위는 아래 사진에서 동그라미 쳐져 있는
귀 옆에 있는 볼 부위였다.
손으로 눌렀을 때 딱딱하게 만져졌고,
실제로 저 부위에 있는 혹을 떼 내는 게
이렇게 큰 수술이 될 지 예상하지 못했다.
수술 전 의료진의 설명에 따르면
귀 뒷부분을 절개해 발병부위까지 연다.
안면신경이 모여있는 부위다보니
신경을 잘못 건드릴 경우 안면마비가 올 수도 있다.
아무래도 얼굴 부위이다보니 귀 뒤로 빼는 건
가급적 흉이 덜 가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수술이 끝나고 찍은 사진에 따르면...
아래와 같이 귀를 거의 절개했고,
머리 뒷부분까지 상당히 큰 부위를 열었다.
당시 찍은 사진을 보고 상처부위가
제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이 심했지만...
현대 의약기술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재생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6개월이 지난 지금 비로소 실감한다!!!
수술이 끝나고
한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못했다.
일단 조금이라도 맛이 느껴지면
정말 침샘 부위의 고통이 상당히 컸다.
병원 밥은
그래도 환자 맞춤형이긴 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완전히 맞출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체로 간이 된 음식이 자주 나오는 편이었는데
가끔 먹고 싶었던 과일이 나오면
아린 침샘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래도 요즘 병원 밥의 퀄리티는 상당히 좋다!
살다보며 우리는 맛을 느낀다는 사실에
꽤 둔감한 편이다.
물론 맛집 찾아 곳곳을 누비기는 하지만,
그 맛을 느끼게 해주는데 이 침샘의 역할이 무엇이고
침샘이 없다면 과연 어떤 맛일지
아프기 전까지 굳이 생각해볼 일이 없다.
침을 흘리는 건 숨쉬는 공기처럼
우리 몸이 자연적으로 반응하는 행동이겠지만
새우깡을 보면서 침샘이 반응하는 것을 느끼면서
사소하디 사소한 몸 조직 곳곳에 있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 몸에 있는 수많은 부수물들
침, 땀, 변에 이르기까지 몸이 생존을 위해
그 기능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금도 그 자리에서 최대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우깡 한 봉지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