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의 서재

그 여자네 집 -박완서

by 달콤해진

우리가 잃은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이 소설은 박완서의 작품으로 작가는 서울대 문리과 재학 중 한국전쟁을 겪고 학업을 중단했다. ‘내가 쓴 글들은 내가 살아온 시대의 거울인 동시에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라는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가 겪은 시대와 그 아픔에 관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의 주된 화자는 여류 원로작가이다. 그래서 읽는 도중 작가의 수필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소설 도입부에서 원로작가인 주인공이 어느 시 낭송회를 준비하며 우연히 어느 잡지에서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을 읽고 자신이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와 너무나 같아서 놀랐다며 시의 전문을 소개한다.


‘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애틋한 불이 켜진 창, 동네 어귀의 그 집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시를 읽으며 독자는 눈을 감으면 그림처럼 그려지는 고향의 그 집, 그리고 사랑하는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안으로 성큼 들어가게 된다.


화자가 이 시를 쓴 사람이라고 착각했을 정도인 그 주인공은 화자의 고향마을인 행촌리에 살던 만득이였다. 시골 아이답지 살갗이 희고, 맑은 눈에 속눈썹이 긴, 마음씨까지 예쁜 곱단이와 총명하고 생긴 것 또한 관옥 같았던 만득이는 마을 어른들도 서로 이어주려 점찍어둔 아이들이었다. 이 둘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1940년 일제 강점기 말기 그리고 2차 세계대전, 1945년 해방과 6.25전쟁 이라는 시대적 비극을 고스란히 겪어내며 슬픈 결말을 맞는다.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어요. 곱단이가 딴 데로 시집가면서 느꼈을 분하고 억울하고 절망적인 심정을요. 나는 정신대 할머니처럼 직접 당한 사람들의 원한에다 그걸 면한 사람들의 한까지 보태고 싶었어요.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

“삼천리강산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기쁨, 그 향기로운 숨결을 모조리 질식시켜버리니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한 참의 세월이 흘러 화자와 마주친 만득이의 이 얘기에 독자는 가슴에 무언가 쿵 하고 묵직한게 떨어진 느낌을 맏을 것이다. 잊고 있었다. 그 정신대라는 하나의 비극적 사건의 피해 자인 할머니들이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지에 관해서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우리가 잃은 것은 모든 것이었다. 전쟁은 그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을 피해자로 만드는 일이었다. 머리로 알던 것이 가슴으로 내려와 한참을 먹먹했다.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을 잊지 않는 것. 오늘도 평화의 소녀상에 꽃을 놓는 것은 그 시절 우리가 잃은 모든 것을 함께 기억하고픈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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