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현 Aug 20. 2021

"뉴스 좀 꺼주시겠어요?"

뉴스를 볼 수 없었던 방송기자

"죄송하지만 뉴스 좀 꺼주시겠어요?"


한동안 TV 뉴스를 보지 못했다. 소리만 들어도 속이 메스꺼웠다.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가 너무 힘들어 꺼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기사님께 유일한 낙일 지도 모를 라디오를 꺼달라고 하는 건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내 직업은 방송기자다. 뉴스를 볼 수 없던 그때도, 그 이야기를 시작하는 지금도 그렇다.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긴 어렵지만 약 5~6년 전쯤의 얘기다.


정말 괴로운 건 보도국이었다. 당시 보도 사방팔방에 TV가 있었다. 우리 채널은 물론 모니터링을 위한 타 채널과 24시간 뉴스 채널, 외신까지... TV가 안 보이는 사각지대를 찾는 게 힘들 정도였다. 기사를 쓸 땐 이어폰을 끼면 조금 나았지만, 모니터링 당번일 땐 피할 재간이 없었다.


보도국 외에도 뉴스를 피할 수 없는 곳 많았다. 주말에 시댁에 가면 집보다 훨씬 큰 TV로 우리 뉴스를 봐야 했다. 시부모님의 배려가 며느리에겐 고역이었던 셈이다. 뉴스 시간에 회사 동기의 집에 놀러 갔다가 당연히 켜 두었을 TV를 꺼달라고 한 적도 있다. 당시에는 식당이나 병원 가도 우리 채널을 틀어놓는 곳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지만, 그때의 내겐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행히 시간이 흐른 지금 그렇지 않다. 당시 왜 뉴스를 보기 힘들었는 지를 한 마디로 정리하긴 어렵다. 다만 그때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이야기는 있다.


히든싱어에 나왔던 가수 신지의 고백이다. 수백번, 수천번 무대에 올랐을 그가 어느 날 무대 울렁증을 겪었다고 했다. 그 좋아하는 노래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고 한다. 한두 해도 아니고 수년간 정상을 지켜온 코요테의 보컬이 겪었을 일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주니어 기자였던 내가 신지만큼 영광을 누려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 빠져 지냈던 적은 있었다. 현장에선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내게 없는 대담을 쥐어 짜냈다. 능력은 80인데 일은 120인양 하던 시절이었다. 뉴스 진행을 맡았을 땐 눈 뜨면 24시간 뉴스 채널을 틀었고, 잠들기 전까지 모니터링을 했다.


좋아하는 것에 두려운 감정이 들 수도 있다는 것. 그 점이 그때의 나를 위로했다.


한 번에 좋아지지 않았다. 뉴스와도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화면과 소리가 힘들면 활자로 뉴스를 접했다. 국내 뉴스가 힘들면 감사하게도 다 들리지 않는 외신을 틀었다. 뉴스가 힘들어서만은 아니지만 1~2년 상담치료도 받았다.


이제는 뉴스를 잘 본다. 다시 많이 본다. 출입처 뉴스 하루에도 몇 번씩 실시간으로 챙겨야 한다. 이따금씩 피로감이 올 것 같으면 미리미리 거리를 두려 한다. 늦은 밤이나 휴일에 휴대전화를 멀리하는 식인데,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남 얘기를 하는 직업이다. 좋아하는 친구와 대화를 해도 상대방 얘기만 계속 들으면 지치지 않던가. 이제 내 얘기 조금 해보려 한다. 더 이상 지치지 않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