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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현 Sep 20. 2021

저승사자는 넥타이를 매고 있을까

익명의 함정

방송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저승사자가 있다. '정부 당국자' '여권 관계자'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실루엣 그래픽이다. 통용되는 용어 아니지만 한 선배의 지칭이 와닿아 나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 관계자' 등의 표현은 기사의 정확성 높이기 위해 인용은 하지만 취재원의 실명을 밝힐 수 없을 때 주로 쓴다. 정부의 '백브리핑(background briefing)'도 이렇게 쓰는 게 일종의 신사협정이다. 익명을 전제로 좀 더 풍부한 설명을 한단 취지다.


외신도 이 같은 익명의 취재원을 '정통한 소식통(source with knowledge of the matter)' 등의 표현으로 쓴다. 비실명 브리핑이나 컨퍼런스콜 발언은 '고위 관리(high-level official)' 등으로 인용한다.


성을 가진 저승사자


다수의 방송사 리포트에 등장하는 '저승사자'엔 공통점이 있다. 짧은 머리에 넉넉한 풍채를 가진 넥타이 양복 차림이란 것. 그래픽으로 구현된 저승사자는 성별을 분명히 표현한다. 하나의 성으로.


저승사자가 그린 실제 인물은 어떨까. 다수가 넥타이를 매긴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일례로 현재 청와대 대변인은 여성이다. 여성이 대변인을 맡은 정부부처도 있다. 여성 국회의원, 당 최고위원도 있지만 익명으로 그려지는 순간 성별이 바뀌고 만다.


그럼 그들은 여성으로 그려야 하나? 그럴 경우 아직은 소수인만큼 익명성을 지키기 어렵다.


동료에게 이런 불만을 말했더니 그럼 '졸라맨'처럼 단순한 실루엣으로 그려야 하냐고 되묻는다. 그래픽의 디테일이 떨어진단 거다.


개인적으로는 그림 없이 글씨만 쓰는 걸 선호한다. 저승사자의 빈자리는 소속기관의 로고나 밑그림 영상으로 채운다.


이런 문제제기가 너무 사소한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미디어가 무심코 보여주는 이미지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벽을 세운다. 그것도 모자라 날마다 회칠을 하며 벽을 두텁고 공고하게 만든다.


군인 아저씨 아니고 군인


여군 최초로 어떤 지위에 오른 군인에 대한 사진 기사를 읽고 있는데 다섯   아이가 내게 의아한 듯 물었다.


"군인 아저씨야?

"아니 군인 아줌마. 아, 아줌마인지는 모르겠네. 그냥 군인..."


나도 모르게 평소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나쁜 엄마의 최후의 수)" "군인 아저씨 온다" 등의 표현을 반복하고 있었던 거다. 동네 파출소에 갔다 여경을 보고 놀라던 아이의 표정도 떠올랐다.


'넥타이를 맨 저승사자'만 본 아이들이 여성 고위 관계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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