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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현 Apr 29. 2022

하노이 '영빈관의 변기'

2019년 2월 하노이에서의 한 달.

그때를 떠올리면 일장춘몽을 꾼 것 같다. 꿈처럼 좋았어서... 가 아니라 한 달간의 고생이 '노딜'로 물거품이 된 듯한 아쉬움에서다.


2차 북미 정상회담 한 달 전, 하노이에 도착했다. 현지에서 취재할 것은 주로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과 회담 장소 등이었다.

도착 첫 날부터 짐도 못 풀고 라이브를... 회사는 역시 출장을 공으로 보내지 않는다.

우리는 초반에 회담장으로 부상했던 오페라하우스의 내부 사진을 입수했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손색없어 보였다. 비싼 공연 티켓을 구해 들어가 "여기서 북미 정상이 공연을 볼 수도 있다"며 탠딩도 찍었다.

오페라하우스 입구부터 '그림'이 나올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더랬다. 허허..

북미 실무협상단이 도착한 , 본격 취재경쟁이 붙었다. 영빈관이 주목을 받았다. 마침 북측 협상단의 숙소도 영빈관 바로 뒷 건물이었다. 영빈관과 숙소 사이엔 정원이 있었고, 마침 그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가 있었다. 취재진 집합소가 되었. 6mm 카메라 한  든 일본 취재진이 유독 많았다. 나도 거의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

영빈관 정원이 바로 보이는 명당 카페. 취재진의 출근장소가 되었다.
영빈관 뒷편 숙소로 들어서는 북측 실무협상단. 누가 언제 들고 나는 지를 체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회담이 임박한 어느 날, 카페가 술렁였다. 영빈관 보수공사가 시작된 거다. 외벽 칠도 새로 하고, 건물 안으로 레드카펫 들어갔다. 하이라이트는 영빈관 변기가 밖으로 나온 거다. 화장실 수리까지... '빼박'이었다. 김정은이 아무 변기나 못 쓴다고 했나? 취재진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문제의 '영빈관 변기'
영빈관 입구에 레드카펫이 깔리고 자재들이 쉴새 없이 들어갔다.

영빈관에 붙어 있는 카페도 예외가 아니었다. 폭발물 탐지반이 찾아 소파 밑을 들추고 재떨이, 심지어 후추통까지 샅샅이 훑었다. 폰으로 열심히 영상을 찍었다. 연차 높은 통신사의 선배도 이들에게 "여기에 김정은이 오냐"고 물었다. 물론 묵묵부답이었다.

영빈관 카페에 들이닥친 폭발물탐지반. 소파 밑바닥을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회담 이틀 전, 영빈관 건너편의 메트로폴 호텔이 유력해졌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살폈다. 보안검색대가 설치됐고, 회담장으로 쓰일 회의실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자 구조의 건물 안엔 정원과 수영장까지 있어 회담 후 산책을 하기도 좋아 보였다. 장소를 꼼꼼히 살펴둔 게 회담 당일, 특보에 출연했을 때 꽤 도움이 됐다. 내가 엊그제까지 있었던 장소에서 북미 정상이 만나는 모습은 김정은의 말처럼 "공상과학 영화" 같았다.

메트로폴 호텔 안 정원에서 폭발물탐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호텔 앞 라이브 준비 중.
같은 시각, 서울에서 보내 준 사진.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있다. 영빈관의 변기는 도대체 왜 떼어 냈던 걸까? 당시 회담에서 영빈관은 별다른 쓰임새가 없었다. 그냥 예정된 리모델링 공사였는지, 설마 취재진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는지...


이밖에도 에피소드는 많다. 트럼프의 숙소 인근에서 취재하던 날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방송은 10초도 못 나갔다. 라이브 도중 트럼프의 전용차 '비스트'의 전파방해로 화면이 끊겼기 때문이다. 똑같이 생긴 두 대의 비스트는 어디에 트럼프가 는지 헷갈리게 해 매번 취재진을 골탕 먹였다.

하루종일 대기하고 전파 10초도 못 탄 날. 비스트 미워.
문제의 비스트. 두 대 중 어디에 미 대통령이 탔는지 분간이 안 된다.

한 달 여 출장기간 살이 2~3kg는 빠졌던 것 같다. 매일이 강행군이었고 너무 더웠다. 6차로 이상의 대로를 신호 무시하고 다니는 오토바이들이 주었던 문화 충격도 생생하다. '오바마 분짜'는 문 닫아 못 먹었지만, 길거리에서 먹은 분짜의 달짝지근한 맛은 아직도 군침 돌게 한다.

한 달 식사 중 젤 맛있었던 길거리 분짜. 주로 내가 식사를 사드렸지만, 이날은 코디네이터분이 사주고 싶다고 하셔서 얻어 먹었다. 맛있게.

뜸금없이 왜 3년 전 얘기를 하는가. 퇴근길 문득 이 시기를 빨리 회상해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며칠 후면 더 생경해질 것 같아서다. 물론 그러지 않길 바란다. "5년의 평화는 어디 갔습니까?"란 말이 공허하 들리지 않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하노이에서 내가 흘렸던 땀의 무게를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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