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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현 Jan 10. 2023

무너질 결심

기자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하여


작년 이맘때쯤 했던 결심이 있다. 새해엔 절대 바닥에 앉지 말자고. 이 결심은 업무 첫날 바로 무너졌다.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몰아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논의하던 살벌한 의원총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하루도 못 갈 허무맹랑한 결심의 배경엔 40대로 접어든 나의 물리적 나이와 함께 나 또는 나의 직업에 대한 연민(?) 같은 게 작동했던 것 같다. 사실 바닥에 앉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연차이긴 했다. 나보다 훨씬 정확한 워딩을 해내는 후배들도 있고, 워딩을 구걸할 꾸미(의원과 식사나 취재 편의를 위해 타사 기자들과 꾸리는 모임) 동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탁하길 싫어하고 이럴 때만 발휘되는 FM기질(또는 쫄보기질) 때문에 바닥에 앉아 타이핑을 하고 마는 것이었다.


(여담으로 나는 국회 출입할 때 치마를 입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위와 같은 이유로. 그럼에도 예쁜 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기자들은 바닥에 앉을 일 없는 선배이거나 배짱(?)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취재원을 올려다보는 물리적 자세가 싫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취재원은 기자들을 내려다보게 된다. 그들을 깨끗하게 카메라에 담으려면 어쩔 수 없는 구도지만, 가끔은 의식적으로 서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영상취재기자 선배들께 욕 안 먹을 수 있는 포지션에서만^^)


당시 1년 반 만에 국회로 돌아가 새로 발견한 것이 기자들을 위한 ‘백브리핑용 미니방석’이었다. 추운 겨울날 차디찬 대리석(또는 진드기 가득할 카펫) 바닥에 앉는 건 고역인데 꽤 인상적인 배려였다. 대선 유세장에선 얼어붙은 아스팔트나 흙바닥에 앉는 일도 부지기수인데, 출입하던 당에선 스티로폼(보다는 과일 싸개와 비슷한 재질) 같은 방석을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기자들이 바닥에 앉아 일하는 문화가 고착화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업무 방식은 노트북이 보편화하고 속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굳어진 것 같다. 스프링 달린 취재수첩을 쓰던 선배들이 트렌치코트 자락으로 바닥을 쓸고 다닐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갑자기 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 기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정치 뉴스 비중이 훨씬 작은 미국 공중파 뉴스에선 캐피털힐에서 일하는 기자들의 본모습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 국회 복도에서 정치인을 팔로잉하는 기자들 모습이 수두룩하게 뉴스 화면을 채우는 것과는 달리.


100년 만에 재투표로 하원의장을 선출한 의회 상황이 어떠했을지 얕은 경험에서 대략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을 테고, 백브리핑 대기 타느라 기자들 화장실도 잘 못 갔을 것 같다.


그런데 급박했을 매카시의 백브리핑에도 바닥에 앉아 워딩 하는 기자들은 안 보인다. 바닥에 앉은 건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 사진기자들 뿐. 펜기자들은 핸드폰으로 그의 모습을 찍거나, 폰을 녹음기처럼 사용하거나, 폰에 워딩을 하는 정도이다.


나는 현장에 돌아가면 다시 허무맹랑한 결심을 하고 지킬 수 있을까. 일단 밤새 우는 젖먹이를 달래며 현장에 돌아갈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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