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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Jun 18. 2022

아무 쓸모 없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


결혼으로 이민 생활을 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갔다. 나를 보러 먼 지방에 사는 친구가 손수 서울로 올라왔다. 1박 2일의 짧은 서울 여행. 지방과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우리에게 서울의 밤은 설렘과 환희 그 자체였다. 이제 막 추위가 시작되는 10월이었지만,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저녁 9시가 넘었지만 도시의 사무실 조명은 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각자 지방과 해외에서 살기 전에는 바쁘고 치열했던 도시에서 살던 우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조명들이 익숙하기보다 낯설다. 그래도 간만에 보는 빛이 반가웠다. 술에 취한 듯 기분이 한껏 들떴다. 두 여자의 꺄르륵 소리가 청계천의 물소리를 대신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곳에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잔잔한 물소리만큼 길을 걷는 사람도 드물었다. 친구가 먼저 그녀의 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5년 동안 듣지 못했던 그녀의 아픈 가족사와 이를 치유해주는 남편에 대해. 나는 그저 잠자코 듣기만 했다. 내 이야기는 차마 그녀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내가 너무나 한심해 보일까 봐. 나의 저 밑바닥을 그녀에게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꾹꾹 눌러 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말하던 그녀는 불쑥 이런 말을 내게 던졌다. 웅덩이에 작은 돌을 던진 듯이. 청계천 작은 냇물에 비추는 빛을 보며 친구는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끔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남편은 뭐 하러 나보고 힘들게 돈을 버냐고.. 자기가 번 돈으로 얼마든지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쓰라고 하는데...가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그냥.. 내가 없어진 느낌이야."


친구의 말에 내 마음이 덜컹했다. 그녀가 내 마음에 쏙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듯했다. 그 누구보다 나는 그녀가 던진 말의 의미를 몸서리치게 느끼던 사람이었다. 남편을 돌보고 가정을 챙기는 건 대단한 일인데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밥만 축내는 식충이처럼 느꼈다. 만약 내가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르게 생각했을까? 회사에서 일하며 월급을 받고, 내 이름 석 자가 당당하게 불리던 그곳은 이미 나와 상관이 없는 곳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의 이름 석 자 대신 누구누구의 부인으로 불리는 것이 당연했다. 아이가 없기에 누구누구의 엄마라고 불리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랬으면 더 우울했을 테니까.  


5년 동안 계속 생각했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왜 존재할까. 

 

사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낮에 알게 되었다. 그것도 그녀를 통해서. 그녀는 흘러가듯 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대답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한량처럼 집에서만 있어도 되는 아주 훌륭한 대답이었으니까.  


나는 그 옆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네가 있는 것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야. 그 사람(남편)한테는 너밖에 없잖아."


그 말에 친구는 약간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내 말이 친구의 기억 속 어딘가를 건드렸는지, 그녀의 눈시울이 조명에 잠시 반짝였다. 그것이 멋쩍은지 친구는 놀란 눈을 하고 나를 보던 시선을 다시 흐르는 강으로 돌렸다. 그리고 분위기가 이상해지지 않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얼~멋찐 소리하는데~" 나는 순간 망설였다. 그냥 나도 너를 따라 그냥 웃고 넘길까, 아니면 내 안에 있는 말을 솔직하게 말할까. 


"사실.. 너에게 한 말이, 나에게도 필요한 말이었어."


내 절박한 감정이 말에 섞어 들어간 것일까. 그녀는 이전처럼 놀란 표정을 짓지도, 멋쩍게 웃지도 않았다. 그저 강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아무 말 없이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침묵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핸드폰 시계를 봤다. 벌써 자정이 가까웠다. 음울했던 분위기를 털어내듯 나는 가볍게 말했다. “자, 이제 호텔로 돌아가자.” 더 추워질 밤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잠시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외투를 단단히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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