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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Jun 27. 2023

한뼘동화 24

키우기 시작하면

아파트 화단을 지날 때마다 나에게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작은 새싹이 있었어요. 다른 친구들 보다 유독 키가 작은 나에게만 보이는 새싹이었지요. 그 새싹을 보고 있으면 학교에 가기 싫은 내 마음도 순간 사라지곤 했어요.

학교는 나에게 너무 커요. 친구들도 크고 선생님도 크고 교실도 너무 커요. 급식실 가는 길도 체육관도 도서관도 너무 커서 난 학교가 무서웠어요. 자꾸만 움츠러드는 나를 누구도 알아보지 않았지요. 친구들은 내가 없는 듯 지내고 선생님도 아주 가끔 나를 아는 체하였어요. 

하지만 새싹은 그러지 않았어요. 내가 지나갈 때마다 작은 몸을 흔들며 아는 체를 했어요. 

"안녕, 머리를 예쁘게 묶었네."

"안녕,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

"안녕, 치마가 잘 어울린다."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나는 너무 기뻤어요. 

새싹은 쑥쑥 자라나더니 어느덧 내 무릎까지 키가 컸어요. 

그런데 어느 날 경비아저씨가 새싹을 뽑아내는걸 보았어요. 나는 용기내서 아저씨에게 말했어요.

"아저씨! 새싹을 왜 뽑아요?"

아저씨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레 말했어요.

"왜 뽑긴. 잡초니까 뽑지."

새싹은 축 처진 채로 바닥에 나뒹굴었어요. 나는 조심스레 새싹을 주워왔어요.

그리고 베란다에 비어있는 화분에 새싹을 심었어요. 정성스레 물을 주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어요.

축 처져 있던 새싹은 금방 푸릇푸릇 생기가 돌았어요.

화분에 옮겨진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어요. 두꺼운 줄기와 커다란 잎이 생겼지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꽃망울도 만들었어요. 

"어머, 이런 예쁜 꽃은 어디서 났을까?"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엄마가 크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어요.

나는 그 꽃을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온 잡초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 꽃을 '가장 예쁜 꽃' 이라고 말했지요.

누군가 그랬어요. 키우기 시작하면 더 이상 잡초가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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