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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Kim Aug 31. 2022

은근슬쩍 들러붙는 또 '너'란 놈

또 '우울' 하나로 퉁치시려고요?


"스트레스가 심해요. 직장에서 매년 갖가지 사건이 터져요. 생각이 많아서 잠이 안 와요."

라는 내 말에 젊은 의사의 첫마디는 상당히 의외였다.


"혹시 MBTI가 뭐예요?"

정신건강의 입에서 MBTI가 튀어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내 대답을 들은 의사는


"아! 그럼 두 가지 직업만 아니면 됩니다.

하나는 가정주부, 또 하나는 공무원이요. 

창조적인 혁신가는 조직의 변화와 개혁,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거든요!"


(선생님, 저는 학부모 스트레스로 방문한 교육공무원이지 말입니다.)



이비인후과에 갔다.

방학 직전 즈음에는 목이 남아나질 않는다. 하루 4시간씩 목이 터져라 수업하는 건 기관지가 약한 나에게는 적지 않은 무리다. 내시경으로 보던 의사는 말했다.

"기관지성 천식도 있고, 많이 부었네요.

혹시 가수는 아니죠?"

피식 웃음과 함께 아니라고 답하니 천진한 미소로


"다행이네요! 가수나 산생님만 아니면 됐죠!"


(몸과 마음 모두 교사 부적격인 사람. 이쯤이면 'ㅠㅠ'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우울'을 검색해 보았다.

엄청난 자기 고백과 행동 지침이 쏟아졌다. 년간의 우울증 극복기, 어린 시절 결핍으로부터 그들을 채워온 기록, 산책과 취미생활을 통한 해결책 등 핵심적인 맥락은 거의 같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곧 확률적으로 검증된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나 많은 성공 사례들과 행동 강령들이 마치 내일부터 시작하기 위해 휴대폰 속에 저장해 두고 있는 운동 방법 사진들처럼 들렸다.



그래서 내 마음속 골방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감정들을 꺼내 열거해 보기로 했다. '우울' 하나로 퉁 치기엔 결이 무척 다른 감정들도 따라 나왔다.



잊을 만하면 사고처럼 올라와 내 마음 전체를 휘젓는 자기 파괴적 감정들


테일러 스위프트의 뉴욕대 졸업 연설을 보았다.

"러분들은 살면서

불가피하게 말을 잘못하고 잘못된 사람들을 믿고, 과소 반응하거나 과민 반응하고,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너무 많이 생각하거나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파괴적인 일을 하고, 여러분의 경험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고, 여러분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완벽하게 좋은 순간들을 망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바로잡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죄책감을 느끼며, 그 죄책감이 당신을 갉아먹게 해 밑바닥을 치고, 마침내 당신이 만들어 낸 고통을 해결하고, 다음에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씻어 내고.

이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웃음과 박수)


이런 실수들은 무언가를 잃게 만들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무언가를 잃을 때, 무언가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나서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물러서서 사과하는 게 옳을 때도 있을 것이며 싸우는 게 옳을 때도, 도망치는 것이 옳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가지고 버텨야 할 때도 올 것이고, 기꺼이 놓아주어야 할 때도 올 거예요."



마음으로 인한 실패와 착오를 졸업식 연설의 소재로 가져올 만큼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와 세상에 침잠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간은 무지개 같다. '다채롭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딱 잘라 여기까지는 빨강, 여기서부터는 주황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언어의 불연속성처럼 명확한 규정이 불가능한 존재라는 의미에서다. 인간은 '존재'이고, 인간의 마음은 그 존재가 살아있음을 매 순간 증명해 내는 '존재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감정들은 우울로부터 파생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장한 유기체적 산물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수십 년은 더 살아내야 하는 나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마음의 주인으로서 내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 보다 섬세한 자기 암시를 해보기로 했다.



실을 청소할 때 곰팡이(핑크색)는 염기성으로, 물때(누런색)는 산성으로 공략해야 하는 것처럼 허무감이 올라올 땐 일단 뭐든 해보는 것으로,

죄책감이 들 땐 잠시 내버려 두는 것으로

각각 다른 행동 양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느끼고 있는 현재의 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알아차려야 하고, 그때마다 감정을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 마음 안에서 나만이 느끼고 있는 온전한 내 감정이므로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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