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인생 2막의 시작
2022년 1월 14일 금요일.
하루하루 손을 꼽으며 기다린 오늘은 남편이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드디어 왔다. 대다수의 휴직자(퇴사자)들이 그러하듯 필수로 사용해야 하는 연차를 소진하며 남은 날들을 보내고 나면, 2월 초 남편은 정식으로 1년간의 장기 휴직에 들어간다. 우리의 결심이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므로 '휴직'이라 썼지만 '퇴사'라 고쳐 읽어도 무방하다. 남편이 남친이던 시절 연남동의 모 주꾸미집에서 낮술을 기울이며 '저, 5년 뒤엔 퇴사할 거예요.'라고 말했던 그 해에, 남편은 정말로 퇴사와 다름없는 휴직을 했다.
직장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복지가 있을까 싶은 이 휴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려 1년을 쓸 수 있는데 그동안 사용을 미뤄왔던 건 나 때문이었다. 몸이 아파 신청하는 인병 휴직조차 사용이 어려울 정도로 보수적인 나의 직장에서 아무 이유 없는 휴직이 가능할 리 없었던 것. '자유로운 조직문화 정착과 업무 능률 향상을 위해' 사내 아이디어 공모나 노조를 통해 몇 번 의견을 피력해봤지만, 회사가 아닌 직원들 중에 원치 않는 사람이 많다는 의외의 사실만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너만 가능하다면 나는 언제든!"
이라던 남편의 말을 실제로 이룰 수 있게 된 건 내가 먼저 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주로 치면 새로운 은하가 하나 새로 생겼다 해도 될 만큼 큰 변화가 많았던 2019~2020년을 지나* 2021년 중순이 되었을 때, 나는 용 그림에 새카만 눈을 찍듯 나의 20대와 30대를 모두 바쳤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 19년엔 결혼을, 20년엔 승진을 했다.)
각기 다른 이유로 회사 생활을 힘들어했던 우리가 일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그리고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고민하지 않았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1등 기업에 다닌 남편과, 그에 비할바는 아니어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견기업에 다녔던 나. 우리가 이른 퇴사를 하게 된다면 잃게 될 것들은 너무나 명료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1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가끔 값 비싼 전자기기를 구입하더라도 (애플 못 잃어...) 월급과 성과급이 든든히 뒤를 받쳐주던 월급쟁이의 삶. 소고기가 먹고 싶으면 언제든 실행에 옮길 수 있고, 1년에 몇 번 없는 기념일에 근사한 파인다이닝을 찾는 것 정도는 부담스럽지 않은 삶이었다. 우리가 둘 다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아마도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낄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같은 해에 입사를 해 각자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16년. 짧지 않은 시간은 우리 스스로는 물론 주위 환경까지 모두 변화시켰다. 남들보다 빠른 진급을 두 번이나 한 그는 원하든 원치 않든 더 이상 실무자로만 남을 수 없는 위치까지 와버렸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어려워하는 그에겐 일과 사람 양쪽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점점 늘어났다. 나 또한 소심하(지만 아닌척 하)고 '내적' 옳고 그름이 분명한 성격 탓에 회사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입사 초기부터 퇴사할 때까지 16년의 시간이 거의 그랬다고 할 수 있다.
'까라면 까'는게 조직 문화였고 지금이 21세기임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수없이 겪으며, 그 모든 게 납득이 되지 않는 나로서는 속으로 '이게 지금 나만 이상하다고??' 를 수없이 외쳐야 했다. 그렇게 16년을 일했지만 적응도 포기도 요원했으니 마지막 6개월 동안은 스스로 이젠 정말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말의 반은 '너무 힘들다'였고, 일요일 밤이면 다음날 출근이 두려워 숨이 막혔다. 남편도 나도 회사 생활을 매우 버거워했음에도 주위의 평판은 '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게 분명했다.
우리는 어떤 운 좋은 사람들처럼 코인으로 대박이 난 것도, 주식으로 한몫을 크게 잡은 것도 아니다. (남편도 나도 퇴사할 때 질문을 하도 들어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한 것이 전부이며, 현재 소유한 것들은 오로지 각자의 시간과 노동을 갈아 넣어 손에 쥐게 된 것들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보기에 우리가 지금 가진 것들은 앞으로 평생을 일하지 않고 살겠다 하기엔 너무 부족해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 보기로 결심했다.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걱정하느라 꿈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은 배부른 사람들만의 사치라고 생각했던 나지만, 언제까지고 현재를 숨 막혀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에겐 파인다이닝보다 두려움 없이 잠들 수 있는 평화로운 밤이 더 중요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면 행복한 우리에게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와인을 주문할 만큼의 돈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20년을 월급 받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으니, 앞으로의 20년은 월급 없이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 보자. 이룰 수 없어 당연히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을 우리 함께 걷게 되다니, 이 또한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 물질적인 여유는 줄고 어떤 면에서는 초라해지겠지만 마음의 평화와 빛나는 표정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감수할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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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일요일 밤 잠자리에 들며 다음 날이 두렵지 않은 기분이 어떤 것인지, 문득 내 몸이 '피곤하지 않은' 상태임을 느꼈을 때의 생경함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될 그에게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축하해, 그동안 정말 고생했어.
회사원으로 잘 살아냈으니
파이어족으로도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