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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 Aug 04. 2021

연애 속 경제학

연애 한계효용의 법칙

두 남자가 있다. 올해 34살로 동갑인 두 남자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닮은 점이 참 많다. 처음에는 그냥 언뜻보면 형제로 착각할만큼 비슷한 분위기의 얼굴만 닮은 줄 알았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2007년 수능시험에서 똑같은 점수를 받아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하더니 21살 군입대 신검에서는 소수점까지 같은 신장을 기록하고 같은 급수를 받았다. 역시나 입대, 제대 날짜도 같았고 이후 준비한 회계사 시험에서 동일하게 낙방하고 취업전선에 뛰어 들어 같은 회사에 입사해 재직중이다. 소름끼치게 닮은 두 사람이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연애'였다.

(편의상 두 남자를 A, B라고 칭한다.)


A는 20살부터 연애를 했지만 매번 연애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났다. 친구 이상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취업 준비가 바빠서, 회계사 시험에 집중해야 해서, 여자 친구가 회사생활을 이해해주지 못해서 등 A는 과거 이별에 각기 다른 이유를 붙였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같았다. 한 여자와의 연애가 1년 정도 되면 A는 권태기라는 것을 느꼈고 항상 먼저 이별을 고했다. 연애에 있어 소위 나쁜 남자라는 것을 A자신도 알고 있었다.


지금 여자친구 역시 1년 전 소개팅을 통해 만났다. 주선자 친구가 여자친구를 소개할 때, "야 진짜 여신이야. 엄청 예뻐."라고 했을 때 과장한다고 생각했지만, 첫 만남에서 A는 여자친구한테 홀딱 반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모, 손짓, 목소리 하나하나 모든 것이 A의 이상형이었다. "그래, 내 연애가 그 동안 순탄치 못했던 이유는 내 이상형을 못 만나서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긴 시간 적극적인 구애 끝에 지금 여자친구와 연인이 되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렇다. A는 또다시 권태기를 느끼고 있다. 밥 먹고 영화보는 루틴한 데이트가 지겹다. 연애 초기에는 야근을 하고도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 달려왔던 그였지만, 이제 주말 하루 데이트를 하러 나갈 때도 밀린 잠을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B에 대해 알아보자. B도 20살부터 연애를 했다. 첫 연애 상대는 같은 동네에 살아 같이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였다. B는 남중, 남고를 갔고 같이 놀던 유치원 친구는 여중, 여고를 갔다. 서로 입시에 집중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그들은 20살 성인이 된 기쁨으로 자신만만하게 들어간 학교 앞 맥주집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인이 되었다.


B의 연애에는 이별이 없었다. 첫 연애 상대였던 유치원 친구와의 14년 간의 사랑은 B에게 마지막 연애가 되었고, 작년에 그 둘은 결혼을 했다. 놀이터에서 흙으로 주먹밥을 만들며 함께 소꿉놀이 하던 둘은 이제 소꿉놀이 같은 신혼 생활을 만끽중이다.


소름끼치게 똑같았던 A와 B의 인생에서 소름끼치게 다른 연애 생활이 이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일정한 기간 동안 소비되는 재화 수량이 증가할수록 재화의 추가분에서 얻는 한계 효용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 A의 연애를 위 법칙의 재화 수량으로 치환한다면, A가 여자친구와 연애하면서 느꼈던 즐거운 감정이 '효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A는 연애 일 수가 증가할수록 연애가 예전만큼 즐겁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즉 연애가 주는 '한계 효용'이 현저히 줄어 A는 권태기를 느끼는 것이다. A는 특히 '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잠을 더 잘 수 있을텐데' 라는 연애의 기회비용까지 느끼고 있는 상태이므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직격탄으로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B에게는 왜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던 것일까? 간단하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기 위해선 같은 종류의 효용을 받는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B의 여자친구는 14년간 같았지만 그동안 B가 여자친구와의 연애에서 느끼는 효용의 종류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스무 살 4월 아직 연인이 되기 전 같이 간 벚꽃놀이에서 서로의 손이 닿을 듯 말듯 할 때에 B는 설렘을 느꼈다. 한 해가 지난 스물 한 살, 흰색 스니커즈를 신은 여자친구가 폴짝폴짝 벚꽃나무 사이를 뛰어다니고 그 뒤를 함께 쫓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 다음 해에 군대에서 잠시 휴가를 나와 짧은 시간동안 벚꽃을 보며 소회를 푸는 것이 애틋했고, 제대 후 여유롭게 여자친구와 벚꽃을 보는 시간이 편안했다. 결혼을 약속하고나니 인생 2막 역시 함께 하는 것 같아 다시 설레고 한 편으론 든든했다. 결혼을 하고 첫 번째 맞는 봄, 벚꽃놀이를 하러 간 날에 늦잠을 잔 아내의 만두처럼 부은 볼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한 사람과의 매년 똑같은 벚꽃놀이였지만 B가 느끼는 효용은 설렘, 즐거움, 애틋함, 편안함, 다시 설렘, 든든함, 귀여움, 사랑스러움으로 계속 변화했다.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의 각기 다른 모습이었지만, B는 그 각기 다른 효용들을 매 시간 온 몸으로 느꼈기에 한계 효용 역시 줄어들지 않았다. 반면, A에게 연애의 효용은 즐거움 뿐이었기에, 연애가 지속될수록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지금 나의 연애가 A와 닮았다고 생각이 된다면, A처럼 연애의 효용을 '즐거움'이라고 작게만 한정짓지는 않았었는지 돌아보자. 당신이 권태기라고 단정지은 지금의 감정이 사실은 편안함, 든든함이라는 사랑의 또 다른 효용일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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