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아를 찾는 첫 번째 방법
내 삶을 관조하기
여기서 말하는 관조는 그저 지켜보라는 의미다
관조
[ 觀照 ]
밝게 비추어 본다는 뜻으로 어떠한 특정한 견해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음의 성품과 진리의 세계를 비추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불교의 지관(止觀)의 수행방법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지(止)와 관(觀)은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방법으로 석가모니불의 선정은 지와 관을 그 내용으로 한다. 관은 불교 수행법의 하나로서 진리의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방법이다. 싼스끄리뜨는 위파사나(vipāsyanā)이며 능견(能見)ㆍ정견(正見)ㆍ관찰ㆍ관으로 번역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조 [觀照] (원불교대사전)
내가 학습해서 믿는 나 (언어와 사회성이 학습된)
국가 또는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지위의 나 계층으로 분류된 신념체계 속 믿음으로 형성된 나
여기서 믿음의 의미는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한글을 쓰기로 하고 민주우의 체제 속 경쟁을 통한 학습을 받고 사회 속 구성원으로 서로가 믿기로 한 약속 또는 신념 정도라고 사자
미국이나 독일에서는 의미가 없는 약속 믿음이기 때문에 사실 사회적 합의된 의미 이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렇게 형성된 내가 사는 약속된 기호 속의 삶을 그저 관찰해 보는 게 중요하다
내가 믿기로 한 기호가 진실인가 서로 믿기로 합의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자꾸 질문하고 의심하는 태도로 관조해 보라는 거다.
나에게 중요한 진실은 무엇인가 내 삶은 관조적 태도를 유지하다 보면 곧 진실은 드러난다.
그럼 갓 태어난 아기일 때의 나는 어떤 것으로 정의해 볼 수 있는가 이것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고
존재자체만으로 축복과 사랑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우린 그렇게 태어나자마자부터 존재부터가 진실인 존재다
거짓은 무엇인가 사회성을 배우고 언어를 배워서 믿기로 시작한 것들로부터 부여받은 존재 이유를 잊어버리거나 어렴풋 기억 속으로 집어넣어 두게 된다
진정한 자아를 찾는 두 번째 방법
독서를 통해 질문하기
질문 質問
명사
1. 알고자 하는 바를 얻기 위해 물음.
[네이버국어사전]
독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또 누구나 하기 어렵다.
꾸준함을 얘기하고 있다.
독서의 사전적 의미는 책을 읽음이지만 실제로 읽다 보면 오히려 질문하게 된다.
내 생각과 다를 수 있다 어떤 부분은 동의하지만 대체적으로 다르다.
어쩌면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각자의 세계관 속에서 창조된 기호들은 각자대로 해석된다.
이글도 사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가진 생각이며 기호일 뿐 독자에게는 다르게 해석되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스스로 해보는 질문과 답변은 이렇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데? 우린 모두 기호를 이용해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느낀 삶에 대한 태도로 인해 행복과 사람이 넘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대체적으로 고요하고 평안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이른 생각들을 글로 적어 보는 정도의 의미다.
또 내 삶은 존중하고 내 자아를 사랑하고 이해한다면 적어도 우린 그걸 전달해야 하는 태성적으로 그렇게 존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미에서 기호를 가지고 창조해 보는 것이다.
만약 읽어주는 사람이 적거나 없다면? 적어도 나에겐 상관없다.
누군가에는 읽혀서 누군가의 세계에서 다르게 해석된다는 게 당연한 거고 그저 존재만으로 각자가 완벽한 존재들이라고는 생각이라면 그저 내 속도와 태도로 삶에 존재하는 방식대로 있으면 된다.
Z세대 이후로는 독서가 필요 없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자기를 표현하기에 익숙한 Z세대들은 매일 일어나자마자 브이로그를 찍고 Dm, 메일을 확인하는 게 모닝 루틴이다. 인스타는 계정별로 세계관이 다른 인맥들이 있고 게임 속 친구들과 현실 친구들은 구별된다. 철저히 혼자 있고 싶지만 동시에 내가 하는 일과 대부분은 블로그나 인스타 등에 기록되고 오픈된다. 하고 싶은 운동은 소모임을 이용해 꾸준함을 더하고 간단한 독서를 통해 자기 계발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또 삶의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독서는 결국 콘텐츠를 위해서도 또 자기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 수 없다. 독서는 결국 질문하기 위해 하는 거다.
누구한테 질문하냐고? 또 생각해 보자
질문은 스스로에게 하는 거다.
그럼 답이 바로 나오나? 아니다 좀 기다려보자 질문해 두고 천천히 기다려보자 바로 나올 때도 있지만 언젠가 갑자기 문득 이 타이밍에? 하는 순간에 답이 떠오른다.
다들 이런 경험 한 번씩은 있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거다라는 답변이라는 의미다.
무슨 말이냐면 이미 우린 답을 내릴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 말은 또 존재 자체로 완벽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성장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냐? 그건 아니다. 기호적 삶에서도 우린 경쟁을 해야 하지 않은가 적어도 그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한 노력을 해서 성장한 삶을 살고 있거나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는 세 번째 방법
추측과 오해 없이 경청하기
추측 推測
명사
1. 미루어 생각하여 헤아림.
오해 誤解
명사
1.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앎. 또는 그런 해석이나 이해.
경청 傾聽
명사
1. 귀를 기울여 들음
[네이버국어사전]
우리는 추측과 오해하기를 좋아하는 소설가 이거나 창조자에 가깝다. 그 이유는 이미 언급한 대로 각자의 존재로 다른 세계관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호적 의미를 잘 이해하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 그 의미를 해석하는 태도와 방식이 다를 수 있어서 추측과 오해는 시작된다.
이걸 없애는 방법이 있을까? 굳이 그럴 필요 있는가 싶다.
없기 때문이다 각자 다르게 해석하는 게 진실이다. 어떻게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다름이 전제되어야만 우린 서로 존중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게 경청이다. 기호적 의미를 잘 이해하고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 보는 게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귀 기울여 질문하면서 듣자
그리고 의심하면서 듣자 왜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스스로 질문만 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판단하지 말자는 것이다. 왜 저러지 하고 질문하자마자 우린 선택하고 싶어 진다. 또 해석해서 빠르게 결론부터 내리고 싶다. 이걸 견뎌야 한다. 판단하지 말라는 거다. 여기서 추측과 오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 어쩌라는 거냐? 질문해 두고 기다리자
그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자 기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졌구나 하자 그리고 왜 저렇게 생각했을까 하고 질문만 해두자 그럼 언젠가 답을 준다(누가? 나 스스로 어느 순간에 답을 준다 진짜다 ㅎ)
질문한 다음 그저 평온하고 고요하게 삶을 살다 보면 답을 줄 것이다. (꼭 그런 경험이 찾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질문들과 답이 내 삶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삶은 사랑과 행복이 넘쳐야 하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그 사람에게 해줄 이유가 있을까 싶게 된다. 그저 들어주고 때론 공감해 주지만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이자 삶이다. 스스로 잘 해결해 나갈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경청하고 판단하지 말고 질문하고 기다리는 태도를 갖게 된다.
그리고 기다리면 내가 나를 위해 답을 한다.
고요하고 평온함을 유지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지금일 수도 있고~
(내가 나를 믿기로 한.. 자존감을 찾는 여정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