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사는 게 아니여 _ 사투리의 맛
나는 고향이 양양이고, 강릉에서 오래 살아서 아직도 추억처럼 남아있는 음식 중엔 바다에서 나는 것이 꽤 있다. 싱싱한 바다회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고문이고, 외할머니가 겨울마다 절여 오시던 심퉁이 알과 심퉁이를 썰어 넣고 끓인 김치찌개, 초고추장에 무치거나 쌈을 싸 먹던 바다 냄새 물씬 나는 물미역과 데친 갑오징어가 그립고, 어른들이 술안주로 구워 드시던 콤콤한 양미리 구이는 먹은 적 없지만 냄새만으로도 추억이고, 열갱이랑 부르던 열기 구이, 낮은 냄비에 자작하게 졸인, 배가 뽈록하던 알배기 도루묵은 식탁에 자주 오르는 반찬이었다.
도루묵 조림을 떠올릴 때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했던 말이 생각나 혼자 웃는다. 도루묵 알을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내 설명만으로도 고개를 흔들었다. 생선은 먹지만 알을 어떻게 먹냐고, 그건 너무나 잔인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 시절엔 한국의 전래동화나 옛날이야기를 자주 해 주었는데 아이들은 도루묵이란 이름에 얽힌 사연과 자린고비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특히 자린고비의 아들이 천정에 매달아 놓은 굴비를 밥 한 숟갈에 두 번 쳐다보았다가 낭비한다고 야단을 맞는 대목이 나오면 아이들은 매번 까르륵거리며 오래 웃었다.
식료품을 사러 들리는 몇 군데 가게 중에서 생선이 가장 많은 곳은 T&T라는 중국대형마켓이다. 이름도 모르는 갖가지 생선과 어패류에 살아있는 게와 랍스터, 활어도 있다. 하지만 내 눈은 늘 기억을 뒤지면서 익숙한 생선들만 찾는다. 가끔 큰맘 먹고 식구 수대로 살아있는 던지네스 게나 연어를 사는 게 고작이고, 냉동으로 나오는 틸라피아나 바사를 더 자주 사는 편이다. 생선을 좋아하면서도 여전히 비린맛은 싫어하고, 낯선 생선을 시도해 보지도 않는 걸 보면 오랜 이민생활에서도 끝까지 고집스럽게 남아있는 입맛이 생선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이렇다 보니 생선을 즐겨 먹긴 해도 늘 먹는 어종은 몇 가지 되지 않아서 모처럼 한국마켓으로 장을 보러 가도 노르웨이 고등어나 냉동 오징어를 주로 사고 가끔, 살이 좀 실해 보이면 갈치 토막을 사는 게 전부다. 예전에 즐겨 먹던 연어, 냉동 도미와 참치는 특별한 음식군에 들어갈 정도로 물가가 오른 탓도 있다. 더러 임연수나 조기도 보이지만 때깔도 시원찮고 맛도 시시해서 한 두 번 먹은 후론 늘 만지작거리다 도로 내려놓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민어'가 들어오면서 단순하고 지루한 생선 고르기에 활력이 생겼다. 민어가 원래 이 크기의 생선이었나...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의심하긴 했지만 민어구이가 워낙 입맛에 맞아서 일부러 사러가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허영만의 백반기행'을 보다가 민어의 크기를 보며 황당했다. 가끔 꽤 실한 것도 있었지만 그동안 내가 먹은 민어들은 다른 생선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크기가 달랐다. 그래서 쌌구나... 어쩌면 한국에서는 너무 작고 부실해서 상품가치가 없는 것들을 가져다 파는 건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며 내친김에 '민어'를 검색한다, 어라? 33센티미터 이하의 민어는 포획 금지라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먹은 민어들은 뭐란 말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법행위의 공범이 된 건가? 하지만 여전히 생선진열대에서 민어를 보면 반가워서 손부터 나가는 걸 어찌할꼬.
아이가 어릴 때니까 꽤 오래전이다. 어느 날 아이는 이름을 몰라 설명을 길게 하면서 이 생선이 먹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갈치을 말하는 줄 알았다. 두어 번쯤 냉동된 갈치를 사 왔었고, 제법 도톰하게 살이 오른 갈치 토막에 굵은소금을 뿌렸다가 구워 먹었던 기억이 나서다. 이번엔 내가, 갈치를 말하는거냐며 생선의 생김은 물론 먹었을 당시의 상황까지 떠올리며 긴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뭘까? 자주 먹는 도미나 참치, 더구나 연어를 모를리는 없고... 결국엔 언젠가 지인이 바다낚시를 나갔다 잡았다며 주신 귀한 블랙 커드까지 불려 나왔다가 불현듯, 아이가 '조기'를 말한다는 걸 알아챘다.
언젠가 한국 마켓에서 팔길래 사 온 적 있었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은 데다 내 기억과는 너무 먼 맛이라서 다시 사지 않았는데 아이의 입맛엔 맞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비교군이 없어서 나와는 달리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생선 고르기에 까다로운 엄마를 둔 탓에 아이는 조기를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하며 성인이 되었고, 입맛도 변해서 예전만큼 한식을 찾지 않더니 조기도 잊어버린 것 같다.
아이는 이제 조기를 찾지 않지만 나는 아직도 맛있는 조기의 맛을 기억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기억하는 맛은 조기보다 굴비의 맛이다. 조기는 제사 때 찜으로 만든 걸 먹었지만 늘 밍밍한 맛이어서 몇 번 젓가락질을 하다 말았고, 짧은 입맛을 확 돌게 했던 것은 굴비였다. 교과서에서 배운 '강화 화문석' '안성 유기' '통영 나전칠기'와 더불어 고유명사처럼 외우고 있던 '영광 굴비'. 아버지 회사의 부하직원 중에 영광이 집인 분이 있었는데 휴가 때 집에 다녀올 때마다 굴비를 선물로 주었다. 아버지는 말씀으론 이 귀하고 비싼 걸 팔아야지 뭐 하러 가져오냐고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하셨지만 기분 좋은 표정을 감추진 못하셨다. 찬 보리차에 흰밥을 말아서 아껴가며 얹어먹던 굴비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나중에 녹차에 만 밥과 먹는다는 '보리굴비'를 알게 되었는데 아직 먹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게 '조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 글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지누의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이란 책에 실려있는 '줄포'에 관한 글이다. 특히 그곳에 살고 계신 분의 말씀을 채록한 부분이 어찌나 좋은지 옆에 누가 있다면 좀 읽어보라고 건네주고 싶을 정도다. 나는 강원도에서만 살다가 태평양 건너 이민을 왔는데도 나이가 들수록 한국의 아랫녘 사투리가 차~암 좋다.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면 꼭 수려하게 뽑아내는 민요나 창을 듣는 것 같아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카타르시스 비슷한 것을 느낀다. 그럴 때면 갑자기 내가 알고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들이 한꺼번에 그리워진다. 아마 분명한 대상이 없는 막연한 그리움이 이런 것이리라.
조구철이 되믄 이 동네 지붕이 조구 말린다고 난리가 아녀. 먼 데서 보믄 눈 온것맨치 하얗게 보였단께. 칠산바다라는 말 들어봤는가. 여게가 그 놈의 칠산바다여. 조구 대가리에는 돌이 들었다 말이여. 그 돌대가리들이 봄만 되믄 대가리를 흔들이 울어쌌는디, 바다가 시끄러워 잠을 못 잤은께. 저 인천 앞에 연평인가 그게 조구도 맛나다고는 하는디, 여게 조구만 하것는가. 봄에는 칠산바다 조구 둠벙이고 가을은 망덕포구 전어 둠벙이라 했다 말이여. 망덕은 저 아래 광양이여. 그만큼 맛나다 이 말이제. 봄에 칠산 조구 한 마리도 몬 얻어 먹으믄 그게 사는게 아니여. 그놈의 것을 생으로도 탕을 낄이는데 아이구메, 그 맛이야 말로 다 못하제. 인자 이 비 끝나믄 한참 더울 것이여. 더우믄 밥도 잘 안 넘어간다 말이씨. 그라믄 조구에 소금 뿌려서 말린 것 안 있는가. 굴비 말이여. 그 놈을 숯불에 굽고 식은 보리밥 한 댕이를 찬물에 말아서는 간간한 고 놈을 뜯어서 반찬으로 묵어봐. 아부지고 엄니고 동생이고 형이고 암것도 눈에 안 보인다 말이여. 참 맛난 것이여. 그것이.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중에서>
어느새 조기 맛은 잊고 말 맛에 취해 즐거워진다. 어느 봄날, 유난히 힘겨울 때, 꼭 한번 써먹어야지.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여. 이 봄에 칠산 조구 한 마리도 몬 얻어먹고.
지나온 어느 봄날의 심인성 몸살을 조기 탓으로 돌리지 못한 게 아쉬워서 다가오는 여름 어느 힘든 날엔 '굴비'탓이나 해볼까 싶지만 아마 그땐 녹차에 밥을 말고 겨우 손바닥만 한 민어의 살이나 발려먹으면서도 그저 흡족해서 멋들어진 투정의 기회를 또 놓치고 말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