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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Jan 23. 2024

관계의 틈 _ Seven Sisters

Hope Gap, 2019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누군가의 변화는 ‘갑자기’ 결정한 것처럼 보이기가 쉽다. 하지만 ‘갑자기’ 이뤄지는 결심이나 결정은 거의 없다.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누군가 갑자기 돌변해서 ‘우리’라는 관계에서 빠져나간 것 같아도 관계를 깬 당사자는 오랫동안 망설이며 혹시 단절하고 싶은 마음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수없이 되짚어봤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낯설지 않은 한 방울의 물이 또 떨어졌고, 표면적으론 사소한 ‘한 방울’에 불과한 그 물이 촉매가 되어 컵 안에 아슬아슬하게 담겨 있던 물이 넘치는 것이다. 그렇게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Hope Gap (2019)

Director & Writer _ William Nicholson

Stars _ Annette Bening, Bill Nighy, Josh O'Connor

한국어 번역 제목 _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호프 갭 Hope Gap은 영화의 배경이 된 지역에 있는 한 장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마치 이 지명을 보고 영화를 만든 것처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를 향한 관심과 위로로 시작한 동행이지만 각자의 사랑하는 방식과 희망이 달랐고, 그 다름으로 인해 깊어진 '틈'을 메울 수 없어서 결국엔 사이가 벌어진 채로 살아간다. 여자는 그 틈을 사이에 두고도 함께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남자는 더 이상 틈을 견딜 수 없어 떠나려고 한다. 이제는 이별조차도 동음이어가 된 두 사람. 그래서 이 영화는 관계의 틈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긋난 희망의 틈에 빠진 스스로를 끌어내, 그래야만 했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잊고 사는 날이 더 많다. 인간은 타인의 노력 따위론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나 필요한 만큼 솔직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다소 다혈질이고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만이 옳다고 밀어붙이는 편인 아내 그레이스와 그와는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남편 에드워드, 그리고 아버지와 닮은 성격이고 자신도 여자친구와 문제가 있지만 부모님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절망에 빠진 엄마를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애쓰는 아들 제이미의 이야기다. 결혼 29주년 기념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에드워드는 집을 떠나겠다고 한다. 아내는 그가 그동안 관계가 좋아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남편은 29년 동안 노력했지만 당신에게 난 늘 부족하고 틀린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스토리의 표면적인 화두는 이혼이지만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나쁜 습관처럼 이어진 관계를 반추하며 그 속에서 타성에 젖어 표류하거나 기생하는 감정을 짚어보게 하는 영화다.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나를 찾을 수 있다는 뻔한 결론도 슬그머니 끼어든다.


그레이스는 언제나 마시던 차를 남기고 새 차를 원한다.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자기도 그게 궁금하다면서 어쩌면 자기는 무엇인가가 끝난다는 게 싫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행동이나 말에 숨어있는 복선이 꽤 있는데 초반부에 나온 이 장면도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레이스를 암시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의 표현을 요구하는 그레이스, 하지만 표현 방식은 사랑을 원하는 게 아니라 시비를 거는 사람 같다.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온 살얼음판 위에서 결정적으로 얼음을 깬 건 에드워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초반에 나타난 그녀의 다그치는 말투와 과격한 행동, 아들에게 부모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재촉하는 독단적인 표현이 불편했다.(하마터면 아네트 베닝까지 지겨워질 뻔했다.) 내가 에드워드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럴 거라며 버틴 장면이 꽤 된다. 그레이스의 충격과 절망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에, 상대를 비난하고 관계의 개선을 강요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이 또 있을까. 아버지의 가장 큰 잘못은 엄마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게 만든 것이라는 제이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끝까지 에드워드의 편이었다. 그의 오랜 견딤과 떠날 결심과 늦게라도 찾은 조용한 행복에 안도했다.


이혼 사유 중 가장 흔한 것은 '성격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성격차이'라는 이 단어 속에 얼마나 숱한 상처와 결심과 후회와 지겨움이 있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테고 그래서 얼핏 가벼워 보이는 이 사유가 어쩌면 가장 복잡한 이유일 수도 있다. 영화 속의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이유도 아주 단순화시키면 바로 '성격 차이'다. 그로 인해 함께 사는 동안  바라는 것이 달라 '틈'이 생겼고 그 틈이 점점 더 넓고 깊어서 무슨 수를 써도 다시 닿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희망, 실패, 사랑, 같은 카테고리로 시를 분류하는 작업을 계속해 온 그레이스로 인해 영화 속에는 여러 편의 시가 나오고 때론 보드라운 한 편의 시로 삭막한 마음과 동상이몽 같은 바람을 위로하기도 한다. 솔직히 처음엔 그레이스의 성격이나 말투와 '시'라는 설정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 시와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잠깐일망정 나의 편견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엄마가 분류한 시들을 웹사이트에 올리는 제이미 덕분에 다른 사람들까지 위로하게 될 거라는 암시를 준다. 문득,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네루다가 한 말이 떠올랐다. 시는 읽는 사람의 것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메타포로 잘 다듬어진 시구나 엄마를 위한 간절한 제이미의 대사나 꽤 긴 여운을 남긴 마지막 내레이션 등이 아니었다. 에드워드가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란 걸 깨닫게 해 준, 단 한 장면만 나오는 안젤라가 한 말이다. 안젤라의 소박한 집에 허락도 없이 불쑥 들어온 그레이스는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서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는 에드워드를 향해 당신이 원하는 게 고작 이런 지루한 삶이었냐는 식으로 말하다. 그때 다른 방에 있던 안젤라가 나오자 그레이스는 그녀를 향해 경멸 어린 말투로, 무엇이 당신이 이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했냐고 다그친다. 그때 그녀가 말한다.


전에는 세 명의 불행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제 불행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라고.


그레이스에게는 너무나 아픈 말이지만 이 모든 상황을 간결하고 솔직하게 정리한 말이었다. 결국 관계를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은 행복하기 위해서일 테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레이스의 고통과 미련이 측은하면서도 결국엔 그녀의 고통도 모나지 않게 시나브로 평안을 찾아가리라 믿어서 불안하진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사랑하는 시와 아들과의 소통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영화의 흐름과는 상관없는 주관적 경험치에서 나온 생각이다. 영화에서는 너무나 아름답게 이어지는 일곱 개의 라임스톤 절벽이 원경으로 보이는 곳에서도 마치 그 풍경처럼 아름다울 수 없는 삶을 비관하듯 '끝'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게 그곳은 위로와 희망이 되어준 풍경으로 남아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인 재작년 이월, 영국의 '세븐 시스터스 Seven Sisters'에서 보낸 문자와 사진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끌림 _ Seven Sisters 에서 온 소식


그 무렵 나는 몇 년째, 사람도 책도 글쓰기도 그림도 음악도 다 귀찮고 시끄러웠다. 책 속의 글자들도 시끄러울 수 있다는 걸 이때 경험했다. 성실하게 의무를 다하면 당연하게 차지할 수 있는 권리처럼 진행되던 삶이 어느 순간 지각변동을 일으켜서 나를 다시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패대기를 쳤다. 내 선택이었지만 단 하나뿐인 선택지를 선택할 때의 무력감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절망이다. 다시, 날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떠올리는 생활이 되었다. 희망이나 보람도 없는 싫어하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기 위해선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중해서 보지도 않는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영상을 멀찍하게 틀어놓고 소파에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서 가수면 상태를 들락거렸다. 그야말로 손도 까딱하기 싫고 머릿속엔 쌀뜨물이 꽉 찬 것 같은데도 마치 ‘진자’의 움직임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죽을 것처럼 피곤했는데도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렇게 6년이 지나갔다. 내 주변을 떠도는 무기력이니 번 아웃이니 하는 단어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질 무렵,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는 패잔병이 백기를 들 듯 이메일로 사표를 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살면서도 서로에게 별로 위로나 힘이 되지 못하던 그 시기에 아이도 건강이 나빠졌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꽤 인정받으며 일에 치여 살 때는 아무리 바빠도 불평하진 않았는데 회사가 점점 축소되고 납득하기 어렵거나 부당한 일들이 생기자 일은 훨씬 쉬워졌는데도 못 견뎌했다. 성취감이나 자긍심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오른 연봉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몸을 망가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몇 달씩 생리를 안 하고 호르몬 수치가 균형을 잃고 갑상선에 이상이 와서 체중이 비정상적으로 늘자 패밀리 닥터는 별말 없이 스페셜리스트와 예약을 잡아주었다. 그러면서도 잘 쉬지도 못했고, 운동을 하는 건 고사하고 누가 ‘운동을 하라’고 말만 해도 화를 냈다. 그러던 중에 15년 동안 함께 살았던 강아지 ‘유키’가 세상을 떠났고 슬픔은 깊고 오래갔다, 아이는 모든 것이 더 이상 나빠지지 못할 만큼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살다 보면 이런 시기가 몇 번쯤 오는 게 인생이고 이 또한 결국엔 지나간다는 것을, 막상 닥쳤을 땐 수긍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뭔가 변화를 주지 않고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최선은 아닐지라도 최악을 덜어내 수는 있는 최소한의 것이나마 필요했다. 아이는 미뤘던 휴가를 모아서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날마다 보내는 문자와 사진 속의 아이는, 갤러리와 박물관을 돌아다니고 파머스 마켓에 가고 뮤지컬을 보고 그 맛없다는 영국 음식도 생각보단 괜찮다고 하면서도 호텔 근처에서 컵라면을 파는 가게를 발견하고는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환호했다. 런던에서 살고 있던 친구들과 함께 프라하로 여행을 다녀오더니 어느 날은 혼자 새벽기차를 타고 씨포드 Seaford에서 내린 후 세븐 시스터스 seven sisters를 여섯 시간째 걷고 있다며, 비현실적인 색감을 지닌 라임스톤 절벽이 펼쳐진 풍경과 꽁꽁 싸매고도 바람에 얼굴이 붓고 입술이 터진 사진을 보내왔다. 엄마, 나 피리어드!  5개월 만이었다. 나는 아이가 보내준 사진들을 몇 번씩 다시 보며 바람이 웅성거리는 돌아다니는 아름다운 바닷가 절벽 위를 걷는 상상을 했다. 오랜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고,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다 잘 해결될 것 같았다. 아이는,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인해서 세븐이 아니라 에잇 시스터스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존재하는 것들은 언젠가는 닳거나 허물어진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으로 빚어지는 관계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라지거나 달라질 리 없다고 믿었던 것들의 변화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아이가 보내주었던 사진들


아이는, Hope Gap라는 이정표를 본 적은 없고 자신이 기억하는 건 Birling Gap이지만 영화를 보니 아마 여기쯤이 Hope Gap일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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