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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Jun 20. 2024

방구석 여행기라도 써야 할까요?

여행의 기술 _ 알랭 드 보통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긴 하지만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제가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책 중에서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오늘 아침 갑자기, 오래전에 읽었던 이 책이 떠오르는 일이 생겨서 서가 앞에 섭니다.


요즘엔 오디오북을 듣는 게으른 독서 중이라 종이책을 읽는 건 오랜만입니다. 한국책을 구하기가 어려운 곳에 살다 보니 이민올 때 이삿짐 아저씨들께 구박을 받으면서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애지중지 품고 있던 책이 방의 두 벽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모두 두세 번씩은 읽었고, 대부분이 다시 읽지는 않을 책이란 걸 말이죠. 다시는 읽지 않을 책을 끌어안고 있는 것도 낭비나 허영이란 생각이 들어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세 번에 걸쳐 책 정리를 했더니 이제 남아있는 한국어로 된 책은 오십여 권 정도밖에 안 됩니다.


아마 없을 텐데.. 괜히 정리했나.. 누구한테 줬더라.. 이러면서 별 기대 없이 찾아보았는데 아, 있네요!  알랭드 보통의 책은 '불안status anxiety'만 남겨둔 줄 알았는데 그 옆에 나란히 꽂혀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한 번 더 읽어야 본전(?)을 뽑을 것 같아서기도 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붙인 글이 좋아서였던 것도 같습니다. 선 채로 몇 장을 읽다가 자발적 분서갱유(정말 태운 건 아닙니다.ㅎ)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하나 더 떠올랐습니다. 책 속에 짧게 나오는 두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J.K.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 A Rebaurs'의 주인공인 떼제 생트 공작이 그중 한 사람입니다. 퇴폐적이고 염세적인 성향을 지닌 귀족인 그는 파리 교외의 드넓은 별장에서 혼자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추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몇 시간 동안 근처의 마을로 나간 적이 있는데 오히려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더 강해져서 그 후로는 서재의 침대에서 지내며 고전문헌들을 섭렵하고 홀로 인간을 비판하는 재미로 삽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난롯가에서 '찰스 디킨스'를 읽다가 갑자기 영국인들의 삶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해져서 하인과 함께 이민 가방 버금가는 짐을 꾸려서 런던으로 가기 위해 집을 떠납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런던 안내'라는 책자를 사서 읽으면서 백일몽에 빠집니다. 이미 여행을 온 사람처럼 상상 속에서 주점에도 가고 사람들도 만나고 식당에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기차를 타야 할 시간이 임박하자 강한 현타가 오고 급작스런 권태에 사로잡힙니다. 실제로 여행을 하면 얼마나 피곤할까. 기차를 갈아타야 하고, 짐꾼을 차지하려 다퉈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 누워야 하고, 줄을 서고, 때론 추위에 시달려야 하고.. 기타 등등.. 내 집 의자에 편히 앉아서도 책을 통해 여행을 할 수 있는데 사서 고생을 하려고 했다니.. 내가 잠시 미쳤었구나.. 라며 바로 집으로 돌아와, 다시는 집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차를 타기 직전에 그를 혼란스럽게 했던 생각이 남의 얘기같지 않아서 격하게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공예같은 것조차 책으로 배운 저는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나 바람도 그런 식으로 해소했던 것 같습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에 200% 공감하는 인간이었거든요. 익숙한 것, 청결한 것에 집착했고 사람 많은 곳과 여러 종류의 탈것등이 싫었고 무엇보다도 내 침대의 정갈함과 안락함을 포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여행에서 좀처럼 만족할 수 없는 항목이거든요. 게다가 저는 한 달 내내 집에만 있어도 무료하거나 답답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평온해지는 성향입니다. 물론 오랜 이민생활 동안 포도청을 위해서 일하느라 날마다 출근을 하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견뎌야 했던 시간에 대한 부작용일 수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인 성향이 내성적이고 집순인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그렇다고 게으른 건 아니라서 날마다 정해진 루틴대로 꽤 바지런하게 사는 편입니다. 잠자는 시간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하고 있죠. 그리고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서 그 누구와도 부드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회적 스킬도 있는,  단지 타인이나 낯선 환경에 에너지를 너무 쉽게 빼앗기는 내향적 인간의 표본일 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울리지도 않게 꽤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여행기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여행기를 쓰면서 집순이라니 말이 되냐고 웃으시는 분도 있었지만 굳이 해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저는 가성비를 존중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론 꼭 필요하면 가격을 보지 않고, 필요하지 않으면 파격 세일이라 해도 별로 유혹을 받지 않는 성격입니다. 제가 말하는 가성비는 주로 '상황'에 따른 것입니다. 만만치 않은 항공료를 들여 한국에 간데다 계획이 틀어져서 다시 밴쿠버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더구나 사정상 편도로 오고 가서 왕복표보다 훨씬 더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몇 달이 괜히 허무해서 뭐든 날 위해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지자체에서 하는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는데 숙박비 지원이란 달콤한 유혹을 모른 척할 수 없었고, 몇 달동안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지친 상태라서 나 홀로 하는 여행이란 것에 끌려서 망설임 없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 '김해'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다른 사이트에 의무적으로 여행기를 올릴 때는 조금 느슨했습니다. 그러다 그래도 내 경험이고 내 글과 사진으로 부려놓은 것들인데 이왕이면 스스로 흡족할 만큼의 노력은 들이고 싶어서 브런치에 다시 여행기를 올렸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총 19편을 올렸으니 6주 정도 꽤 열심히 썼더라고요. 중간에 고마운 피드백 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끝까지 텐션 유지하며 잘 썼습니다. 다시 감사합니다. 몇몇 글에 편중적이긴 했지만 여행기의 전체 조회수가 10만이 넘어서, 누군지 모르는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김해 한 달 살기'는 가성비가 훌륭했습니다. 덕분에.


둘째는 저는 여행기라기보다 에세이를 쓴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매 글마다 해시 태그로 '여행에세이'를 붙이면서도 결코 여행이 아니라 '에세이'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물론 제 속마음이었으니 누가 제 속을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라뇨?


의외의 분야라 당황은 했지만 싫은 건 아니고 솔직히 즐거웠습니다 . 브런치의 글쓰기는 저를 위한 유희긴 하지만 공개했을 때는 누군가 읽고 공감해 주길 바라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좀 멋적고 난감했습니다. 저, 집순이거든요.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싫다기보다는  알랭 드 보통의 글처럼  '....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거나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가 여행의 즐거움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거든요. 이제쯤, 행동반경이나 마음의 영역을 바꿔서 살아보라는 계시, 아니 계기인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자꾸 헛웃음이 났어요.


에세이나 창작분야가 아닌 '여행' 분야는 자격미달이라 생각하기에 괜히 죄송하기도 하고 난감합니다. 여행 관련 명찰 달았다고 꼭 여행기만 쓰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메인 메뉴를 떡 걸어놓고 사이드메뉴만으로 장사를 할 순 없잖아요. 이 혼란한 중에도 머리속은 분주합니다. 오래된 여행 사진이나 글이라도 풀어야 하나.. 그래도 다행이다 시월에 한국 가니까 여행은 여행이잖아.. 예전에 쓰려다가 돌아다니는 거 귀찮아서 시작도 안 했던 '홈타운 여행기'로 방향을 정해야 하나... 이렇게 혼자 생각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이제 이 책에 나오는 또 다른 특이한 사람을 소개해야겠군요.


프랑스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1763-1852)는 튀랭의 한 아파트 꼭대기 층의 소박한 방에서, 자신의 방을 여행하기로 합니다. 여행을 갈 만큼 충분한 돈이나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여행의 묘미를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로 시작해서 나중엔 '나의 침실 여행'이란 제목으로 출판까지 합니다. 이어서 1798년에는 밤에 침실의 창문턱까지 여행을 나가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침실 야간 탐험'이란 책도 냅니다. 그의 책들은 세속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여행에 대한 새로운 의도와 흥미롭게 전개된 시작글의 감동을 계속 이어가지 못해서 기본적인 목적을 잊었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그의 '방 여행기'는 심오하고 의미심장한 통찰로부터 출발했다면서 이런 글로 그를 거듭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 여행의 심리를 우리 자신이 사는 곳에 적용할 수 있다면 이런 곳들도 훔볼트가 찾아갔던 남아메리카의 높은 산 고개나 나비가 가득한 밀림만큼이나 흥미로운 곳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을 하는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게 된다.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게 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때문에 짜증이 난다. 우리가 교통섬이나 좁은 도로에 서서 그 사람들에게는 눈여겨볼 것이 없는 사소한 것들에 감탄을 하기 때문이다.... p.334



'바베이도스'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런던의 집으로 다시 돌아온 보통은 모든 것을 여행지와 비교하며 런던에 대해 일시적으로 절망합니다. 하지만 그는 '드 메스트르'의 방 여행기를 소개하며, 우리는 지금 늘 걷는 거리에 있는 수많은 것들 속에서 단지 내 관심의 틀에 맞추어진 몇 가지만을 적극적으로 의식하고 나머지는 놓친다면서 '일단 나는 모든 것에 잠재적인 흥밋거리가 있고, 가치들이 층층이 잠복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라고 썼습니다.


저 또한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돌아오고 나서 느끼는 여행과 현실 간의 괴리감이 싫어서였습니다. 내 삶을 바꿔놓지도 못하는데 돈과 시간을 들여서 여행을 떠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오히려 그런대로 잘 적응하던 일상을 덜그럭거리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했었죠. 쉼이나 힐링이라는 여행의 순기능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아직도 이런 생각으로 더 기울기는 합니다.


이제, 여행을 자주 가지 않는 사람이 여행기를 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대개 우리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곳도 자세히 모르면서 여행이란 단어 앞에선 늘 다른 '장소'부터 떠올립니다. 같은 이유기도 하겠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도 누군가에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여행지일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보통의 말처럼 '여행 장소'가 아니라 '여행하는 심리'에 충실하면서 내 주변을 수용적인 태도로 다시 돌아본다면 굳이 무리해서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여행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막을 건너고, 빙산 위를 떠다니고, 밀림을 가로질렀으면서도, 그들의 영혼 속에서 그들이 본 것의 증거를 찾으려고 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분홍색과 파란색이 섞인 파자마를 입고 자신의 방 안에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우리에게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하라며 슬며시 우리 옆구리를 찌르고 있다.... P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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