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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Feb 08. 2024

의대 증원 2000명에 대한 생각

외과 전문의 시험 후 알게된 의대 증원


이번 달이면 전공의 신분이 종료된다. 인턴과 레지던트, 총 4년간의 전공의 수련 수료증은 '전문의 자격증'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그 자격증은 단순히 시간만 버텼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련 기간 동안 보고, 듣고, 혼나면서 쌓은 지식을 검증해야 했다. 엊그제 보았던 전문의 자격시험이 검증의 일환이었다.


그간 뜬눈으로 지새운 당직이, 허리를 부여잡으며 서있었던 수술방이, 헛되지는 않았었다. 비교적 무난히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무난하지 않은 것은 시험 후에 찾아왔다.


'의대 2000명 증원'


전문의 시험 다음날 나온 소식이었다. 필수 의료 인력 충원을 위해 정부는 의대 증원 2000명이란 정책을 발표했다. 시험이 끝난 홀가분함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근거도, 대책도, 계획도 불충분한 정책에 허무함과 분노가 밀려왔다.


정부는 필수 의료, 지방 의료 인력 부족에 대한 대책으로 의과 대학 입학 정원 5000명을 내놓았다. 5년간 총 1만여 명의 의사를 공급하겠다고 한다. 10년 뒤 1만 5천 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통계적 근거는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필수 의료 인력 부족에 대한 대책이 의사 수의 증원이 아님을,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전공의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엊그제 치른 전문의 시험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응시자 수는 149명이다. 한 해 배출되는 3000명의 의사 중 필수 의료에 해당하는 외과 전문의 수가 5%가 안되었다. 교통사고로 실려오는 환자를 응급실에서 마주했을 때, 이들 중 몇 명이나 자신 있게 배를 열 수 있을까? 필수 의료 인력이라고 여러 번 뉴스에 나온 소아외과는 이 중 몇 명이나 전공할까? 향후 20년간 기꺼이 당직을 맞이하며 새벽에 응급 수술을 할 전문의는 몇 명일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필수 의료 인력'으로 '지방'에서 수술을 할 외과 전문의는 149명의 절반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절반의 절반도 의문이다. 소아외과 전문의? 소아의 초응급에 해당하는 '중장염전'을 한밤중에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5명도 채 안 될 것이다.  3000명 중 0.1%, 단 3명만 소아외과를 전공해도 감지덕지한 수준이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병원인 본원에서도 소아외과 세부 전공의 지원자는 2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순천향대 소아전문 응급센터 전문의들은 모두 병원을 떠났다. 있던 전문의들조차 병원을 떠나고 있다.


지금 국민이 필요로 하는. 구급차에서 병원을 전전하지 않고, 아기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3000명인 의사 배출을 5000명으로 늘리는 게 해답일까? 결코 아니다. 더 많은 의사들이 필수 의료를 택하게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한다.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의 여건을 개선해 주면 된다. 현재 외과 전공의를 하면서 느끼는 필수 의료의 기피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돈이 되지 않는 과            

 - 다양한 이유로 삭감되는 의료비와 여전히 낮은 수가 덕분에 수술과 여러 필수 의료는 병원 경영에 도움이 안 된다.

2. 응급이 존재하는 과

 - 기피과가 된지 이미 십 년이 넘었다. 그 덕분에 해가 갈수록 필수 의료과 전공자가 줄어들고, 줄어든 수만큼 당직 수가 늘어났다. 늘어난 당직 수 덕분에 더욱더 기피과가 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들었다. 의사 개인 인생의 응급인 의료 소송도 덤이다.

3. 공부 못하는 의사가 하는 과

 - 돈 잘 되는 미용과 인기 과에 밀려 필수의료는 여전히 비인기과이다. 인기과에서 떨어진 사람이 하는 파트라는 인식이 필수 의료의 현실이다.


이 외에도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 세 가지만 보더라도 필수 의료를 택하지 않은 이유는 충분했다. 의대생 수를 늘려야 할 것이 아니라, 집 나간 필수 의료 인력을 다시 데려와야 하는 게 먼저다. 그들에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단순한 증원보다 필수 의료 수가 정상화, 의대 교수 증원, 사법 리스크 완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등 자발적으로 필수 의료를 택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정부는 의대 입학 10년 뒤에나 나올 전문의들로 미용시장의 포화 낙수효과를 기대한다. 미용으로 돈못버는 의사들이 필수과, 기피과를 선택하면 인력이 더 늘어날 것이란 논리다. 이미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도 의대 증원 시 더 많은 미용시장으로 들어가는 의사가 더 많아질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 미용시장의 포화로 어쩔 수 없이 수술과 응급 진료를 행하는 의사들의 진료가 과연 양질의 행위로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본인은 학생 때부터 외과를 선택했다. 외과를 선택한 건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다. 수술이 좋았고, 수술방에서의 몰입이 좋았으며, 수술 전후가 다른 환자의 컨디션에 보람을 느꼈다. 또한 교수님들의 가르침덕분에 합법적으로 칼을 쓰는 행위에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게되었다. 나의 무지와 실수로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기 위해 무수한 시간을 공들여 수련했다. 전공의 일기도 그 일환이었다. 당직 틈틈이 기록을 남기며 이 수련의 기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더 좋은, 더 똑똑한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전공의 4년을 보내고 뉴스 댓글로 알게 된 사람들의 인식은 '밥그릇 싸움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하룻밤 사이 환자 세 명이 'expire' 했던 중환자실의 당직을 아직도 기억한다. 혼이 나간 채로 추운 겨울에 커피 한 잔을 부여잡고 아침 퇴근길 지하철 두 정거장을 그냥 지나쳐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술을 좋아하고 이변 없이 이번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한다면, 향후 몇 년간은 더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무탈했으면 좋겠다. 마음 편히 수술을 익힐 수 있고, 더 많은 동료들과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공부를 못해서 된 외과 의사가 아닌 사람 살리는 의료에 보람을 느끼는 외과 의사로 인식될 수 있길 희망한다.



cf. 2020년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평균 의사 수는 2.51명, OECD 평균은 3.6명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전문의 10명도 만나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다음 기사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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