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원 간 수술은 주로 이식 파트에서 담당한다. 보통 간 절제술은 병원 별로 수술 파트가 상이한데, 어떤 병원에서는 간담췌 외과에서 간 수술을 한다. 각 병원의 교수님 전문 분야 및 파트 인력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먼저 간수술은 외과 수술 중에서도 난이도 최상이다. 전공의들은 수련 기간 중 간절제술 집도는 감히 넘보지도 못한다. 전공의 시선에서 간 속에 파묻힌 혈관과 담도를 구분하는 일은 눈 감고 땅 짚는 행위이다. 피 내지 않고 깔끔하게 수술을 마치려면 전문의를 취득하고, 간파트 세부 전문의로 몇 년은 더 수련해야 한다. 그래도 부담스러운 수술이 간 수술이다.
많은 수술이 복강경으로 대체되었지만, 간절제술을 복강경으로 하는 교수님은 흔하지 않다. 이 사실을 지난 전공의 기간에는 알지 못했다. 본원의 교수님들은 마치 간 절제술의 역사가 복강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듯, 복강경으로 간을 잘라내셨다. 개복 간수술은 이따금씩 행해졌고, 복강경을 당연하게 여기는 교수님들 덕택에 전 세계의 모든 간파트 서전(surgeon)이 복강경 수술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의료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복강경 간절제술을 할 줄 아는 의사면 서로 모셔가려고 한다고 했다. 비정상적으로 잘하시는 교수님들 덕에 오히려 비정상을 정상으로 알고 있었다.
자칫하면 피가 콸콸 흐를 수 있는 간수술은 마취과 의사에게도 쉬운 수술이 아니다. 수술 전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미리 혈액을 준비해 놓고, 여러 굵은 라인을 환자 몸에 달아놔야 한다. 대개는 잘 끝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항상 대비가 필요했다. 수술 중 어떤 이벤트가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수술을 몇 천 케이스는 하신 A 교수님의 복강경 간 절제술이었다. 무난히 잘 진행되고 있던 도중 어디선가 피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찔끔 나오던 피가 수술 부위가 안 보일 만큼 많이 흘렀다. 썩션이 소용이 없었다. 피가 나는 부위를 알 수 없었다. 간을 뒤로 돌려 확인해 보니 하대정맥 일부가 열려있었다. 하대정맥은 우리 몸의 가장 큰 정맥 중 하나이다. 급하게 마취과 B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항상 친근하신 마취과 교수님의 표정은 전혀 평소 같지 않았다. 당황하기는 A 교수님도 마찬가지였다. 유머러스함을 삶의 가장 큰 가치 중 하나라고 여기시는 교수님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마취과 교수님은 갑자기 환자 모니터를 돌렸다. 수술자인 A 교수님이 볼 수 없게 일부러 돌린 것이다. A 교수님은 수술을 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물어봤다. 환자가 괜찮냐고. 모니터를 확인할 수 없으니 같은 물음만 10번을 넘게 물었다. 마취과 교수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괜찮아~ 그냥 해.'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몰래 자리를 옮겨 본 환자의 모니터는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할 만큼 환자의 바이탈이 좋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마취과 교수님은 혈액 백을 손이 붉어질 때까지 짰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변하지 않으셨다. 다행히 A 교수님은 안 보이는 출혈 부위를 감에 의존해 침착하게 봉합하였다. 그러자 환자의 모니터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이 수술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피가 났던 그날의 이벤트가 아니었다. 수술이 끝난 후 마취과 교수님이 전공의에게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마취과 의사는 수술자를 안심시킬 수 있어야 해" 무심하게 한마디 하고 나가시는 마취과 교수님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수술은 서전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 놓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마취과 선생님의 역할도 너무나 중요했다.
수술자인 A 교수님도, 마취과 B 교수님도 수술 중 환자가 죽을 뻔한 상황을 감내해 내는 마음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느끼게끔 하는 스페셜리스트 교수님들도 이런 날이 있었다. 그리고 훗날 분명 나 또한 겪을 수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수술 실력을 늘리는 것이 답인지, 이 부담스러운 수술을 안 하는 전공으로 바꾸어야 할지, 아니면 사회적 제도가 개선되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