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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Mar 17. 2024

거짓말하는 전공의

'Jeolousy cure'의 저자 Robert L. Leahy는 인간을 '타락한 천사'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선하지만 가끔 실수를 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내포한 표현이었다. '타락'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성격 탓에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하고, 거짓말을 했던 과거를 떠올려볼 때 불완전한 존재임은 분명하다.


아직도 기억나는 3년 전의 거짓말이 있다. 1년 차, 이제 막 외과에 입국한 시기였다.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환자를 보는 주치의가 되었다. 입원부터 퇴원까지 환자의 처방과 기록을 담당하였다. 종이 한 페이지에 다 담기지 않았던 환자 명단은 새벽 5시 반의 출근길에서부터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대장항문외과 교수님의 아침 회진 시간은 7시 반. 그전까지 수술 '할' 환자들의 일정, 수술 '한' 환자들의 경과를 파악해야 했다. 병동의 밤사이 이벤트를 확인하고 금식 여부, 소변량, 대변 여부 등을 정리해 교수님께 브리핑하는 것임 주치의 임무였다. 환자 파악도, 브리핑도 익숙하지 않았던 전공의 1년 차 4월 아침엔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무서웠던 교수님의 회진은 그 긴장감이 두 배였고, 환자 관련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그 무기력감, 적막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질문에 척척 대답을 해내는 유능한 전공의가 되고 싶었지만, 환자들 40명을 머릿속에 입력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당직 후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잠깐 잠들어 평소보다 출근이 늦었다. 머리도 감지 못한 채 당직실에서 나왔다. 스테이션에 나오자마자 수정이 필요한 전날 동의서를 받으러 병실을 오갔다. 그 사이사이 환자 파악을 하고, 밤사이 쌓인 노티를 확인하며 필요한 처방을 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회진 명단을 뽑기도 전 교수님이 오셨다. 불완전함 그 자체로 회진이 시작되었다. A 교수님의 담당 환자들은 25명. 한 주에 수술을 가장 많이 하시는 교수님이셨다. 환자가 많은 탓에 회진은 정신없이 빠른 걸음으로 돌아야 했고 환자 앞에서, 병실을 이동하는 사이사이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분은 오늘까지 금식인가?"

"네 오늘까지 금식 후  내일부터 물드십니다."

"어제 운드(Wound)는 어땠지?"

"괜찮아서 half stitch out 했고, 퇴원 전에 total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회진 시간에는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간다. 환자 파악이 잘 되어있어야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대화들이다. 거짓말은 회진이 끝날 무렵 750호 병실 앞에서 나왔다.


"이분은 아직 폴리(foley catheter)를 가지고 있나?"


순간 기억이 안 났다. 소변줄을 어제 빼자고 한 거 같은데, 아침 전산에서는 본 거 같기도 했다. 더 중요한 건 회진 전에 환자를 미리 보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급한 마음에 고민보다 말이 앞서 나왔다.


"어제 뺐습니다!"


말 그대로 찍었다. 반반의 확률이었다. 그러곤 750호에 들어갔다. 가자마자 본 환자의 침대에는 소변줄이 떡하니 달려있었다. 보기 좋게 찍은 것이 틀렸다. 민망함이 온몸을 감쌌다. 교수님은 아무런 내색 없이 환자를 보셨고, 뻘쭘하게 그 상황을 커튼 뒤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병실을 나오는 길에 교수님은 나지막이 한마디 하셨다.


"권 선생 거짓말을 했네."


쥐구멍을 찾아서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답을 못하는 무기력감과 적막감에 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소변줄의 여부가 환자에게 중대한 사항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환자 파악을 못했다는 증거였다. 교수님은 나를 더 탓하지도, 더 감싸지도 않으셨다. 딱 저 한마디를 끝으로 회진이 끝났다. 담당 환자가 많았고, 아침 동의서가 밀려있었고, 어젯밤 당직이 바빴다는 핑계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덕분에 다음 회진부터는 아침 출근시간이 더 빨라졌다. 그리고 모르는 질문에는 "확인해 보겠습니다."라는 대답으로 바뀌었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아래 연차 선생님들의 회진 시 '찍기' 스킬은 대답의 타이밍과 목소리부터 다르단 것을 깨달았다. 이미 교수님은 찍을 때부터 알아채셨을 수도 있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나의 뇌리에 머물렀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할 줄 아는 능력은 상당한 고급 기술이었다. 그리고 아는 체했던 거짓이 드러난 순간은 어마어마한 후회와 민망함을 안겨주었다. 분명 살면서 여러 번 실수를 하고 뻔뻔함의 가치를 느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뻔뻔함'과 '솔직함'의 균형은 어느 지점에서 잡아야 할지 여전히 의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타락한 천사'라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


요즘 회진은 종이가 아니라 태블릿으로 이뤄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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