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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Jul 21. 2024

북리뷰 41. 프레임 - 최인철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프레임 - 최인철

 


부쩍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이사를 하고 긴 통근시간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더 독서 시간이 줄어들었다. 퇴근 독서대신 집에서 당연히 책을 읽을 줄 알았지만, 퇴근만 하면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피로에 절은 몸은 더는 활자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활자 중독인가라고 의심할 정도의 과거의 내가 무색했다. 다시 한번 나를 바로잡기 위한 독서로 꺼내든 책이 최인철 교수님의 '프레임'이었다.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알고 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자신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적게 보았다. 다시 말해 '나'의 입장에서 타인은 짧은 시간에도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이지만, 나 자신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복잡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나는 한눈에 척 보면 너를 알지만. 너는 척 봐서는 나를 모른다는 생각이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정답은 '나도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른다'거나 '나는 네가 나를 아는 정도만 너를 안다'이다.


 - 해가 갈수록 사람을 더 빨리 판단하게 되었다. 첫인상과 단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 혼자 낙인을 찍기도 했다. 그만큼 상대방을 금방 파악한다고 생각했다. 철저한 착각이었다. 글에서도 말했듯 나의 입장에서 타인은 짧은 시간에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라고 치부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은 나를 단순하게 판단하지 않기를 바랐다.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관계 안에서 더욱 이기적으로 변모한 셈이다. 본인이 상대방이 아닌 이상 우리는 절대 상대방을 온전히 알 수도 없으면 판단할 수도 없다. 관계 안에서 더욱 겸손해야 하는 이유였다.



상황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습관을 갖게 되면 우리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 미치는 주변 상황의 힘, 특히 타인의 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 타인을 즉각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상황을 찾아보려 노력하게 되므로 조금 더 관대해진다. 한마디로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 프레임이 인도하는 지혜의 끝은 '나 자신이 타인에게는 상황이다.'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그 사람의 내면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상황 때문에 기인한다는 깨달음, 그것이 지혜와 인격의 핵심이다.


 - 사람 프레임 대신 상황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라. 불편한 상황에서도 사람보다 그 사람을 둘러싼 상황을 바라보면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왜 상대방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그를 둘러싼 상황이 설명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상황 안에 '나' 또한 포함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있어 '나'는 상황의 일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본받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그 사람의 전기나 자서전을 읽고 그 사람처럼 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반복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그런 대상이 없다면 뮐러처럼 자신이 가장 되고 싶은 이상적인 자기를 만들어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자신에게 들려줘라.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현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소설가 마샤 뮐러의 이야기이다. 오랫동안 실직 상태에 있던 뮐러는 자신이 만들어낸 소설 속 가상의 인물처럼 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자신이 정말로 그 사람처럼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상과 반복은 창조의 원동력이다. 부자가 되려면 이미 부자인 듯 행동하고, 유명인이 되고 싶다면 이미 유명해진 상상을 하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멘토나 스승, 그 존재가 없다면 가상의 인물을 상상하고 생생하게 떠올리는 반복을 해야겠다.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Every exit is an entry somewhere - Tom stoppard"


 - 이 책의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마지막 epilogue에 있었다. 지난 13년간 매일같이 가던 헬스장을 더는 못 가게 되었다. 운동을 못하게 된 상실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자부했던 건강을 잃었다는 충격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고 받아들이기 힘겨웠다. 하지만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있는 법이었다.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기보다 회복 후 앞으로 시작될 새로운 운동과 나의 모습을 상상해야 했다. 이 끝이 또 어떤 입구로 들어갈지, 아쉬움과 기대는 시간의 차이일 뿐 항상 같이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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