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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Nov 17. 2024

43. 몰입의 기술 - 칙센트 미하이

삶에 몰입이 필요한 이유

몰입의 기술 - 칙센트 미하이


황농문 교수님이 쓰신 '몰입'에서 알게 된 책이다. 황농문 저자의 책에서 여러 번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기술'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몰입이라는 주제에 대해 알아갈수록 칙센트 미하이는 이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책은 절판된 상태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잊고 지내던 중 중고매장에서 우연찮게 발견했다. 중고매장은 베스트셀러 대신 뜻밖의 귀한 책을 얻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몰입이 필요한 이유?


돈과 지위와 같은 객관적인 보상이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라는 생각은 이제 상식적인 가정이 되었는데, 이것을 행동주의적 용어로 말하자면 가장 원초적인 '강화 요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물질적인 재화를 얻으려 노력하는 것이 한 문화에 대한 사회화의 일부분이지 전부가 아닌 이유들도 있다.

 - 행동의 가장 원초적 동기는 물질적 보상이다. 강아지를 훈련시킬 때도 빠질 수 없는 요건이 간식이다. 당근과 채찍은 인간을 넘어 생명체의 근본적인 욕구와 두려움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원초적 동기로 해석할 수 없는 행동들도 존재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물질적인 보상을 위한 것이라면, 이 지구뿐만 아니라 서로를 고갈시켜야만 한다. 주지하다시피, 사람들은 언제나 자원과 물리적 에너지에 기초한 소유물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러한 자원과 에너지가 필요한 곳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공허하고 구차스러운 일상을 보상하기 위한 상징적 보상으로 이용될 때부터 낭비가 시작된다. 이 순간 악순환은 시작된다. 사람들이 외적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역할에 순응할수록 스스로는 점점 더 즐기지 못하게 되며 점점 더 많은 외적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그런 역할을 보다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상에 대한 필요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 돈과 재화의 영역에서는 누군가가 풍족하다면, 다른 누군가는 결핍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주식 시장과도 같다. 누군가가 주식으로 이익을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한다. 명예와 지위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높은 위치로 올라가면, 다른 누군가는 그 자리를 내줘야 한다. 행동의 동기가 오직 보상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고갈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미 그 악순환 속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상적인 활동의 무의미성과 그로 인한 소외를 우려하며, 경험의 불모성을 보상해 줄 상징적인 대안 요소들이 작용하여 외부적인 보상을 얻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걱정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몰입 활동에 눈길을 돌려, 그것으로부터 일상생활을 좀 더 유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배우려는 것이다.

 - 몰입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외적인 보상이 아닌 행동 자체의 내적 보상이 선행되어야 한다. 돈과 명예를 갈구하고,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일상에서는 행동을 즐길 수 없다. 그 대신 경험과 내적 보상을 중시하는 몰입을 통해 일상생활을 좀 더 유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특정한 행위에 몰입하는 것만이 아니라, 몰입을 통해 일상생활 전체의 질을 높이는 것. 몰입이 우리 삶에 필요한 가장 큰 이유다.



몰입이란?


몰입 상태에서, 행위란 행위자가 의식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는 내적인 논리에 따라서 행동이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몰입의 상태에서 행위자는 자기 행동을 조절할 수 있으며, 그 상태에서는 자아와 주변 환경, 자극과 반응, 과거-현재-미래 사이의 구분이 없다.

 - 책의 4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몰입에 대한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몰입 상태에서는 행위가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물 흐르듯 행동이 연결되고, 자신과 주변 환경의 경계가 흐려지며, 시간 감각마저 희미해진다.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사라지는 이 몰입 상태는 행동 자체의 즐거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도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몰입이란 완전한 방임이 아니라, 내적 질서를 유지하며 얻는 자유에 가깝다.



어떤 경우든 제어할 수 있다는 느낌은 몰입의 경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느낌이 '객관적'으로 평가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통제와 자아 경계의 확장 사이의 이러한 관계가 지니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은 개인과 사회의 와해라는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오래전에 지적한 바 있듯이, 소외란 사람이 노동에 투여되는 자기 삶의 일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 '소외란 사람이 노동에 투여되는 자기 삶의 일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생각해 보면 무기력을 느끼거나, 짜증, 불안을 느끼는 때는 본인 또는 상황을 제어할 수 없을 때였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자신의 하루와 생활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는 데 있다. 몰입에서도 마찬가지다. 행동과 생각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은 몰입의 시작이자 지속의 필수적인 요소다.



일상의 몰입을 위해선?



사람들이 쓸데없는 행동을 그만하게 되면, 피곤하고 졸리며, 건강하지 못하다고 느긋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들은 두통을 더 많이 호소한다. 그들은 자신을 보다 부정적인 용어들로 판단하며, 특히 창조적이지 않고 분별력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자연스러운 창조 능력은 감소된다. 응답자들은 정신분열로 고통받는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여러 면에서 유사한 경험들을 보고한다. 이것은 입원할 만큼 심각한 사고 분열과 몰입 박탈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의심케 한다.

 - 흔히들 몰입은 중요한 활동에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 또는 공부, 나를 성장시키는 행위들에만 몰입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몰입 박탈 실험 결과는 아니었다. 별 도움(?)이 안 되는 모든 활동들, 공상, 텔레비전 시청, 껌 씹기, 산책, 스트레칭, 테니스, 잡담 등을 일상에서 박탈하였을 때 실험자들은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였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행위들에 조금씩 몰입을 해온 셈일 수도 있다. 그리고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하는 사소한 행위들이 일상을 지켜주고 있었다.



재미는 쾌락과 동의어가 아니다. 기본적인 욕구의 만족이 재미를 경험하기 위한 필수 요건일 테지만, 재미는 그 자체로 충족감을 주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온전하게 기능하는 인간으로서 자아개념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은 성장하고 새로운 능력을 개발하고 새로운 도전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 재미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성장이 동반될 때 비로소 깊이 있는 만족감을 준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야 인간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능력을 개발하며, 도전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재미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몰입의 중요한 요소이자,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핵심적인 동력이다.


쾌락을 만족시키고 물질적인 위안을 얻을 기회가 전례 없이 많은 이 사회에서, 범죄, 정신병, 알코올 중독, 성병, 일반적인 불만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그 원인은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경험들이 희소해지고 있다는 것과 물리적 에너지의 효율적 변형에서 그 동력을 얻고 있는 체계에 있는 것 같다. 내적 보상의 결핍은 몸에 지니고 다니지만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천천하지만 확실하게 우리를 불구로 만든다.

 - 재미 대신 쾌락을 좇기 시작하면, 삶은 점차 중독과 공허의 늪으로 빠져든다. 성장이 멈추고 통제력을 잃어버린 순간, 우리는 내적 보상 대신 물질적인 위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내적 보상의 결핍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우리 삶에 서서히 스며든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내적 충족을 잃은 삶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삶의 본질적인 즐거움마저 앗아간다.



우리의 연구에서 재미는 자기 목적적인 경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요소들인 자유, 능력, 성장, 자기 초월을 강조한다.

 - 몰아일체(沒我一體), 물아일체(物我一體)가 아닌 '자아가 없어지고 하나가 되는' 몰아일체를 경험할 때가 있다. 노동과 놀이에 구분되지 않고, 내적 보상을 충족시켜주는 몰입은 몰아일체를 경험하게 해준다. 이 순간에는 외적인 보상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때로는 이 상태에서 생이 끝난다 해도 여한이 없다는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가 바로 행위에 대한 '재미'다. 그리고 이 재미는 자유, 능력, 성장, 자기 초월이 결합될 때 더욱 강력해진다.






개인적으로 루틴한 삶에 환기를 시켜준 책이었다. 무심코 유튜브 쇼츠를 넘겨보면서 시간을 낭비하던 나 자신이 싫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의학이라는 분야에서도 몰입이 중요한 이유는 외적 보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외과 전공의 시절 왜 돈안되는 외과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수술장에서의 몰입이 좋아라고 대답했다. 성장과 자유를 통해 내가 행동을 제어하며 경험하는 재미야말로 지속 가능한 몰입을 만들어낸다. 20년이 지난 책이지만, 시대를 초월해 인간사의 본질적 가치를 꿰뚫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했다. 몰입이란 결국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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