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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전공의 Aug 08. 2022

왜 대학병원 응급실 진료는 오래 걸릴까?

대학병원 응급실은 한번 들어가면 3-4시간은 기본이다. 보통 기다리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요즘 같은 코시국엔 응급실 입구를 넘는 것도 오래 걸린다.


대학병원 응급실은 그래도 넓고 침상 수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환자가 몰리다 보면 응급실 침상이 부족해 의자에서 대기해야 한다. 침대 한 번 못 누워보고 그대로 응급실 퇴실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보호자들이 쉴 공간은 더더욱 넉넉하지 않다.


단순히 응급실에 환자가 많아서 진료가 늦어지는 걸까? 물론 응급실에 방문하는 환자수가 많은 것도 진료가 늦어지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보다 진료가 늦어지는 다른 이유들도 많다.



1. 본인의 응급도가 떨어진다.


- 오래 기다리는 환자 입장에선 서운한 말이다. 지금 배 아프고, 머리 아픈 게 견딜 수 없을 정도인데, 중증도가 떨어진다니. 환자 입장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소생실이나 처치실에서 숨넘어갈 것 같은 환자들을 본 환자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수도 있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은 응급도, 중증도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는 KTAS라는 분류를 이용한다.


위의 표와 같이 5개의 분류로 구분을 하고 환자 이름 옆 색을 띄워놓는다. 색을 보고 이 환자의 응급도를 구분한다.


위 표에서 알 수 있듯 색이 파란색이나 빨간색일 경우에는 응급이다. 이런 환자들은 대기시간이 따로 없다. 빨리 온 노란색, 초록색 환자들보다 더 먼저 응급실에 들어오고, 검사실, 시술실, 수술실로 보내야 한다. 몇 분차이로 환자를 놓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라고 생각하는 환자들은 초록색, 하얀색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응급실 들어올 때 시행하는 혈압, 체온, 심박수, 산소포화도 등의 검사에서 안전하게 통과했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아 내 상태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는구나.'를 떠올리며 기다림의 시간이 한결 편해질지도 모른다.



2. 타 진료과 의뢰


응급실에 오게 되면 가장 먼저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을 만난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선 보통 응급의학과를 전공으로 하시는 레지던트(전공의)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다.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은 모든 타 전공의 기초적인 지식을 공부하신다. 응급하게 처치할 수 있는 시술들을 하시고, 필요한 검사와 약을 처방한다. 중증 질환이 아닌 경우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의 처치로 환자들은 퇴원한다. 하지만 검사 결과에 따라 추가적으로 다른 과들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맹장염, 담낭염 등의 질환은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이런 질환들은 외과에 의뢰가 된다. 피검사 결과, 영상 판독 결과 등을 첨부해 외과 전공의를 호출한다. 본원의 경우 응급실만 전담으로 맡는 전공의가 있어 그래도 응급실 외과 환자를 빨리 보러 가는 편이다. 하지만 타 대학병원의 경우 응급실 전담 외과 전공의가 없는 병원도 있다. 외과 전공의가 수술방에 들어가 있으면 타 진료과 의뢰가 점점 길어진다. 응급실에 상주하지 않는 타과 전공의들은 본인의 일 사이사이에 응급실을 방문한다.


위에 표처럼 새벽에 외과에 의뢰된 다음, 외과에서 필요한 검사들을 추가적으로 더한다. 외과적 처치가 끝난 후 그다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타 진료과에 더 의뢰를 하게 된다.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퇴원 후 다음 플랜을 위해서라도 타 진료과 답변은 받고 가야 한다.



3.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아마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길 것이다. 피검사의 경우 채혈을 하고 샘플을 검사실로 내린다. 내리는 과정에서 '대차'라는 기계를 이용해 내린다. 대차 안에 샘플을 넣고 검사실로 내린다. 환자가 많으면 내려야 할 샘플의 수도 많다. 대차를 여러 번 보내면 다시 대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접수가 된 후 빠르면 30분, 늦으면 1시간 이상 걸린다.


채혈부터 접수 후 결과가 뜰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합해보면 1-3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의사들이 응급실 환자 한 명만 보는 것이 아니니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바로 확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상 검사도 마찬가지다. 보통 응급실에 CT 기계는 하나씩 있거나 없는 곳도 있다. 응급실 환자들 모두를 CT 찍는 것은 아니지만 꽤나 많은 환자들이 CT 촬영을 한다. 응급실 환자들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밤이나 주말같이 정규 CT 검사실을 운영 안 하는 시간엔 병동 환자들도 응급 CT실에서 촬영한다. 병동 환자들도 검사를 기다린다.



4. 노티 시스템


환자 파악 후에 교수님께 알려드리는 과정을 노티라고 한다. 전공의들은 보통 혼자서 결정하지 않는다. 교수님이나 펠로우 선생님, 전문의 선생님 이상 급에서 컨펌을 받고 결정을 내린다. 노티 후의 교수님 결정에 따라 환자 플랜이 달라진다.


문제는 교수님과의 의사소통이다. 전공의의 바쁨만큼 교수님도 일정이 많으시다. 외래 중에, 수술 중에 전화를 드릴 순 없다. 정말 급한 환자면 외래 진료실을 찾아가거나, 수술장에 찾아가서 노티를 드린다. 하지만 그렇게 응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교수님 일정이 끝난 후 노티를 드리게 된다.


여기서 전공의의 노련함이 필요하다. 교수님 일정을 대충 알고 있다면, 수술장 들어가기 전, 외래 시작 전, 컨퍼런스가 끝난 후. 비는 타임을 노려서 노티를 해야 한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1-2시간이 더 지체될 수 있다.



이 외에도 응급실 상황에 따라 기타 여러 가지 이유들이 더 추가될 수 있다. 하지만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진들은 일터가 응급인 곳이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재촉하지 않더라도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누구 하나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 (적어도 우리 병원은 그렇다.) 급하게, 바쁘게 일해야 하는 직장을 매일같이 출근한다고 생각해보면 상상만으로도 예민해진다.


진료가 늦을 수 있음을 합리화하는 글은 아니다. 적어도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알고 있으면 환자들의 답답함이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길.




알아두면 좋은 병원 상식 시리즈는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communication quality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병원 사람들에겐 익숙하지만 병원 밖 사람들에게는 낯선 병원 상식을 연재합니다. 또 다른 궁금증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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