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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Jul 08. 2022

다들, 살면서 바선생님 한 번씩은 만나봤잖아요?

바퀴벌레 공포에 대해

거의 매일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주, 설거지를 위해 저녁식사로 나른해진 몸을 겨우 일으켰다. 쌓여있는 설거지 더미가 부담스러웠지만 다시 깨끗해질 식기의 모습을 기대하며 고무장갑을 들었다. 그런데 웬걸, 손가락만한 검은 형체가 싱크대 안에서 사사삭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바퀴벌레였다.

    

소리를 지르고 고무장갑을 내팽겨친 뒤, 부엌 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머리가 하얘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떻게 해야하지?’, ‘이유가 뭘까?’, ‘내가 뭘 잘못한걸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것도 아닌데.. 마음 속은 복잡해졌고 심란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얼른 잡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일이 날 수 있다고 했다. ‘큰 일’. 이미 클대로 큰 일은 나버린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더 끔찍스러운 큰일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약을 뿌려 잡고, 시체를 처리하는 것. 그 과정 하나하나가 공포스럽고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왜 나는 바퀴벌레를 그토록 무서워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선천적인 공포심일까, 후천적인 공포심일까?     


집에서 마주칠 수 있는 벌레는 사실 바퀴가 아니라도 많다. 개미, 돈벌레, 날파리, 모기, 거미 등등.. 그런데 유독 바퀴벌레는 그 크기가 매우 크다. 우리 집에서 발견한 친구는 내 검지 손가락만 했다. 그리고 머리에서 길게 뻗어나온 더듬이도.. 내 검지 손가락 길이만 했다.     


그럼에도, 사실 바퀴벌레의 생김새와 비슷한 친구들은 꽤 있다. 엎드려있는 모양이 비슷한 매미는 친근하기까지 하며, 랍스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 중 하나다. 바퀴에 대한 공포심이, 유전자에 축적된 선천적인 것일 정도로 바퀴가 인간에게 해로운 곤충일까? 더러운 주둥이를 우리 몸에 직접 꽂아버리고 피까지 빨아먹는 모기에게는 그렇게 혐오감을 갖지 않는다. 사람을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치사량의 독성을 가진 뱀을 보고도, 우리는 바퀴만큼의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다만, 바퀴벌레에게는 따라오는 여러 도시괴담이 있다. ‘바퀴벌레를 컵으로 가둬놓고 해외출장을 다녀와서보니, 안에 수백마리의 새끼 바퀴들이 어미의 시체를 먹으며 연명하고 있었다’, ‘집에 바퀴벌레가 한 마리가 보였다면 이미 그 집은 바퀴의 서식지이다’ 등등. 심지어는 바퀴벌레를 바퀴벌레라 호형호제(?)하지 못한 채 ‘바선생’이라 부르고, 시체를 처리하지 못해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에 처치해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렇다. 바퀴벌레에 대한 혐오감, 공포감은 후천적인 요인이 더 크다! 물론, 바퀴벌레는 유해곤충이며 식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 동족의 시체를 먹으며 연명하는 것도 혐오스럽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의 곤충이 가진 특성이며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바퀴벌레를 무서워하고 있다.      


여기까지에 생각이 다다르니, 심리학이나 의학적으로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이상한 혐오감으로 우리가 '공포증'이라 이름붙인 다른 대상이 떠올랐다.


그런와중, 얼마전 과학책에서 읽은 세포모양이 생각났다. 그물모양을 하고 있어, 그물세포라고도 불린다.

아래는 그물세포 이미지이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모두 거짓말이다. 위 이미지는 그물세포랑 아무 관련없는 이미지이다. (그물세포가 진짜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얘기해보자.


추가로 보여줄 이 사진은 환 공포증을 유발하는 사진이다. 환 공포증(環恐怖症, trypophobia)이란, 반복되는 특정문양에서 혐오감을 나타내는 증상이며, 전 세계 16%의 인구가 가지고 있으며 군집공포증, 밀집공포증이라고도 한다. 아래와 같이 조밀조밀한 수많은 원모양에 대해 공포감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는 환공포증의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혐오주의!!)




어떤가. 새로운 공포의 대상을 제시하면서 혐오를 주의하면 쉽게 그 대상에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이제는 물방울 사진만 봐도 괜히 몸에 소름이 돋는 것같지 않는가? 왠지 나도 몰랐던 내 안의 공포를 발견한 기분이다.


그렇다. 바퀴벌레도 마찬가지다! 한 마리 바퀴벌레와 마주쳤다고, 집에서도 긴장하며 바닥과 천장을 살피지 말자. 두려운 마음은 바퀴벌레가 만든 것이 아니다. 내가 그 마음을 만든 것이다. 그저 곤충이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두려워 하는 마음에 대한, 단순한 공감일 수 있다.


무수한 도시괴담과 그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에 우리는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 있다. 비단 바퀴벌레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공포심을 갖는 대상을 주의깊게 관찰해보자. 공포심의 원인을 고민해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편해질 때도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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