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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레벌레 Jul 27. 2023

[작문] 말조심

주제: 말

20xx년, 화석연료의 고갈과 온실가스 문제로 내연기관 자동차는 시장에서 진즉 퇴출되었고, 친환경 전기차 역시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생산 중단되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에 대한 늘어나는 걱정 속에 범지구적으로 새로운 친환경 교통수단이 급부상하였다. ‘말’이었다. 집집마다 말을 한 마리 씩은 꼭 들이게 되면서 다양한 관련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동물권, 특히 ‘마권’에 대한 관심도 역시 점점 높아졌다. 보조금과 백신, 의료보험 등의 다양한 복지 정책이 생겨났고 유기마 보호 등 시민 단체도 늘어갔다. 시골의 말 농장 집안 출신으로 떠서 평소 말 사랑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기 연예인 A씨도 시민 단체의 일원이자 홍보대사로서 열심히 활동 중이었다.


A씨는 현재 최고 주가를 달리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MC로 활약 중이었다. 밉지 않은 깐족과 멤버들과의 케미가 그의 매력 포인트였다. 여느 때와 같이 촬영장을 찾은 그는 대본을 읽으며 오늘은 어떤 멤버와 어떤 티키타카를 보여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근 멤버 단톡방에서 B씨가 A가 없는 회식 자리에서 A씨를 질투했다는 얘기가 나왔던 게 떠올랐다. 다른 멤버들의 몰아가기 식 장난이었지만 방송에서 B씨를 놀리는데 써먹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재였다.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오프닝 촬영이 들어가고 A씨는 준비한 멘트를 꺼냈다.


“아이 반갑습니다. 아니 그나저나 B씨, 저번에 촬영 뒤풀이에서 나 없을 때 내 뒷담화를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맞아 맞아” 


다른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치며 B씨를 몰아갔다. 


“아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형..?” 


당황한 목소리로 B씨가 대답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그러니까 늘 말 조심해야 돼~”


A씨가 대답했다. 출연진 일동이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C씨가 한 마디 거들었다.


“B오빠가 그때 나한테 A오빠 완전 꼰대 아니냐고~ 있어 보이는 얘기만 늘어놓는다고 그랬다니까?”


“야이씨, 너!”


B가 살짝 발끈하며 C에게 소리쳤다. A씨가 말리며 이야기했다.


“동생한테 야이씨가 뭐냐 야이씨가. B씨,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 거에요~”


촬영이 잘 마무리되고 시간이 흘러 해당 회차의 방송이 나갈 시점이 되었다. A와 B씨의 티키타카 장면은 땡튜브 클립으로도 제작되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A씨는 집에서 본방송을 모니터링한 후 해당 땡튜브 클립의 댓글들을 살피고 있었다.


“역시 B는 A한테 까여야 제맛임… 이번 편 레전드네… 반응 나쁘지 않구만~”


그때 한 댓글이 A씨의 눈에 들어왔다.


‘A 근데 방송에서 저런 멘트 쳐도 되는 거임? 안 그래도 요새 마권 문제 민감한…더보기’


A씨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더보기를 눌렀다.


‘A 근데 방송에서 저런 멘트 쳐도 되는 거임? 안 그래도 요새 마권 문제 민감한데 ‘발 없는 말’이라느니,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이라느니. 저거 사람으로 바꿔보면 ‘발 없는 사람이 천리 간다’, ‘사람 한 마디에 천냥 빚’인 건데… 이거 솔직히 나만 불편함?’


아뿔싸, A씨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당 댓글에는 이미 수많은 좋아요와 답글이 달려 있었다. A씨는 답글을 하나씩 읽어보기 시작했다.


‘진짜 사람으로 바꿔서 보니까 소름이긴 하다.’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색하고 봄. 유기마 보호 홍보대사라더니 실망스럽네요’


‘유기마 보호 운운하더니, 비하 발언 잘 들었습니다~’


A씨는 바로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다. 매니저는 문제 파악 후 땡튜브 클립과 관련 게시글 삭제 요청을 여기 저기 보내는 등 회사 차원에서 확산을 최대한 막아보려 하는 중이라고 했다. 동시에 이미 관련 내용이 각종 인터넷 매체에서 보도되기 시작한 이후기에, 빠른 시일 내로 기자회견이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그때 문득 A씨의 뇌리에 아이디어가 스쳤다. 


“땡튜브 사과영상은 어때? 지금 찍어서 바로 올릴게”


A씨가 말했다. 매니저는 A씨의 아이디어에 감탄했고, 촬영을 돕기 위해 바로 출발하겠다는 말을 이었다. A씨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사과문을 작성한 뒤 검은 양복을 차려 입었다. 매니저는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세팅했고, A씨가 그 앞에 서 꾸벅 인사하며 운을 뗐다.


“죄송합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A씨는 땡튜브를 확인했다. 전날 새벽 올린 사과영상이 인기 급상승 영상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본인의 빠른 판단에 짐짓 감탄하며 A씨는 바로 해당 영상의 댓글창을 열었다. 


‘그래도 사과영상 보니까 꽤나 진심인 듯?’


‘앞으로는 언행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누구나 할 법한 말실수였다고 생각함. A님 응원해요’


훨씬 유해진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전날부터 마음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긴장이 풀리자 허기가 졌다. A씨는 ‘보양을 좀 해야겠어’라고 중얼거리며 냉장고를 뒤져 며칠 전 시골에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음식을 꺼냈다. 어린 시절부터 기운이 없을 때마다 종종 해 주시던 말고기 스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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