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선수 '논란'에 관하여
양궁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를 두고 일부 커뮤니티에서 한심하리만큼 멍청한 이유로 사이버 폭력을 감행하고 있다. 짧은 머리에, 자신들이 페미니즘 용어라고 주장하는 말을 썼다는 것이 그 이유다. 2001년생 선수가 오늘을 기준으로 금메달을 두개나 땄음에도 누군가에게는 짧은 머리가 더 중요한가보다. '허버허버', 'GS논란' 같은 창조논란에 편승해서 조회수를 챙기던 언론들의 자세도 이번에는 다르다. 여전히 '논란'이라는 단어를 기사에 사용하며 문제를 호도하고는 있지만, 그나마 비판의 방향을 일부 커뮤니티에 두고 있다. 페미니즘을 위한 것인지 민족주의를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국의 금메달리스트를 숏컷 스타일의 머리로 내려치기엔 아무래도 꺼림직했나보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약 여성 연예인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면 사과문을 쓰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외신들은 초장부터 논란, 젠더 갈등이라는 애매모호한 말 대신 'abuse', 즉 폭력이라는 단어로 이 상황을 설명했다. 논란이란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두고 다툰다는 뜻이다. 일방적인 폭력 및 테러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 안산선수가 당한 이 가해는 명백한 폭력이며, 이는 토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이 문제를 논란이라고 칭하는 순간, 여성의 머리 스타일은 토론 가능한 것으로 치환된다. 앞선 '허버허버', '얼레벌레',' 손가락 표시' 등의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 및 동작에는 그 어떠한 사회적 맥락도 없으며,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인터넷에서 자주 통용되어 왔던 '밈'이다. 누군가를 비하하려는 의도로 사용된 것이 아니며, 일부 커뮤니티에서 논란을 제기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그 의도에서 불쾌감을 느낀 적이 없다. 손가락 동작도 마찬가지다. 과자를 집어먹을 때 무의식적으로 쉽게 하는 동작조차 검열하게 한다. 여성들이 언어를 사용하기 전 그것을 검열하게 하고, 종국에는 남성이 허락한 언어만 발화하게 한다. 별일 아닌 '논란' 같지만 그 논란이 모여 결국은 이 권력구조를 강화한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말들이 방송 자막에까지 사용되는 걸 볼때 많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창조 논란은 사람들이 본질적인 것에 시선을 머무르게 하기 보다 그 행동이 페미니즘인가 아닌가에 대한 쓸데없는 설전을 하게 한다. 사회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과, 없는 논란을 만들어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를 피곤한 것으로 치부하게끔 하는 것은 다르다. 또 설령 페미니즘적인 것이면 어떤가. 마치 페미니즘이 일베에 대척하는 사회악인 것 마냥 조명하는 것을 볼 때 우습다는 생각을 감출수가 없다. 그럼, 성평등을 지향하는 국제적인 기구들의 행보 또한 사회악이라는 말인가. 이 일이 일부 커뮤니티를 하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각, 나아가 안티 페미니스트 집단의 문제라 주장하고 싶다면, 현 언론이 하는 것처럼 태도를 바꿔 이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하면 된다. 이게 정말 특수한 일부의 잘못된 인식이기에 같은 남성으로서 이 일에 부끄러움을 가진다면, 자정하려는 시도를 해야한다. 그들은 그런 커뮤니티의 회원이기 전에 남성이며, 남성의 권력으로 여성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 없이 이런 폭력적 행동에는 말 한마디 더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일반화 하는 것은 강경하게 방어하려는 행동은 결국 여성을 향한 폭력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며 피해 재생산에 가담하는 일이다.
이번 사태가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2030여성들이 느끼는 능력주의에 대한 회의감과 실질적 위협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안산 선수는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했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그리고 안산 자신의 이름으로 금메달을 두개나 따낸 사람이다. 양궁이라는 분야에서 이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명이나 더 있을까. 그런 사람이 '짧은 머리'를 했다는 이유로, '여대'에 다닌다는 이유로 개인 sns 및 속한 협회에서 에서 심각한 수준의 욕을 먹었고 자신을 설명할 것을 강요받았다. 심지어는 '세월호 뱃지'를 달았다는 이유로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일부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세상의 아픈 목소리가 더 잘 들리는 사람을 그냥 페미니스트라고 통칭하기로 했나보다. 그래서는 안되고,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얕은 지식 수준이 현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방구석 찌질이들이 문제라고 말하는걸 문제로 삼아준 일이 이렇게까지나 커졌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젠더 권력의 작용으로 설명해야 할 일을 개인의 능력 부족 탓이라 여겼던 사람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세계 1인자가 되더라도 내 능력이 아닌 것들이 먼저 평가 대상에 오른다는 것을 수 많은 한국 여자들이 목격했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이번 일은 영 설명하기 어려운지 대답대신 침묵을 택한 듯 하다. 평생 금메달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할 사람들의 악의적인 글이 선수에게 실질적인 압박과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지금 여성들이 보고 있다. 여성 개인이 압박을 받을 때 너무도 쉽게 사과를 강요받는다는 걸 아는 여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냈다. 다행히 이번에는 대한체육회와 양궁협회 측에서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행이고, 행운이다. 과연 이 행운이 세상 모든 여자에게 깃들 수 있을까, 우리는 사과를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2030 여성들에게 성차별은 현재의 문제이며 앞으로의 문제이다. 안산선수와 여자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