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하데스타운> 후기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초연임에도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순항 중이다. 유명한 오르페우스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극본에 탄탄한 연기력, 잘 만들어진 넘버와 웅장하지는 않지만 똑똑한 연출로 많은 뮤지컬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사실 처음 보고 나왔을 땐 '그럼 사랑이란 뭘까' 하는 생각에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분명 사랑인데, 사랑 아닌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데, 사랑이라는 것이 이렇게 덧없는 것이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고난에 뛰어들게 하고 역경을 견디게 하지만 결국 일말의 의심을 지우지 못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마는 것이 사랑일까. 사랑은 고작 그런 걸까 하는 생각들. 사랑만큼이나 의심도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이 좀 더 깔끔해지고 이 작품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 봄을 부를 노래의 이야기가 선명해졌다. 무릇 인간이란 자기의 악한 본성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인간이 가진 고유의 것이라 믿는다. 인간의 밑바닥만을 자극적으로 드러내기에 급급한 미디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만 그럼에도 나아가는 인간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결말이 어떤지 알면서도 노래를 다시 시작하는 마음, 이번에는 다를지 모른다고 믿으면서 봄을 부르는 노래를 계속하는 것. 가난할 지라도 베푸는 재능이 있고, 모질고 각박한 세상에서도 밝아질 세상을 말하는 것. 사실 인간은 설령 악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인데. 인간만이 가진 낙관을 부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오르페우스라는 인물을 통해 전해진다.
인간의 본성을 성악설로 설명하는 건 인간의 악함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그 악함을 누르는 정치와 교육이 필요하고 우리는 그 질서 아래 살아간다는 것에 방점이 있는데, 인간은 악하다는 전제 아래 더 악한 행위가 만연하게 되는 것 같아 속상하다. 많이 말해지면 자꾸 그게 기준이 되니까. 설령 그런 악한 마음을 먹는 사람은 소수라 하더라도 그게 마치 이 세상을 지배하는 논리인 것만 같아 보이니까. 굳이 잘 덮여있는 내면의 추악함을 끄집어내서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이유가 뭐야 하는 불만이 가득하던 차에 만나서 더 반가웠을지 모른다. 그래, 이런 세상에서 공연 예술이라면 응당 이런 이야기를 빼놓지 않아야지 싶었던 작품. 나는 그래도 아직은 세상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은 이야기가 좋다.
인간의 추악한 면과 절망적인 일은 이미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으니.. 그럼에도 내일의 절망을 말하지 않으려면, 일말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이런 이야기가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낙관과 정신승리에 가까운 희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한계와 실수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열린 결말 속에서 내일을 노래하는 탁월함!! 그런 현명한 선택이 좋았다. 오늘의 사랑이 닿지 못한다 해서 모든 걸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그것이 악한 선택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우리를 갉아먹는 것은 서로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나, 나의 선택,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의심 일지 모른다. 사랑하지만 결국 실수를 하고 마는 오르페우스처럼..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인간 세상의 메커니즘을 본떠 사람을 한 줄로 세우고 끊임없이 자신의 방향과 속도를 의심하게 하는 세상을 향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어서 재미있었다. 연인의 사랑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어서 좋았다. 사랑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표면에 드러난 달콤함과 그 안에 숨어있는 짙고 진함의 여운이 길다.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인간 세계의 통치구조를 노래하는 하데스타운 ㅠㅠ.. 그 벅참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연대와 유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을 때에도 뒤에는 늘 누군가가 있다. 그 장면에 핀 조명을 비추는 작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