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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져니박 Jyeoni Park Aug 18. 2023

스릴만점 수원여행

경기도 수원시


내가 수원을 가게 된 이유는 단지 김포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서울까지는 좀 멀고, 서로 사는 곳 중간 지점쯤 안 가본 곳이 수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올라온 친구 J와 나는 수원역에 내렸다. 수원역은 중앙 광장이 원형으로 둘러진 형태라 그런지 용산역이 떠오르기도 했다. 우린 수원역 바로 옆에 붙은 AK몰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김포 친구가 도착할 때까지 아이쇼핑이나 할 참이었다. N층에 올라가니 꽤나 맘에 드는 옷들이 눈에 띄었다. 마음 같아선 제대로 입어보고 구매하고 싶었지만 괜히 짐만 늘어날 것 같아 관두기를 여러 번, 한참 백화점을 배회하는 데 김포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지하철을 잘 못 탔어. 지금 부평이야."

친구는 수원역으로 갈 것을 잘 못 타는 바람에 인천으로 가고 있었다. 이미 허기진 우리 둘에겐 눈 돌아가는 소리였으나 당사자는 더 힘든 노릇이었을 것이다. 누굴 탓할 수 있겠는가 싶어 나는 조심해서 오라는 말만 연신 내벹었다.



김포친구는 1시나 되어 올 것이었고, 이미 배가 고플 대로 고픈 둘은 먼저 지하 푸드홀로 내려가 요깃거리를 찾기로 했다. 푸드홀 입구에서 부터 달달한 빵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점심시간이라 테이블은 거의 만석이었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곳 음식을 다 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고 주먹밥 한 개와 만두 하나씩만 입에 우적였다. 그중 새우 한 마리가 들어간 삼각 만두는 배가 고 파서였을지 몰라도 이제껏 먹어본 만두 중 손에 꼽을 만한 맛이었다. 

더 먹지 못한 아쉬움에 입맛만 다시며 푸드홀을 나왔다. 그리고 삼 심분 가량을 더 백화점을 쏘다니니 김포친구가 도착했다. 작년 시월에 그 친구가 운영하는 분식집에 찾아간 게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에 본 친구는 가게일이 힘들어서인지 얼굴이 더 핼쑥해져 있었다. 

그렇게 뭉친 셋은 다시 푸드홀로 내려가 태국음식으로 나머지 점심을 때웠다. 그리곤 백화점 내에 있는 카페창가자리에 앉아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어 볼 참이었다. 어떻게 지냈냐, 일은 어떠냐 같은 말로 시작해 남자친구 이야기까지 신나게 떠들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니 침묵이 흘렀다. 그렇다고 불편한 침묵은 아니었다. 다들 일상에 지쳐 있다 만나서인지 피곤함이 섞인 나른함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음료만 홀짝거렸다.



"수원까지 왔는데 화성은 가봐야지."

수원역에 도착한 지 언 4시간 만에 우린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백화점을 나왔다. 친절한 택시 기사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역사적 지식이 많지 않은 나에겐 행궁은 그저 자주 봐왔던 전통건축물로 보였다. 방마다 만들어 놓은 사람 모형들을 구경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더위에 피신하듯 옆 시립미술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선 가족에 관련된 전시와 미술관 소장품 전시를 열고 있었다. 당시엔 말하지 않았으나 입장료 사 천 원을 내고 둘러본 솔직한 후기로썬 돈이 조금 아까웠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서일까. 의미도 물론 그렇지만 보이는 작품을 중요시하는 나로선 그간 다녔던 무료 전시회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미술관을 나왔을 땐 저녁이 다되었을 때라 더위가 한 풀 꺾여 있었다. 저 멀리 가지가 네모 각진 모습으로 가꿔진 가로수가 독특하게 보였다. 우리는 길을 따라 산책하듯 걷기 시작했다. 열기구를 타러 가기 위해서였다. 알아보니 수원에 왔으면 화성을 둘러보는 일 다음으로 해야 할 건 열기구를 타는 일이란다. 김포 친구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으나 J와 나는 수원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는 의지에 불탔다.

중간에 부대찌개 집에 들러 저녁을 먹고 도착했을 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벽에 걸터앉아 분홍빛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침 그 옆으로 거대한 풍선이 성벽 너머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나는 생각보다 거대한 열기구에 신이 나서 인지 잔디밭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어두 컴컴해질 무렵 탑승권을 구매하니 우리 앞으로 삼심명은 족히 있었다. 처음엔 금방 금방 빠지겠거니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던 김포친구는 먼저 헤어져야 했고 J와 둘 이남아 번호판만 눈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천막 안 더위에 J의 코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나 또한 기름으로 얼굴이 번질번질했다. 설상가상으로 상공엔 바람이 많이 불어 한 번에 탈 수 있는 인원이 더 줄었고 우리가 타야 할 막차시간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180번까지 나오세요."

딱 우리 앞에 차례까지 번호가 불린 상황에서 우리 차례가 될 때면 기차를 놓칠 것이었다. 우린 고민에 빠져있었다. 근데 한 팀이 계속 불러도 나오질 않는 것이다. 속으로 간절히 대신 우리 차례가 오기를 기도했다.

"181번 나오세요" 

우리 번호가 불렸다! 나와 J는 신나서 앞으로 나갔다. 가까이서 보니 열기구는 더더욱 거대했다. 가운데 쇠줄하나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아찔했다. 정말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앞서 올라간 열기구는 한쪽으로 치우쳐져 상공에 떠있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사방이 그물로 둘러져 마치 철장 같은 내부에 빙 둘러 섰다. 도르래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줄이 점차 풀어졌고 땅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50미터, 60미터... 70까지는 바람 때문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그 근처에 이르러 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했다. 건물들이 들쭉날쭉 불빛을 드러냈고 그 사이로 황금빛 화성이 굵은 실처럼 둘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상공의 찬 바람이 그대로 머리카락을 스쳐갔다. 열기구도 바람에 흔들거려 발짓 손짓 하나에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일반 전망대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묘미를 느꼈다. 



관람이 끝나고 열기구는 무사히 땅으로 안착했다. 흥분감과 안도감도 잠시, 시간을 보니 수원역까지 시간이 촉박하다! 우린 무조건 큰길로 나가 손을 흔들어 보았으나 죄다 손님이 탄 택시뿐이었다. 

카카오 택시를 불렀을 땐 15분 남짓 남았을 때였다. 기사님의 내비게이션에는 도착예정시간이 10시였다. 기차 시간이 10시인데! 우리가 뒤에서 불안한 대화를 주고받자 기사님도 덩달아 다급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하셨다. 수원역에 도착하니 9시 56분! 우린 기사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똥꼬가 빠지도록 달렸다. J는 먼저 가서 입석표를 끊었고 나는 탑승구를 찾는데 완전 패닉상태라 시야가 어지러웠다. 어찌어찌 찾아 내려가니 마침 기차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내렸다. 기차에 올라탄 우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마주쳤다. 열기구에서 한 팀이 빠지지 않았더라면, 택시를 좀 더 늦게 탔더라면, 기사님이 신경 써 주시지 않았더라면. 톱니바퀴처럼 모든 게 맞물려 갔던 순간들이 철길을 따라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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