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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로 Sep 29. 2022

완벽주의자의 인간관계, 좋을 수가 없는 이유

왜 나의 완벽을 방해하지?


"실수하면 안돼."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때가 아니야."



심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기력한 모습을 완벽주의라고 애써 포장한다. 더 좋은 타이밍이 있을 거라고, 더 철저히 준비하고 움직일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고선 또 다시 어제를 살 길 반복한다.



이러한 모습이 본인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완벽주의 성향이 자의식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자의식이란 내가 나를 신경쓰는 정도를 말한다. 건강한 자의식은 메타인지로서 반성적인 성격을 지녀 자아 성찰에 도움을 주지만, 자의식이 과잉되면 내가 나의 감시자가 되어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신경쓰게 된다. 그 결과 자기 객관화가 이뤄지지 않은 채 사회적 불안감에 휩싸여 비정상적인 행동 패턴을 보인다.



완벽주의자들은 '완벽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에 취해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완벽주의란 자신의 열정과 노력이 하사받는 칭호와도 같은 셈이다. 이를 사수하기 위해 혼자 있으면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남들 앞에선 완벽을 위해서라면 융통성도 필요없다는 듯이 과하게 집착하고 가짜 몰입을 한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중간에 저장을 하지 않고 한 번에 게임을 클리어 하려다가 백날을 고생하는 플레이어를 보는 것 같다. 본인의 수준에 맞는 위치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며 게임을 깨면 될 것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깨고 싶은 마음에 시간과 에너지를 비합리적으로 많이 써버리는 모습이 닮아있다.



이러한 모습은 단연 인간관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완벽주의자들은 주변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성향을 멋대로 규정 짓고 그에 맞춰 자신의 역할 또한 고정시키고 그대로 완벽하게 행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본인이 규정지은대로 상대방이 행동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향해 "왜 나의 완벽을 방해하지?"라고 생각한다.



규정-의문-또 다시 규정. 이 악순환을 반복하다보면 상대방과 사소한 충돌이 생기기 시작한다. 또한 규정을 노력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나는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데 상대방이 나만큼 노력하지 않아서 이런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우리는 항상 무엇으로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언제나 미완의 존재인 것이고, 덕분에 완성을 향해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완성이라는 하나의 형태 또한 정해진 게 없다. 따라서 그를 향한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들은 맘대로 자유롭게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애초에 완벽하지 않은데 우리들이 맺는 관계들이 어찌 완벽할 수 있겠는가. 완벽한 인간관계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계를 발전시키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산을 볼 때 정상부터 바라본다. 그리곤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려 산의 높이와 난이도를 가늠한다. 이때 본인이 완벽하게 정상을 정복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아예 시도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올 자신의 모습을 (존재하지도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놀려댈 것 같아서.



정상을 찍었을 때 기쁨은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진정 최상의 기쁨은 정상을 향해 험준한 산을 기어오르는 순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일찍이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 평생을 함께 하는 기쁨과 더불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연대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기쁨을 배우고 느끼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부터는 완벽주의자가 아닌, 서툴더라도 조금씩 나의 삶을 완성해나가는 걸 추구하는 완성주의자가 돼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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