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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eper into movies Feb 10. 2022

렛츠 해브 어 힐링 세션

덴마크 굴라야고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


 그날만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몸만 한 백팩과 25킬로짜리 캐리어를 끌고, 덴마크 굴라야고 국제 도자센터(이하 굴라야고)에 도착하던 날. 그 바다마을에 내려 하나같이 예쁜 집들을 지나 100미터도 안 되는 가로수길을 통과하니, 붉은 지붕에 하얀 회칠을 한 저택이 나왔다. 멀리서 키 큰 여성이 다가왔다. 자신을 테크니션 A라 소개한 그녀는 무거운 내 짐을 번쩍 들고 방으로 안내했다. ‘3월 1일인 오늘은 원래 오피스가 닫는 날이라 오리엔테이션은 내일 해주겠다’고 했을 때, 아차 싶었다. 그때서야 내가 졸업한 지 1년이나 지났는데도, 학사일정에 따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짐을 내려놓고 숙소 부엌에서 서성이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 나를 밖으로 데려갔다. 말이 없는 그를 따라 어느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니 장작가마가 있는 킬른 야드가 나왔다. 몇몇 사람들이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고, 그 앞에는 온갖 종류의 치즈와 빵, 잼이 차려졌다. 긴 여행으로 배가 고플 나를 생각하여 그리로 데려간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덴마크의 원로 작가인 B로 선천적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농인이었다. 환영의 맛을 기쁘게 받아먹으며, 레지던시 생활의 첫날을 시작했다.

굴라야고 국제 도자 센터의 숙소
숙소(좌)와 스튜디오(우)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레지던시 생활을 경험하게 된 굴라야고는 도자공예 전문 레지던시로 도예가들에게 숙소와 작업실을 유상으로 제공하는 곳이다. 한 번에 7-10명 정도의 작가들이 함께 지냈고, 보통은 2-3개월 정도 머물렀다. 건물이 아름다운 공원 안에 위치한 덕분에, ‘외국인들이 대체 여기서 뭐하나’ 하는 눈빛으로 지나가는 이웃들이 많았다.

 굴라야고의 생활은 단순했다. 아침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머지 시간엔 작업을 했다. 심심할 때는 근처 중고 마켓에 가서 물건을 샅샅이 구경하기도 하고, 자전거로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일과는 자유롭게 보내지만, 저녁은 모여서 먹는 것이 굴라야고의 전통이었다. 작가들이 돌아가며 차리는데, 오늘 저녁은 무엇일까 기대하는 재미가 있었다. 저녁상 차리는 데에 압박감을 받은 작가들이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차려진 저녁시간은 매우 특별했는데,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할 때 생기는 이상한 활기가 있었다. 특히 누군가 새로 왔을 때는 다들 약간 들뜬 상태로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느꼈다.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들이 내뿜는 아우라란. 폴폴 흩날리는 매력들이 손에 잡힐 듯했다. 그것은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함도, 자기를 과시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던 나는 마치 토플 시험장에 앉아있는 마냥, 그 시간을 흘러 보내야 했고, 머쓱한 나머지 괜히 더 먹곤 했다. 그 순간 내가 가장 동질감을 느꼈던 사람, A는 ‘다들 말이 너무 많아.’라고 덴마크 수어로 말하곤 했다.

  날이 지나도록 좀처럼 대화에 끼지 못하자, 나는 전에 없던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나 빼고는 모두 북미나 유럽 출신의 백인들이었는데, 그들이 아시안 여자인 나를 은근히 따돌린다고도 생각했고, 영어가 유창하든 아니든 라틴어 계열의 언어를 쓰는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가 차린 어느 날의 저녁식사


 이 피해의식이 나를 잠식하기 전에 다행히도 다른 곳에서 활기를 찾았다. 친구가 생긴 것이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테크니션 C는 키가 매우 크고 조용한 사람으로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물론 나는 그녀보다 30cm나 작고 말도 훨씬 많았지만. C는 나처럼 꺼지지 않는 불씨가 늘 가슴속에 있어서, 약한 바람에도 화르르 화르르 타오르는 사람이었다. 둘 다 제법 소심한 편인데도, 유독 같이 있을 때 과감해져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들을 함께 하곤 했다.

 우리가 가장 자주 한 일은 춤추기였다. 널린 옷들 사이에서든, 장작가마 옆에서든, 아니면 좁은 컨테이너 안에서든, 말 그대로 아무 데서나 춤을 췄다. 음악도 상관없었다. 일렉트로닉 음악이든, 한국 가요든, 에스토니아의 음악이든, 그저 느낌 그대로 움직였다. 우리는 그 시간을 ‘힐링 세션'이라 불렀다. 그 시간의 당위와 필요를 부여하는 작명이었다. 나에 대해서 아무런 판단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하니, 물에 풀린 물감처럼 자유로웠다. 둘이서만 춤을 추다가 어느 날은 파티를 개최하기도 했다. 진 토닉을 준비해놓고, 사람들을 초대했다. 물론 두 사람밖에 오지 않았지만... 혼자였다면 내 평생 댄스파티를 주최할 일이 있었을까.

 그다음으로 자주 한 일은 해수욕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해변이 있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같이 갔다. 각자 바닷물에 몸을 담그며 정화의 시간을 보낸 후, 모래사장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시간쯤 몸을 지지고 나서는 해변에 있는 카페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사 먹었다. 절대 건너 띄면 안 될 종료 의식으로 대중목욕탕에서 마시는 바나나 우유와도 같은 의미였다. 소금기와 모래를 잔뜩 묻힌 채 자전거를 타고 돌아올 때는 묘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해수욕 후에 카페에서 사먹던 아이스크림

 희한하게도 우리의 이 액티비티들이 정말로 '치유 효과'가 있었는지, 떨어지지 않던 입이 열리며 대화 참여가 가능해졌다. 못 알아듣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다시 말해달라 요구하고, 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어, 자연스레 다른 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다. 나아가 마을 사람들도 사귀게 되었고, 그들의 집에 왕래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영어 실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열린 마음',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움직이는 몸'. 모두 우리의 '힐링 세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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