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굴라야고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 2
화요일 아침, 오늘이 ‘마르디 그라스(기름진 화요일)'라며 다들 기분좋게 빵과 커피를 나눠 먹는데, 나는 한참 후에야 그날이 교회의 사순절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이란 걸 알게 됐다. 원래의 종교적 의미는 퇴색하고 맛있는 것을 양껏 먹는 날이 되어버린 까닭으로, 우리의 테이블에도 기름진 빵이 잔뜩 차려졌다. 누군가와 맛있는 것을 나눠먹을 때, 콧구멍이 살짝 커지고, 동공이 풀리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특히 그사람과 아직 어색한 사이라면, 마음의 빗장이 훨씬 쉽게 열린다. 낯선 풍습도 새로운 사람들도 그렇게 달큰한 빵내음과 함께 다가왔다.
그 후에도 레지던시 사람들은 종종 따끈따끈한 페이스트리를 나누어 먹고는 했다. 한 번은 덴마크인 디렉터인 D가 자신의 생일이라며 직접 생일 케이크를 들고 왔는데, 그 케이크의 모양이 귀엽다고 해야 할지 기괴하다고 해야 할지 묘했다. 흔히들 먹는 스펀지 케이크가 아니라 페이스트리 도우로 만든 사람 모양의 빵인데, 겉면은 마지팬(Marzipan, 설탕과 아몬드 가루를 버무린 반죽)과 온갖 지렁이 젤리, 그리고 수많은 덴마크 국기(덴마크 국기는 축하를 상징한다고 한다)로 장식되었다. 축하 방식은 더 놀라웠다.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자마자 B는 비장한 모습으로 케이크 사람의 목을 잘랐다. 원래는 아이들 생일에 하는 전통이고, 아이들이 직접 목을 자르게 한다고... 덴마크인이 아닌 사람들은 기겁을 하면서도 너무 즐거워했고, 누군가 생일이면 다들 그 케이크를 주문해왔다.
이렇게 맛있고 때로는 재미있는 페이스트리를 많이 사먹었지만, 종종 레지던시 사람들은 빵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치고 요리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고, 심심하지 않은 사람도 없었는데, 베이킹은 그런 조건에 딱이었다. 작업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돌던 사람들은 결국 반죽을 치대고 오븐을 돌렸다. 누군가 부엌에서 밀가루를 풀풀 날리고 있으면 괜히 그 주위를 얼쩡거리게 됐고, 고맙게도 아무도 그걸 혼자서 먹지는 않았다. 그렇게 모두의 몸과 마음이 사이좋게 찌워갔다.
내가 가깝게 지내던 덴마크 원로작가 A도 자주 빵을 구웠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그는 덴마크 음식부터 자신만의 요리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었는데, 단순한 재료로 특별한 맛을 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가 만든 빵도 맛있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흑맥주로 만드는 기네스 브레드였다. 어느 날 저녁 식사가 끝나가던 자리에서 그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까만 빵 한 덩어리를 가지고 왔다. 북유럽인들이 많이 먹는 호밀빵과 비슷해 보여서 딱딱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달랐다. 흑맥주의 거품처럼 부드럽고, 촉촉하며, 깊은 풍미를 가진 맛이었다. 거기에다 버터를 발라먹으면 그야말로 게임 끝이었다. 아, 사람들의 표정이란. 모든 사람이 입술에 묻은 버터를 싹싹 핥으며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원 모어 피스, 플리즈'를 외쳤다. 우리가 매번 외치는 주문같은 말이었다. 탄수화물이 내어주는 낙관과 포만감을 소환하는 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