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절제하는 이유
우리는 우리 의지로 음식을 먹는가?
-의지보다 강력한 무언가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 다른 동물의 삶에 비해 고등하다는 것은 착각이 아닐까?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바글거리는 타인을 바라보며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개미나 벌을 떠올려본다.
페로몬에 의해 움직이는 개미나 벌, 자극과 그로 인한 감정으로 인해 움직이는 인간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가끔 양복 입은 개미에 둘러싸인 상상을 한다.
아마 나 역시도 가방을 메고 안경을 쓴 개미일 것이다.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하며 한 편으로는 나만은 개미이기 싫다는 거부감 역시 자연스레 든다.
잠시 멈춰 서서 내 앞에 놓인 자극과 나의 감정을 점검하는 습관은 페로몬에 무저항으로 따르는 개미가 되긴 싫다는 이상한 상상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절제를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많은 것이 그 자체로 강렬해서 계속 취하고 싶게 하거나 우리 마음을 교묘하게 동요시켜 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즉 내가 보기엔 많은 것이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을 해서 소비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저 잘 설계된 덫에 걸린 것뿐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의 자율성이나 이성 혹은 의지라고 부르는 무언가가 작동하는 시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덫의 우수함 앞에서 그것이 작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런 생각을 갖고 경계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페로몬을 풍기는 많은 자극 앞에서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개미가 되어버리곤 한다.
나 자신이 개미가 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 무언가를 참아왔다.
정말 우리 주변에 그러한 것들이 많을까?
나의 헛된 망상이 아닐까?
그래서 우선 내가 그러한 대상으로 판단하고 절제하고 있는 몇 가지를 가볍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음식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정말 우리 자유의지만으로 음식을 먹을까?
-우리는 왜 필요 이상으로 먹는가?
개인적으로 음식을 절제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체계적인 고민의 결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군대에서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서 정말 단순하게 먹는 양을 줄였다.
먹는 쌀, 국수, 빵 등의 탄수화물의 양을 반으로 줄이고 대신 식이섬유나 단백질 섭취를 늘렸다.
배식받는 밥의 양이 반이 되니, 먹는 반찬의 양이 늘어나도 전체적으로 먹는 양이 3분의 1 정도는 줄였던 것 같다.
그렇게 먹는 양이 줄었지만 사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아마 이때부터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이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인들은 왜 필요 이상으로 먹는가?
답을 찾기 위한 가설은 취미 생활을 하면서 세울 수 있었다.
비록 적게 먹긴 해도 나의 취미는 요리이다.
어려서부터 요리를 좋아했었고 자취할 때 보는 유튜브 영상은 보통 요리 영상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요리를 만들 수 있고 향신료와 조미료 사용도 능숙한 편이다.
취미로 요리를 하며 나만의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법을 점차 확립해 갔다.
더 맛있다는 것은 더 많이 먹게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하며 더 많은 빈도로 먹게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맛있는 것을 더 낮은 빈도로 더 낮은 양을 먹진 않는다.
즉 맛있음의 비법이란 사람들을 많이 먹거나 혹은 더 반복해서 먹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을 밥 먹는 개미로 만드는 페로몬에 대한 힌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맛 외에도 음식을 찾게 하거나 더 많이 먹게 만드는 요소는 많다.
그러한 것까지 합쳐서 기계적으로 인간을 음식으로 유인하는 다양한 요인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봤다.
-기억, 습관, 음식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식을 먹는 것은 습관이다.
우리는 특정 음식에 대한 기억이나 그것을 먹었던 습관을 통해서 그 음식을 다시 찾는다.
의식할 수 있거나 무의식적인 기억 모두는 상호작용 하며 습관을 만들어내고 그 패턴을 인지하게끔 만든다.
마치 종소리만 울려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우리는 나도 모르게 습관을 형성하게 되기도 한다.
자극을 통해 대상에게 자신이 의도한 행동의 반복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방법은 심리학이나 마케팅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부분은 음식에는 그 방법이 음식 내외부에 모두 녹아있다는 것이다.
음식 마케팅은 꼭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매체에 어떻게 얼마나 노출되느냐로 끝나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 곳, 특히 음식 안에도 녹아서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우리를 음식의 포로로 만든다.
음식을 기억과 습관(학습)을 통해서 먹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당연히 먹어봤던 것을 먹는 것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먹히지 않기 위한 각종 전략이 있는 생물들을 무턱대고 먹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이 안전하다고 알려주거나 그들과 함께 먹고 탈이 없었던 음식이 곧 더 안전한 음식이었고 한편 우리가 더 선호하는 음식이 되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활동인 영양 섭취는 때문에 가장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행위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맛있는 음식은 추억의 맛이라고도 한다.
지금 먹으면 별 맛도 없는 분홍 소시지를 찾는 것은 그 어렸을 때 먹었던 기억 때문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집 밥을 찾는 것도 어렸을 때 반복해서 먹었던 기억 때문이다.
기억은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고민하는 우리에게 방향을 가르쳐 주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그래서 음식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그 음식이 우리 기억에 남도록 다양한 전략을 취한다.
우리 추억 그 자체를 공략하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매체에 노출되도록 만들기도 한다.
한편 매장 내에서도 음식이 기억에 남도록 하는 전략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특히 여러 요소와 엮어서, 소비자가 생활하며 꼭 그 음식이 아니라 엮인 요소만 떠올려도 그 음식을 찾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떤 지역과 음식을 묶는 것, 좋은 장소나 분위기로 그 식당과 음식을 찾게 만드는 것, 특정 술과 음식의 조합을 추천하는 것 등이 이러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정 음식의 맛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미식 행위라고 마케팅해서 그 음식의 맛이 이해될 때까지 찾게 만드는 기발한 전략도 있었다.
정말 맛있냐, 없냐를 떠나서 이미 그 음식을 계속해서 찾았던 경험은 우리 기억에 단단히 남아 다음에 또 그 음식을 찾게 만든다.
-사람을 조종하는 맛
사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식당 마케팅에 대한 내용으로 식상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맛이 아니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
앞서 자취에 대한 경험을 얘기에서도 다뤘지만 나 역시도 결국에는 ‘맛’도 우리의 음식 먹는 습관 형성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즉 특정 맛 자체가 가진 중독성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음식을 먹는 습관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어떤 맛이 어떻게 우리가 특정 음식을 더 찾고 더 먹게 만드는지에 대해 다뤄보겠다.
물론 미각 수용체나 각종 생화학 성분의 전문가가 쓴 글은 아니기에 글을 읽는 분들이 잘 판단해서 참고하시는 정도로만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맛있다는 감각은 무엇일까?
진화론 적으로는 우리 인간에게 안전하거나 영양이 풍부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인간에게 영양이 풍부하거나 또 독소가 적은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고 더 찾고 더 먹는 개체가 아마 더 많이 살아남고 우리의 조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냉철한 의식이 판단해서 이번 식사로 먹을 '맛있는' 음식을 계산해 고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결국 그 옛날부터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던 음식을 고를 뿐이다.
우리를 조종해서 우리에게 이로운 그 음식을 계속 찾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맛있다는 감각이다.
결국 뇌는 특정 맛을 선호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 맛 앞에서 뇌의 강렬한 이끌림 때문에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넘겨줘야 한다.
많은 경우, 그 맛이란 짠맛, 단맛, 감칠맛, 지방맛이다.
아주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이 네 가지 맛이 우리 뇌의 주는 신호는 “맛있지?!” 가 아니라 “또 먹어!”라는 것이다.
이 작용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는 외식업 종사자들은 점점 더 이 네 가지 맛을 쓰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문제는 마케팅의 강력함으로 과소비를 하게 되는 소비자처럼 우리는 이 네 가지 맛 때문에 점점 필요보다 많은 음식을 먹거나 필요보다 그 음식을 더 자주 먹는 과소비를 한다.
음식 안에 녹아진 이 마케팅 기법은 보이지 않으며 때로는 더 강력하게 우리 행동을 의도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네 가지 맛을 통해서만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아니다.
더 자극적인 광고가 결국 소비자 눈에 띄고 소비로 이어지듯, 음식도 더 자극적인 맛과 향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어필한다.
특정 맛을 극단치로 끌고 가는 전략을 취하기도 하고 각종 향신료를 활용해 더 강렬한 향으로서 소비자에게 어필하기도 한다.
치열해지는 경쟁 앞에서 어떻게든 소비자 기억에 남고자하는 음식들은 점점 더 강렬해진다.
식탁에는 필요보다 더 과한 맛을 가진 음식이 더 많아지고 있고 이 때문에 건강에 안 좋을 정도로 특정 맛을 내는 성분을 많이 섭취할 수도 있다.
-음식을 절제하는 이유
식사가 너무 일상적이거나 혹은 그 안에 있는 과정이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은 아주 지독하고도 치열한 경쟁의 승자이다.
그 경쟁을 이기기 위해 사용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다양한 마케팅 전략은 그 음식의 맛에 까지 녹아있다.
윤리의 아슬아슬한 선을 타는 마케팅 전략을 숟가락으로 듬뿍 떠서 입안에 넣고 삼키는 일이 너무 무방비하게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전략이 나도 모르게 쌓여 우리의 습관과 기억이 되고 음식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뇌가 너무 좋아하는 맛을 과다하게 사용한 음식은 우리가 절제하지 못하고 더 많이 먹게 만든다.
또 반복해서 그 음식을 먹으며 그 음식의 맛에 점점 더 적응하기에 그보다 더 강한 맛의 음식을 찾게 만든다.
많이 먹는 것이 문제냐 혹은 더 자극적인 음식이 건강에 나쁘다는 제대로 된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확답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분명히 인지해야 현명하게 음식이란 자극을 대하고 소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다는 우월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내 몸을 끔찍이도 아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까?
혹은 그러한 자극이나 자극의 제공자에게 끌려다니기 싫다는 거부감에서 일까?
나는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것을 경계하고 너무 자극적인 음식을 많은 빈도로 먹는 것을 경계한다.
음식 혹은 맛과 비슷하게 의식할 수 없는 사이에 우리를 쉽게도 조종할 수 있고 또 제공자가 그 자극을 무분별하게 남용하고 있는 대상이 있다.
다음에는 그러한 시청각 자극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