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으로의 여행
' 아름다움은 순간의 시간과 공간 속에 하나로 숨어있다.' 대단한 발견 같은 이 깨달음에 문득 하나의 의문이 도전했다. 순간 속에 아름다움이 숨어있다면 그 또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일까. 사라지는 것이 아름다움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라져서 살아지고 사라지는 것일까. 그래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모사한 예술을 만들어 박제해 아름다움이라 칭하고 당대의 기준으로 값을 매기는 것일까.
20241009.
한걸음 걸을 때마다 내려앉는 침침한 산기운을 뚫고 동학사에 도착했다. 불쑥 차가워진 공기가 반소매를 파고들자 길을 나설 때 점퍼를 숙소에 놓고 온 것이 후회가 들었다. 미래에 들어서야 후회는 입증되고 만다.
동학운동과 상관도 없는 동학사東鶴寺는 보통의 절과 다른 가람배치였다. 보통은 일주문, 천왕문을 거쳐 해탈문을 지나면 중앙에 금당인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석등이나 석탑이 있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주위에 다른 불전이나 신각, 요사채가 있는데 동학사는 천황문이나 해탈문도 없이 길을 따라 불전이 들어섰다. 불전과 불전 사이에는 눈에 보이는 문이 없어 다시 길로 나와야 했다. 그러니 문과 문 사이 드나들며 절간 속에 스며드는 기분은 길로 나오면 금세 깨지곤 했다. 여하튼 다름이 있기에 다른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때 내 심정은 '그래 얼른 눈으로 보고 집으로 가자!'
그래도 지나칠 수 없는 장면도 있었다. 불전의 위압적인 대불보다 이리도 소박한 소불을 보면 다가가고 싶다. 한 손을 들어 중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관음불이 아닐까 싶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순간, 관음불은 나에게 다가올 발걸음을 미리 듣고 있던 것은 아닐까.
길상암 앞에서 비구니가 고양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비구니와 고양이라. 세사에 벗어난 산사에서 기껏해야 안부나 묻는 것이겠지만 그 모습이 처음이고 하도 친숙하여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산고요에 길들여진 예민한 비구니는 얼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순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쉬웠지만 몰입이 없으니 의미는 없다 생각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나마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범종루 위에서 줄지어 타고를 하는 스님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엄숙한 저것과 신성한 이것이 합해진 무엇의 울림이었다. 절간의 모든 것은 부처의 일부이다. 부처의 집은 불전이고, 부처의 화신은 불상이며, 부처의 가르침은 불경이며, 부처의 가르침을 그린 것은 만다라이며, 법구사물法具四物이라고 하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은 온 세계 十法界를 부르는 부처의 소리이다. 마침 울려 퍼진 정갈한 타고 소리가 날 부르는 것 같아 멈춰 소리 속에 나를 가두었다. 그 안에 무엇을 깨달았는지 중요하지 않다. 가둔 자신은 몰아이며, 몰아는 허무를 부르고, 허무 속에 자유를 느낀다. 이 허무의 자유가 깨달음을 부른다.
이제 타고식을 뒤로하고 마지막 대웅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왕 늦었지만 아주 늦은 것은 아닌지라 어찌어찌 해 공주 시내로 가서 저녁을 먹고 하루를 적당히 마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에 막 올랐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타고의 북소리도 저만큼 산속으로 도망친 후였는데.
- 저기요.
하얀 얼굴, 엷고 수줍은 미소를 가진 여자였다. 서로를 잠시 바라고 난 후.
- 같이 볼 수 있을까요?
여자가 그것도 산사에서 그것도 비구니절에서 말을 건 것은 인생 처음이었다. 아무리 괜찮은 남자에게도 여자들은 쉬 말을 걸지 않는데, 아마도 그녀가 산의 마력에 빠져 한 말이겠지만, 내가 매력적인 남자가 된 듯 행복한 착각에 빠졌다.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뒤져 갑사에서 산 연잎엿을 주었다. 그녀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그냥 받지. 손짓 하나지만 받았다면 그 손이 또 다른 시공으로 날 인도했을지 모른다. 그녀는 나처럼 혼자 여행을 와서 산사에 온 것일까, 아니면 호기심 많은 작은 누나처럼 가족을 놓아두고 온 것일까. 아무리 혼자 걷기 좋아하는 누나라도 외갓 남자에게 말을 걸진 아닐 것이다.
그녀의 발걸음을 맞추기 시작하며 대웅전은 건성으로 보았다. 마침 어둔 장막이 절간을 뒤덮자 세상은 사라지고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음성만이 나와 같이 했다. 대웅전만 같이 보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더 짙어진 어둠 속에서도 여자는 대담하게 더 걷자고 했다. 그 걸음이 몇 분이었는데, 한발 앞도 잘 보이지 않아 산사를 내려가야 했다.
그녀는 요즘 책을 보고 사색을 한다고 낮은 어조였지만 드러나게 말했다. 사색? 평소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말인데, 사색 앞에 사색이 될만한 사건이 하나 있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작년에 뇌출혈을 맞았다. 뇌출혈로 죽은 친한 동생이 생각나 산속 어둠에 눈을 담그듯 지그시 감았다. 그나마 그녀가 다행인 것은 눈을 뜨고 뇌출혈이어서 지나가는 여자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나의 친한 동생은 가족 앞에서 쓰러져서도 살 수 없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걸음은 사뿐하지만 느릿했고 손끝마저 파리했다.
무언가 그녀와 내가 한 길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얘기를 하고 가니 산사의 입구까지 금방이었다. 언제나 벗은 길을 재촉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아쉬웠던지 우리는 카페에서 얘기를 하고 계곡길과 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 사이를 사이를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같은 길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영겁의 순행이 되길 은근히 기대했다. 수십 년을 오가며 실타래 같던 내 얘기가 계곡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녀는 연신 웃어주었으며 나의 눈물 젖은 가출 얘기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녀는 그 와중에는 국화 향기를 맡았고 나는 그녀의 우아한 향수를 흠뻑 들이키며 그녀를 꽃처럼 보았다.
- 국화꽃 향기가 나지 않아요?
- 당신의 향기 때문에 꽃향기 따위는 맡을 수 없어요.
이 말이 그녀는 풋풋 하얗게 웃었지만, 안겨야 맡을 수 있는 옛 연인의 은은한 향기 같아 가슴 한 구석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우리는 어느새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편안해졌지만, 가슴을 흔드는 떨림은 계곡소리에 숨어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 발걸음 소리에도 그녀는 놀란 고개도 들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순간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렇게 산가을의 서름한 공기를 참아내며 네 시간이 흘렀다. 공주의 모든 밤빛을 삼킨 벅차고 황홀한 밤이었다. 이 밤에 영원히 갇혀 있길 바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텅 빈 주차장. 온갖 것을 고백해도 부끄러울 것 없는 적막이었다. 그녀는 공주로 날 데려다준다고 했고, 나는 그녀를 대전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이 상황, 영화 같지 않아요?'
차속에서, 계곡길에서 말한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영화는 끝이 중요한데, 장르와 수준까지 모든 것이 결정되는데, 그 결말은 어떻게 될까.
같이 있는 길은 왜 그리 짧은지. 대전으로 가야 했던, 그랬어야만 했던 그녀의 차는 어느새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들어섰다.
2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