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집, 남의 자식> 브런치북을 완결한 후에도 나와 시부모님과의 관계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었다.
'며느리 해방운동'을 통해 큰 폭풍우가 지나간 후 잔잔한 호수 같은 사이가 되었지만, 몇 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고 특유의 '며느리'라는 입장은 참으로 편해지기 쉽지 않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나와 서울물 좀 먹은 경상도 남자인 남편.그리고 아직도 갓 쓰고 제실에서 제사 모시는 경상도에서도 아주 보수적인 집안의 시부모님.
8년간의 전쟁 같은 소통 끝에 우리는 어느 접점에서 타협하고 웃으며 만나고 있다.
그리고 다가온 설연휴.
3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시아버지는 안 계시고 시어머니가 대자로 누워 티브이를 보며 반겨주신다.
[시어머니] "오~ 왔나?"
[나] 네~ 어머니 잘 지내셨죠?
형식적인 대화를 마치고 짐을 풀고 손 씻고 나왔더니 떡과 식혜를 준비해 주셔서 남편과 먹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님이 빨래를 가지고 나오셨다. 얼핏 보니 어머님 속옷과 수건 몇 장. 도와드리기도 애매한 양? 약간의 고민 끝에 불편한 마음으로 식혜를 먹는데 남편이 어머니 곁으로 가서 수건을 개기 시작한다.
"우리 아들이는 장가를 가더니마는 빨래를 다 개고 있네~?"
하... 또 시작인가. 이놈의 기싸움.
나는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나] "왜요~어머니~ 결혼 전에 어머니가 오빠 다정한 사람이라고 하셨잖아요~근데 싫으세요?^^"
어머니는 '아니, 뭐 그래 다정한 게 좋지...' 혼잣말을 하시고는 이내 빨래를 가지고 자리를 뜨셨다.
빨래를 정리하고 오신 어머니와 나, 남편은 일 보러 나가신 시아버지와 함께 저녁 먹기 전까지 잠깐 티브이를 보는데 선거 전이라 선거 관련 방송이 한창이었다.
정치에 큰 관심도 없거니와 가족 간에도 정치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라 그저 보고만 있었다. 사실 전라도와 경상도는 완전 반대 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조심해야 하기에 어머님과 티브이의 대화에 낄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한창 티브이 속 아나운서와 대화 중이던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시어머니] "아니~ 민주당 지지하는 개딸들은 피해의식이 심한 사람들이 거의 아니가?"
사실 나는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고, 할아버지도 반대당을 지지하셨다. 이를 알고 있던 남편은 "클로버는 민주당 아니야~"라고 급하게 말을 했고, 어머니는 "그래? 다행이네!"라고 하실 뿐이었다.
내가 속한 집단의 대부분이 지지하는 당을 비하하는 발언을 어떻고 면전에 두고 할 수 있지? 만일 내가 그 대부분에 해당한다면 어쩌시려고?... 며느리가 아니라 사위라도 그랬을까? 이것도 피해의식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저녁 식사 후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물가 얘기가 나왔다.
나는 마침 사과를 깎고 있던 터라 "요즘 사과가 정말 비싸더라고요~"라며 맞장구를 쳤고, 그 말에 아버님은 "그래서 요즘 선물은 싸구려 한라봉 같은 것만 들어온다!"라고 말씀하셨다.
싸구려 한라봉...
나와 남편이 이번 설에 사가지고 간 과일은 한라봉이었다. 하지만 싸구려는 아니었다.
선물용으로 드릴 때 항상 주문하는 꽤 괜찮은 가게였고, 특별히 신경 써달라 부탁했다.
갑자기 작년 명절 생각이 났다.
그때는 샤인머스캣을 사갔는데 내 돈 주고 사먹기에도 비싼 알이 엄청 크고 탱탱한 샤인이었다. 시어머님도 올해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다며 시아버지에게 얼른 먹어보라고 하실 정도라 다행이다 싶었는데,
[시아버지] "에잇, 껍질이 질기네 이것도."
어떻게 선물 사 온 사람 면전에 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벙쪄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나중에 남편은 우리 아버지가 입맛이 좀 까다로우셔라고 했지만, 이건 예의의 문제가 아닐까.
손님이 왔는데 갑자기 빨래를 꺼내오는 것도, 손님이 사 온 음식을 면전에 두고 욕하는 것도.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조심하시더니, 며느리는 그 난리를 겪고도 평생 손님 대접은 글러먹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