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할래?"
이렇게 설렘과 두려움을 함축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새로운 사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만큼,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 실망 또한 큰 것이 소개팅이다.
어느 날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자신의 절친 중 하나라며 다짜고짜 사진을 보내왔다.
“오~ 미인이시네, 근데 그분도 하신대?”
“아니, 이제 물어보려고”
이런 건 미리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눈을 흘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야 한대!’라며 신난 목소리로 연락처를 건네 왔다. 아는 사람들끼리 소개팅을 한다는 사실이 재밌어 견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원래 남의 연애사가 제일 재밌는 법이긴 하다.
그렇게 그녀와 처음으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사실 소개팅 상대와의 연락은 무척 불편한 일이다. 어색한 상대와 의무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게 가뜩이나 인위적인 소개팅을 더 어색하게 만드니까. 그런데 이번엔 느낌이 조금 달랐다.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몇 마디만 나눠봐도 '이 사람 나랑 정말 잘 맞을 것 같다'를 깨닫게 되는 반짝이는 순간 말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기도 했다.
며칠 뒤 월요일, 우리는 합정의 어느 가게에서 만났다. 오늘 야근은 내일로 미뤘다며 급하게 뛰어 들어온 그녀는 무척이나 유쾌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관심사, 가치관, 섬세한 성격까지 비슷했다. 마치 일부러 짜 맞춘 듯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술잔이 오고 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쯤, 놓칠 수 없는 사람이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 주에 또 언제 볼까?"라는 용기를 낸 돌직구에 "평일은 너무 바쁘니까, 우리 토요일에 볼까?"는 대답이 돌아왔다. '됐다. 됐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곧 가게는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주말에 보자며 지하철역 앞에서 인사를 건넨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녀와 헤어졌다.
"잘 들어가고 있니?"
곧바로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무려 선톡이다. 소개팅을 해 본 사람이라면 선톡의 소중함과 의미를 알 것이다. 술기운 탓인지, 그녀의 카톡 때문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그녀는 바쁜 사람이었다. 매일 야근의 연속이었다. 연락을 유지하는 것조차 점차 버거워하는 게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나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잠깐 시간을 내 얼굴을 보자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친구도, 연인 사이도 아니었고, 서로의 경계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직장인이었으니까.
어떻게든 연락을 이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부담이 되었던 걸까, 결국 우리는 토요일에 만나지 못했다. 일이 너무 바빠 누군가를 만날 마음조차 잊고 말았다는 그녀의 말과 함께였다. 맘에 드는 사람 찾기가 그토록 어려운 소개팅에서 비로소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만약 우리가 친구 사이였다면? 그날 가게가 일찍 닫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직장이 너무 바쁘지 않았다면? 내가 좀 더 용기를 내 그녀를 찾아갔다면?
항상 소개팅은 어렵다. 서로 마음이 통하더라도 다음 약속, 또 그다음 약속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과 운이 모두 따라줘야 한다. 이 불편한 과정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도, 그 마음을 받는 사람도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대학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수업이나 동아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서로를 알게 되고, 썸을 타고, 연애를 하던 그때 말이다. 매일 집과 회사를 오고 가는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쯤은 해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는 직장인이고, 내일도 출근은 해야 한다.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저마다 필요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연'이란 나의 노력이 전제가 되고, 운 또한 따라야 하는 것이기에. 그 언젠가 마주칠 인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친구의 “소개팅할래?”라는 물음에 “예쁘냐?”라고 되묻는다. 한번 보고 남이 될지도 모를 상대방과의 완벽한 데이트를 위해 맛집을 찾아본다.
우리는 직장인이고, 오늘도 소개팅을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