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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Apr 04. 2024

'국적 초월한 개방적 예술세계' 레이코 이케무라 인터뷰

유럽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레이코 이케무라(74)’가 3일 자신의 첫 미술관 개인전 수평선 위의 빛-‘Light on the Horizon’ 오픈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 헤레디움 미술관을 찾았다.



레이코는 1979년 이후 40여 년간 전 세계 29개국에서 500회 이상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진 작가로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 센터, 스위스 바젤 미술관, 일본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으며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작품세계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영화배우 못지않게 핸섬한 스위스 국적의 건축가인 남편과 함께 ‘미디어 데이’행사에 참석한 레이코는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단발머리, 하얀 니트 위에 받쳐 입은 검은색 바지정장이 영락없이 일본색이 강한 근엄한 여류학자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영혼이 맑고 자유로운 ‘코즈모폴리턴(세계인)’적인 예술가다. 일본 혼슈 북동부 태평양 연안에 자리 잡은 미야기현의 존재도 미미한 작은 어촌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스위스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독일 베를린예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이를테면 노마드(유목민)같은 작가다.


그는 이 같은 삶의 궤적을 통해 국적을 초월한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예술세계와 이질적인 문화를 통합해 낯선 상상의 공간을 구축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양면성’을 거론하는 것은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 전통과 현대,, 현실세계와 정신세계, 추상과 구상 등 서로 다른 양면성을 연결하는 작업을 추구하면서 회화와 조각, 사진,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수단으로 예술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레이코 이케무라 작 '수평선' / 헤레디움 전시>


통창 밖으로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헤레디움 미술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시작된 인터뷰는 대전역 주변 ‘핫풀’인 소제동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파스타 전문점으로 이어졌다. 레이코는 기자의 질문에 눈빛을 반짝이며 조근조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헤레디움 미술관은 1922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복원한 역사적 맥락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에서 개인전을 갖게 된 배경은?


“100년 이상된 건물을 복원해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씨엔시티 마음에너지재단 황인규 대표를 만나 건물의 역사와 미술관의 의미, 향후 비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헤레디움 미술관에 매료됐다. 또 근대적인 문화유산이라는 과거의 공간이 풍성하고 다양한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에 감동받았다. 황 대표가 가진 비전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서 첫 미술관 전시를 이곳에서 열게 됐다”


 -오사카 대학시절엔 스페인어를 전공했는데 미술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마을 이름을 알려줘도 아무도 모르는 미야기현 외딴 포구에서 성장하면서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오사카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자유롭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는 그랬다. 하지만 스페인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경으로 시야가 넓어졌고 공부를 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가면서 미술에 눈을 떴으며 유럽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진정한 작가가 됐다.” 

 

-이번 전시회의 메인 작품인 ‘수평선’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것으로 알고 있다. 


“내 고향은 미야기현 츠시(三重 津) 인근 아주 작은 어촌으로 바다는 더없이 익숙한 곳이다. 어느 날 도카이선 열차에 앉아 바라본 바다 풍경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생경하고 강렬했다. 태초의 기억과도 같았던 수평선 너머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은 내 예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코 이케무라 작 '우사기 카논' / 헤레디움 전시>


-풍성한 치마를 입고 손을 모은 사람과 토끼 머리 형상이 융합된 ’우사기 카논’이라는 설치작품이 인상적이다. 


“토끼관음상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조각상이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건축상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원자력 유출로 인해 선천적인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토끼에 관한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보편적인 애도의 상징으로 토끼의 귀와 우는 사람의 얼굴을 결합시킨 이 작품은 창조와 파괴의 순환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지구의 미래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다” 


(옆에 앉은 레이코의 남편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스페인 발렌시아와 쿤스트 뮤지엄 바젤 등 공공장소에 있는 초대형 ‘우사기 카논’의 변형 버전 사진을 보여주며 유럽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은 회화, 조각, 드로잉, 설치작품, 사진, 심지어 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중에서 작품을 만들 때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장르는 무엇인가.


“회화 작품을 그릴 땐 몰입감 때문에 가장 즐거움을 느낀다. 드로잉을 그릴 땐 순간적으로 정직해지는 기분을 갖게 되며 조각은 하나의 작품을 위해 여러 명이 협업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레이코 이케무라 작 '트리 러브' / 헤레디움 전시>


레이코와 미디어데이 참석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 곳은 헤레디움 미술관처럼 백 년은 넘은 것 같은 적산가옥으로 메마른 넝쿨로 뒤덮인 우중충한 건물 외벽과 내부의 앙상한 골조에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있었다. 


일본풍 건축양식의 창고 내부를 개조한 식당에서 레이코는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 정경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라며 “대전은 대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소제동을 돌아보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된 문화적 다양성이 살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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