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준 Apr 30. 2024

초록으로 물든 내변산 팔색조 풍경

전북 부안 내변산 직소폭포길 트레킹 

녹음 짙은 고즈넉한 숲엔 실개천이 흐르고 깊은 산속 호수엔 초록빛 산이 물속에 담겨있다. 수십 미터 벼랑으로 물줄기가 내려 꽂히는가 하면 울퉁불퉁한 바위산 정상에 서면 섬들로 이어진 서해바다와 곰소만 갯벌이 그림처럼 가슴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천년의 풍상(風霜)을 견딘 내소사가 내변산 품에 안겨있다. 어지러운 세상사에서 잠시나마 아득히 멀어지고 싶다면 내변산으로 가야 한다.


전북 부안 내변산 직소폭포길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코스다. 산중호수, 폭포, 계곡, 뷰, 고색창연한 사찰까지 그 길을 걸으면 한 편의 ‘버라이어티 쇼’를 관람하는 것처럼 8km의 길지 않은 길엔 팔색조처럼 다채로운 풍경에 매혹된다.



봄, 가을이 짧아진 요즘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아니라 ‘하하동동(夏夏冬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낮의 도심엔 벌써 열기가 가득하다. 27일 마힐로가 찾은 내변산에도 벌써 초여름이 상륙했다. 


날씨뿐만 아니라 풍경도 여름이다. 기온은 섭씨 20도로 도시 기온보다 낮고 나무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상쾌하지만 산과 숲은 온통 초록이 가득해 마음도 눈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내변산탐방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청량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대숲길을 만난다. 그 짧은 길은 ‘신록의 계절’로 통하는 관문(關門)이다. 들꽃이 손짓하는 계곡을 끼고 원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로 변산성지(邊山聖地)로 불리는 실상사를 거치면 인공호수인 직소보가 등장한다. 깊은 산속 호수엔 내변산의 매혹적인 풍경이 담겼다.



직소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둔 직소보는 내변산의 풍경을 풍성하게 채색(彩色)한다. 봄이면 연둣빛 이파리와 산벚이 가득하고 가을이면 물에 비친 단풍이 장관이다. 가히 윈도 바탕화면 같은 풍경에 누구라도 경탄을 자아낸다.


호수를 벗어나 잘 닦여진 산길을 오르면 10여분만에 이 길의 반환점인 직소폭포 전망대에 도달한다, 직소폭포는 내변산의 ‘대표 명소’다. 억겁의 세월이 아로새겨진 높이 30m에서 내려 꽂히는 단아한 물줄기가 푸른 숲을 찌른다. 오죽하면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을 보지 않고는 변산에 관해 얘기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비경이다.


최근엔 가물어서인지 물줄기는 살짝 약해 보이고 폭포전망대에선 굉음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비 내린 뒤에는 거친 물줄기가 절벽을 꽉 채우고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굉음을 토해내리라. 



폭포를 지나 제백이고개로 이어지는 계곡숲길은 ‘명품’ 길이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하늘을 덮어 짙은 그늘이 내리깔린 울창한 숲과 계곡은 고적(孤寂)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태고의 자연미가 물씬 풍긴다. 


그래도 이 길에서 가장 압도적인 풍광은 관음봉 바위에서 내려다본 서해다. 이날은 해무(海霧) 때문에 완벽하게 쾌청한 하늘은 아니지만 감동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제백이고개에서 관음봉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은 다소 힘들고 급경사 암릉에선 쇠난간 로프를 붙잡고 올라야 한다. 


하지만 관음봉 바위 위에서 확실한 보상을 해준다. 멀리 곰소만 바다와 그 아래 어촌 들녘 풍경이 광활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가슴 후련하게 탁 트인 풍경에 번잡한 세상의 기억마저 아득해지는 듯하다. 한참 동안 너럭바위를 떠나지 못했다. 그 ‘뷰’는 아무리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관음봉에서 거친 숲길을 내려오다 보면 ‘다시 살아난다’는 뜻을 가진 내소사(來蘇寺)가 저 멀리 ‘미니어처’처럼 반듯하고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혜구두타가 소래사(蘇來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니 1400년의 역사가 담겼다. 


절 입구에 사열하듯 서있는 4월의 전나무숲도 아름답고 팔작다포집으로 지은 대웅전도 고풍스럽지만 봉래루(蓬萊樓) 앞의 수령 수백 년 느티나무의 등걸 사이로 보이는 기와지붕의 화음에 시선이 끌린다.


단청이 빛바랜 절집을 꼼꼼히 둘러보다 절 뒤편 병풍처럼 둘러쳐진 눈 맛 시원한 산세에 하늘높이 솟은 관음봉을 바라보는데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4시간의 행복’은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국적 초월한 개방적 예술세계' 레이코 이케무라 인터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