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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LINA Feb 26. 2023

나사 빠진 톱니바퀴

 입사하고 두 달간 일이 없었다. 부서 내에서도 고졸 공채 직원은 처음이라 어떤 업무를 맡겨야 하는지 모르겠는 눈치였다. 하루 종일 사내 홈페이지를 구경하고, 다른 부서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기도 지쳐갈 쯔음 상사분께서 파일을 업데이트 해보라고 하셨다. 매주 업데이트 하는 주간 보고 파일이었는데, 시스템에서 업데이트 된 정보를 다운 받아서 엑셀 장표를 만드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취득하라고 한 컴퓨터활용능력 2급 자격증을 써먹을 날이 온 것이다. 기존 자료와 비교 해가며 장표를 업데이트 시켰다. 상사는 만들어진 자료를 한번 쭉 훑어 보더니 앞으로 이건 너가 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그게 업무의 시작이었다.


 주간자료 만든게 마음에 들었는지 순식간에 월간자료, 연간자료 만드는 업무가 넘어왔다. 드디어 나도 사회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구나, 뿌듯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주간자료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하나씩 만들었는데, 월요일에는 남들보다 빨리 출근해서 지난 주 데이터를 가공해야 했고, 금요일에 만드는 자료는 일명 노가다 작업이어서 하루를 꼬박 잡아 먹었다.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연차를 사용하고 싶어도 자료 업무가 발목을 붙잡았다.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맡기자니, 월요일에 일찍 출근하거나 금요일에 늦게 퇴근하라는 것이고, 난감했다. 2년간 주간자료에 시달리다가 새로운 고졸 직원이 배치된 이후에 업무를 인계 할 수 있었다. 사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언제부터 잘못 되었는지 모르겠는 연간자료였다. 연간 판매 스타일 수, 금액 및 품목별, 브랜드별로 정리 된 대용량 파일인데, 수식이 전부 꼬여 있었다. 수식의 문제를 발견하는 순간 아찔해졌다. 아 이건 대형공사다. 그간 아무도 몰랐던게 신기했지만 직원 근속년수가 3년인 회사에서 이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려 한 사람이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사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는 생각보다 별 일 아니라는 듯, 나더러 고쳐보라 했다. 본인은 봐도 잘 모른다고 했다. 사회생활의 첫번째 진리를 깨달았다. 일은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이하는구나. 


 일주일 동안 혼자 골머리를 싸매고 연간자료를 고쳐내니 어느새 나는 엑셀의 신이 되었다. IF 함수를 사용하여 얼핏 보기엔 그럴싸 해 보이는데 직장 생활을 십여년간 했다면 알만한 쉬운 수식이었다. 매크로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프로그래밍을 사용해 개발한 것도 아닌데, 이곳에서 나는 신으로 불려졌다. 조직에서 능력은 참 상대적이다. 우리 회사는 ERP 시스템을 사용하여 업무를 했다. 시스템을 사용하여 빠르고 정확한 관리를 하겠다는 취지였다. 모든 발주는 전산을 통해 진행 되었고, 물건이 입고 되면 전산에 재고를 잡으며 실물재고와 전산재고 숫자를 맞춰 관리 했다. 분기별로 실물재고와 전산재고가 맞는지 실태조사를 하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맞는게 하나도 없었다. 회사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부터 모든게 꼬여 있었다. 전산에는 재고가 있는데 실물은 없었다. 그리고 윗선에는 실물 있으니 다음 시즌에 사용하겠다 보고되었다. 그런 행위가 몇 년 반복 되었고, 업무는 나에게 넘어 왔다. 기존 사람들과 똑같이 일했다가는 몇년 뒤에 고스란히 나의 책임으로 돌아올 게 뻔했다. 몇 조원의 매출을 가진 튼튼한 회사 속을 들여다 보니 허술하기 그지 없었다. 나사 빠진 톱니바퀴였던 것이다. 한번 빠지기 시작한 나사는 메꿔지지 않았고 별 일 없다는 듯 흘러갔지만 사실 구멍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나도 맞지 않는 장표를 마주하며 구멍 메꾸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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