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별 May 22. 2024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좀!

“엄마 저 책 한 시간 다 읽었어요. 이제 핸드폰 해도 되죠?”

“오빠 우리 핸드폰 40분....”

“야, 나한테 신경 끄고 너 할 거나 해.”     



동생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 생각도 안 하고 자기 할 말만 하곤 쌩하니 들어간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미운지. 내 아들이지만 진짜 이럴 땐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엄마, 왜 기쁨이랑 행복이는 핸드폰 40분이나 해요? 나는 30분 밖에 안 했는데?”

“내가 아까 그래서 오빠한테 말해주려고 했는데 오빠가 내 말 듣지도 않고 나한테 뭐라고 했잖아.”

“그래, 아빠가 보기에도 너 아까 좀 너무 했어.”    


 

항상 손 잡아주고 동생 머리도 손수 빗겨주던 맑음이..이 모습 어디로 간거니 대체

어렸을 때 맑음이는 동생들을 참 잘 챙겼다. 특히 동생들이 태어났을 때  질투 한 번을 한 적 없고 때리거나 꼬집거나 해코지한 적도 없었다. 누워있는 동생에게 모빌을 틀어주기도 하고 본인의 장난감을 양보하기도 하고, 밖에 나갈 땐 손도 잘 잡아주는 정말 스윗한 오빠, 형아였다. 그랬던 아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슬슬 동생들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횟수가 늘더니 초6 말부터는 둘째 기쁨이를 아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동생이 하는 말은 끝까지 듣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기쁨이의 부족한 면만 쏙쏙 골라 툭툭 내뱉는 말로 자존감 하락의 일등 공신 역할을 자처하기도 하고 아주 작은 양보와 배려조차도 허하지 않는 야멸차고 냉정한 오빠가 되어가는 맑음이. 하는 말마다 다 맞는 말이긴 한데, 굳이 그 말을 해서 동생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말들은 어찌나 그렇게 잘 골라하는지 둘째 기쁨이에게만은 찬바람이 쌩쌩 불어 한여름 삼복더위에도 등이 오싹해지게 만드는 재주가 생긴 맑음이다.

기쁨이 눈엔 늘 자랑스러운 오빠, 자신감이 넘치고 리더십 있고, 사회성까지 뛰어난 오빠였다. 자신은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기쁨이 눈에 ‘오빠는 뭘 하더라도 다 잘해 보이는 콩깍지’가 씌인 기쁨이는 오빠가 함부로 할 때 소리 지르며 우는 것 말곤, 엄마에게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 동생과 사이좋은 남매는 아니었다. 길을 지나가다 마주쳐도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게 너무도 당연했고 누가 물어보지 않으면 서로가 가족임을 굳이 말하지 않았던 우리.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말 외에는 서로 하지 않았던 동생과 나. 나는 여동생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남동생은 형이나 남동생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곤 했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하나가 있는데 그 일로 동생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으니... 아빠와 63 빌딩에 갔다 사 온 금고형 저금통이 하나 있었는데 용돈을 받으면 하나도 쓰지 않고 그 저금통에 차곡차곡 모아놓았다. 사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조금씩 모았던 용돈을 세고 또 세면서 어린 나이에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알아가던 나날들. 학교 다녀와서 한 번, 학원 다녀와서 또 한 번, 속상할 때, 우울할 때 수시로 들여다보며 적은 금액이었지만 나에게 기쁨을 주었던 나만의 보물상자가 되어 준 검은색 네모 저금통.     

그날도 조신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나의 보물들의 안녕을 확인하려고 띠리릭, 띠리릭 금고를 돌려 뚜껑을 열었는데, 싸늘하다. 빼꼼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반긴 건 낯선 종이 쪼가리 하나. 

‘누나, 내가 너무 필요해서 누나 돈 좀 빌려갈게. 나중에 어른 되면 꼭 갚을게.’

(하지만 아직까지 난 그 돈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왜 어른되서야? 지 용돈 받으면 바로 갚아야지!!!)

꽁꽁 숨긴다고 숨겼던 비밀번호를 도대체 어떻게 알아챈 건지, 나름의 예의를 차리며 만행을 저지른 남동생에게 너무도 황당한 나머지 따지지도 못하고 그렇게 나의 몇 개월의 용돈을 홀라당 날리고 말았다. 

그 후로 더 웬수같은 사이로 발전한 우리. 그렇게 남보다 못한 사이로 20년을 넘게 지내다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의지할 사람은 서로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고 지금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꼭 잊지 않고 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엄마가 우리에게 주고 가신 선물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서로의 소중함을 다 커서, 가장 잃고 싶지 않은 존재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깨달은 동생과 나.

서로 남남처럼 지냈던 시간들을 후회하는 동생과 나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아무리 말해줘도 ‘응’이란 한마디로 끝내버리거나 ‘엄마랑 삼촌도 그랬으니까 우리처럼 싸우는 게 당연한 거야.’라는 그럴싸한 말로 응수하는 맑음이. 그럴 땐 밀려오는 한숨만 내쉴 뿐. 언젠가 아이들도 깨닫는 날이 올 거란 걸 알지만 괜히 마음만 조급해진다.      



“엄마, 나는 왜 언니가 없어? 우리 오빠 같은 사람 말고 나는 000같은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

오빠와 다툼이 생길 때마다 엉엉 우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래, 나도 그랬단다.’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고 그때마다 하는 말이 있으니,

“기쁨아, 오빠는 지금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야. 곰이 백일 동안 쑥이랑 마늘만 먹고 사람 된 거 알지? 오빠도 지금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오빠가 더 멋진 사람으로 발전하기 위해 이런 과정을 꼭 거쳐야 하거든. 우리가 조금만 참아주자.”     


오늘도 맑음이는 사람이 되어가는 곰의 모습을 하며 포효하고 있고, 나는 열심히 기쁨이의 성난 마음을 진정시킨다. 언제 정신 차릴래 이것들아 라는 소리 없는 외침을 날리며.


작가의 이전글 공든 탑이 무너졌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