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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Mar 15. 2024

공든 탑이 무너졌습니다.

어젯밤부터 오늘을 기다렸다. 오늘은 3월 중 일하지 않고 쉴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기에. 아이들 여유 있게 아침 먹이고 학교 보낸 뒤 나는 카페로 달려가 맛있는 라테하나 시켜놓고 글도 쓰고 책도 읽을 생각에 어젯밤, 자기 전부터 설렜다.    


 

오늘도 사춘기가 오다 잠시 멈춘 듯한 큰 아들이 눈뜨자마자 내방으로 건너와 조잘조잘 이야기를 해 준다. 변성기가 와 목소리는 걸걸하지만 요 며칠 나의 단잠을 달콤함으로 깨워주는 사랑스러운 우리 맑음이. 요즘만 같으면 정말 뭘 하지 않아도 다 좋다. 무엇보다 큰아이와 마찰이 없었고 투덜 쟁이 기쁨이도 좀 잠잠한 듯하고. 행복이야 말해 뭣 하랴.     



모든 게 완벽하게 느껴졌던 그 순간이 와장창 깨지는 데는 단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침을 먹는 식탁 앞에서 또다시 벌어진 맑음이와 기쁨이의 전쟁. 조근조근한 말로 동생을 찍어 누르는 아들과 그에 맞게 받아치지 못해 분한 기쁨이. 결국 또 폭발한 것은 오늘도 동생 기쁨이다.

    

“아침 먹자마자 내가 먼저 씻을 거야.”

“내가 먼저 씻을거라고오!!!!”     

내 귀에 들린 날카롭고도 거친 그 말투는 기쁨이의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


“기쁨이! 너 아침부터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오빠한테 좋게 말 못 해?

“엄마는 왜 또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건데? 오빠가 먼저 나한테 시비 걸고 기분 나쁘게 말한 건데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건데!!”

“엄마가 오빠가 하는 말은 못 들었잖아. 엄마가 못 들었는데 어떻게 오빠를 혼내.”

“왜 엄마는 오빠가 하는 말은 못 듣는 건데? 왜 나한테만 그래!! 그럼 나도 엄마 없는 데에서 오빠랑 행복이한테 막 함부로 말할게. 어차피 혼내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래도 되는 거잖아?”

“너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그렇게 행동하면 결국은 네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거잖아. 누가 있고 없고에 따라 행동이 달라져도 된다는 너의 말이 진짜 맞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는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끌어모아 쿵쿵대며 방으로 들어가 고함을 지르며 운다.

“내 편은 아무도 없어!!”     



그렇게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함을 지르며 우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지금은 그 어떤 말을 해도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혼자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놔두었다. 등교시간이 임박했는데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딸을 보자 내 안에 불안이 또 치밀에 오른다.


“너 이리 와! 대체 뭐가 그렇게 혼자 억울하고 분한 건데?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그냥 너만 바르게 행동하고 말하면 되는 거라고 했어 안 했어! 네가 그동안 받았던 것들은 하나도 기억 못 하고 못 받았던 것들만 그렇게 붙잡고 지낼 거야? 넌 감사를 할 줄 몰라. 넌 바른말인데도 네 기분 나쁘면 안 들으려고 하지? 그럼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어!”     


그 뒤로도 이어진 잔소리들, 아이의 분노에 가득 찬 울음소리, 고성들. 결국 나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의 등으로, 뒤통수로 손이 나갔다.      

알고 있었다. 아이의 억울한 마음 그 마음 한번 읽어주고 인정해 주고 이해해 주면 된다는 것을. 아이의 말이 억지스러워도, 자기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더라도 그 모든 말과 행동이 거슬려도 그냥 아이의 마음을 한 번 공감해 주면 되는 거였다.     

아이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바꿔주어야 한다는 마음과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어야 한다는 두 마음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나는 아이의 마음보다 바른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고,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아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교정해 주어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더 실렸기에 이 아침, 그 사달이 났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내 마음을 건드린 걸까. 딸아이의 어떤 모습이 나를 무너지게 만든 걸까.

별 것 아닌 일에 쉽게 분노하는 아이의 모습 때문인 걸까? 잘못을 해도 일단 자기편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아이의 모습과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자꾸 들이밀며 엄마를 이기려 드는 아이의 모습 때문에?     


아니다.  끝을 모르고 펼쳐지는 나의 불안 때문이다. 자기감정을 저렇게 거칠게 표현하다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다른 사람은 배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친구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어쩌지? 저러다 혼자 외톨이가 되면 어쩌지? 평생 외롭게 살아가게 되면 어쩌지.

     

아직 눈앞에 닥치지도 않은 상황들을 상상하고 그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아이를 둔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았고 벌어질 가능성도 없는 상황 때문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나의 불안, 두려움. 그 두려움이 앞서 아이의 마음을 보지 못했고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힘을 잃게 했으리라.

조절하지 못한 쓸데없는 상상력으로 인해 그동안 아이에게 공들여 쌓은 탑을 와르르 무너트렸다.



무너지는 탑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남겨진 잔해들을 바라보는 게 더 아프다. 기죽어 있는 모습, 내 눈치를 보는 아이의 눈빛. 내 마음에 남겨진 생채기까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하나씩 하나씩 떨어진 조각들을 함께 치웠다. 엄마가 화내서 미안했노라, 엄마의 스매싱을 맛보게 해 미안했노라. 그리곤 둘이 새롭게 지어질 탑의 기초공사를 해 나간다.

부디 이번 탑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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