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링”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 딸아이의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뜬다. 휴, 또 시작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는데 하교하는 시간이 되면 꼭 전화를 한다.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시간은 또 왜 이리 정확한지 원.
“엄마.”
딸아이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무슨 일 있었어? 목소리에 왜 이리 힘이 없어?”
“엄마, 00이가 갑자기 나를 본 체 만 체 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 또??
“진짜? 언제부터 그랬는데?”
“바이올린 발표회 전전주부터. 갑자기 내가 말 거는데 대답도 안 하고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모르는 척 해. 내가 카톡으로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냐고 물어봤는데 며칠 째 보지도 않아.”
아, 그래서 발표회 날 그렇게 전화를 해 댔고 표정도 밝지 않았구나.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분명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어느새 난 또 아이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이미 불안이라는 감정은 말이 되어 내 입을 떠나고 있었다.
<다정한 관찰자>를 읽으며 격하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는 느린 학습자를 키우는 엄마도 아닌데 왜 그리 마음이 먹먹하던지. 느린 학습자를 양육하는 엄마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한소리 할지 모르겠으나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 모습이 자꾸 오버랩되며 읽히는 걸 낸들 어쩌리.
초등학교 1학년 입학 한 후 딸아이는 친구문제로 늘 힘들어했었다. 시골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 큰 아이가 입학했을 땐 한 반에 스무 명이 넘어 도시에 있는 학급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물론 학급은 딱 하나다. 전교생의 아이들은 졸업할 때까지 싫어도 1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 건지 아니면 남자 아이라 그런 건지 친구 문제로 한 번도 힘들어한 적이 없다. 그런데 딸은 입학하면서부터 줄 곧 친구 문제로 눈물바람이다.
“엄마, @@이가 갑자기 나하고만 안 놀아. 다른 아이들은 다 @@이 말만 듣고 나하고 놀아주지 않아.”
“엄마, 오늘은 나 혼자 놀았어. 애들이 자꾸 나만 안 껴줘.”
한 반에 여학생 여섯, 남학생 한 명이 다인 그 작은 사회에서 대체 우리 아이만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겪는 걸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 다녀오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은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 오늘은 속상한 일 없었어?’가 되어 버렸고 그때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볼 때마다 내 눈빛도 격하게 흔들렸다. 참으로 이상하게 둘이 그렇게 죽이 척척 맞아서 붙어 다니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돌아서서는 매몰차게 행동을 한다. 그런 친구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길이 없는 곰탱이 마냥 둔한 딸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속상한 감정을 나에게 털어놓는 것뿐.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아이의 친구문제에 예민해지게 된다. 나도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이라 더 그런 것도 같고.
어렸을 때 단짝 친구였던 아이가 갑자기 등을 돌리고 돌아서는 날들이 많았다. 지금 딸아이는 엄마인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기라도 하지, 내가 어렸을 땐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가만히 앉아서 내 눈을 바라봐주며 마음을 읽어주는 다정한 엄마가 아니었으니까. 그냥 슬픔과 속상함을 혼자 꾹꾹 담아내고 삼켜냈고 관계에 이상이 생기면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상대에게 맞춰주기 바빴고 그래야 하는 줄만 알고 자랐다. 관계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어떤 건지 너무도 잘 알기에 딸아이의 말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대체 그 집 아이 왜 그러는 거냐고, 왜 우리 딸에게 함부로 대하는 거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처음엔 반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가 어리숙해서, 그런 아이를 친구들이 얕보고 함부로 대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마음을 주면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딸을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여겨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리 야무지지 못하는 거냐며 딸아이를 닦달하고 다그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도 아니고 학원에서 잠깐잠깐 만나는 아이인데도 같은 일이 반복되니 이제는 우리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친구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나? 생각 없이 하는 말에 친구들이 상처를 받나? 아니면 몸에서 냄새라도 나나?(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빨래를 해대고 씻는 것에 철저한 사람인데) 아니면 친구를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나?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딸아이를 채근하기 시작한다.
“카톡에 답은 왔어? 오늘 피아노 학원에서 만났을 때는 어땠어? 오늘도 아는 척 안 했어?”
내 물음에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큰 눈을 꿈벅거리며 고개만 끄덕이는 것뿐.
다정한 관찰자고 뭐고 다 때려치우자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려본다. 내가 이렇게 캐묻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하겠으나 결국은 내 불안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밖에 없음을 알기에. 이번에도 모든 궁금증과 불안을 안쪽 깊은 곳까지 끌어내려 아이 셋 낳고 늘어진 뱃살 어딘가 즈음으로 밀어 넣는다.
빠른 아이든 느린 아이든, 용감한 아이든 겁 많은 아이든, 아이는 결국 자신만의 힘으로 오롯이 삶을 개척하고 살아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 힘을 기르는 성장기 동안 안전하고 단단한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가도록 돕는 것이 엄마의 과업이겠다
-다정한 관찰자 p.55
하, 근데 진짜 그 친구에게 묻고 싶다. 귀도 같이 뚫으러 가자며 딸아이에게 바람 넣을 땐 언제고, 주말에 만나서 놀게 해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다이소 하트 사탕 선물로 줬더니 맛있다며 딸아이 볼 때마다 맨날 ‘하트사탕 줘~ 하트사탕~’하는 바람에 다이소를 지나갈 때마다 00이 챙겨줘야 한다고 꼭 들러서 하트사탕까지 사다 줬더니만 갑자기 왜 마음이 변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