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종종, 얼~마나 열심히 걸었게요~
나는 정말이지 꾸준히 컸다.
어릴 때부터 작았던 나는 꾸준히 키가 커서 작은 키의 성인이 되었다.
작은 키의 에피소드는 참으로 많지만…
몇 가지 소개하자면..
초딩시절 친구들이랑 놀이동산에 가면 키가 미달이라 못 탔던 기구들이 많았다. 놀이기구 출구에서 가방을 지키며 홀로 한탄했다. “나는 언제 크나. 도대체!” 의문의 1패.
중학교 시절, (그땐 싫었지만) 집안 내력인 동안 유전자의 힘으로 얼굴이 어려 보였다.(신은 공평하시다.)
주말에 천 원짜리 현금을 내고 버스를 타면 운전기사 아저씨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초등학교 요금의 거스름돈을 주시곤 했다. 멋쩍은 나는 청소년 요금만큼 다시 요금통에 동전을 넣었다. 의문의 2패.
질풍노도의 시기. 중2병을 심하게 앓았다.
세 살 터울의 막내동생과 나는 팔다리 길이가 비슷해서 서로 밀치거나, 분노의 발길질을 하면서 싸움을 하던 때였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유로 키운 기럭지로 업그레이드된 동생의 다리가 내 다리를 앞서 공격이 들어왔다. 내가 다리를 뻗기도 전에 강타하는 그녀의 강한 터치! 동생은 170cm 가까이 커버렸다. 의문의 3패.
고딩때는 친구들은 그리도 훌쩍 뛰어넘는 월담이 안되었다. 나의 짧은 다리로 제한된 시간 안에 담을 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체육복 바지는 필수요, 3단 도움닫기 점프의 고난이도 기술이 요구되는 야자시간 간식타임. 의문의 4패.
대학생 때. 대규모의 집회가 열리는 여의도 광장에서 까치발을 들고 아무리 펄쩍펄쩍 뛰어봐도 도저히 무대가 보이질 않았다.
보다 못한 키 180cm의 한 친구가 마치 자기 딸 목마를 태우듯 나를 들어 올려서 윗동네 구경을 한번 시켜주었다.
아, 이 굴욕이란! 의문의 5패.
대학생 시절, 오빠들이 이제 그만 신발에서 내려오라고 놀려대도 나는 꿋꿋이 통굽 신발을 신고 다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10cm 넘는 힐은 기본이었다. 힐곧나, 나곧힐.
신발을 벗는 식당에 가면 늘 후다닥 가서 앉고 제일 먼저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그 타이밍을 놓쳐서 친구들과 나란히 서게 되는 때면 친구들이 하던 말.
“어!? 너 나보다 작네~ 왜 난 네가 작은 줄 몰랐지?”
이수근이 개그 프로그램에서 부르는 “키 컸으면” 노래는 나에겐 참으로 웃픈 노래였다.
열등감은 아니었다. 그저 키가 큰 삶이란 어떤 느낌일까… 쓸쓸한 마음 그 언저리쯤? ㅎㅎ
캐시XX. 만보기 기능이 있는 앱이다. 만보를 걸으면 100원정도 환산가능한 포인트가 쌓이는 나노재테크앱.
사진처럼 걸음수/칼로리 소모/시간/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하루에 만보는 걸어야 건강에 좋다는데…
운전을 시작하니 걸을 일이 거의 없다.
동생과 나는 저녁이 되면 자기 전에 한 번씩 앱체크를 하곤 했다.
“오늘 얼마나 걸었어?”
“난 오늘 오백 걸음도 안 걸었다”
“걷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네~.”
“이러다가 직립보행을 까먹는 건 아니겠지?”
그러던 어느 날,
동생과 하루 종일 동선이 같았다.
오랜만에 좀 걸었다 싶을 정도로 많이 돌아다닌 날.
만보를 달성했는지 확인해 보기로 한 동생과 나.
당연히 모든 시간을 같이 다녔으니, 거의 비슷한 수준이겠거니 생각하며 내가 먼저 앱을 확인했다.
오~웬걸!
만보가 넘었다!
역시 많이 걷긴 했네~ 하며 동생에게 말했다.
“너도 만보 넘었겠네~! 한번 봐봐!”
.
.
“언니! 나는 만보 안 넘었는데? 팔천 몇백 걸음이야!”
“어? 이상하네! 너랑 오늘 거의 동선 비슷했는데? 내가 혹시 걸은 거리수가 더 많은가? 너 몇 km 야?”
“X.X km!”
“어? 뭐야? 차이 없는데?”
혹시나 해서 동생의 폰을 빼앗아 확인했다.
엥? 거리수는 같다.?!
갑자기 동생이 푸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다리 길이가 나보다 짧잖아! 보폭이 다르니까 같은 거리를 걸어도 내가 걸음수가 적은 거야!”
연상되는 그림 하나.
뱁새가 걷는다.
종종종종 종종종종 종종종종 종종종종
황새가 옆에서 걷는다.
서어어어어어엉큼 서어어어어어엉큼
뱁새가 열여섯 걸음 걸어야 황새 두 걸음이로구나…
뱁새는 만보를 걸어서 100원을 획득했다.
의문의 1승이라고 해두자.
어쨌든 100원을 벌었으니까! 흥!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