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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May 01. 2024

너랑 한다니까 하는 거래

공부시간이 기다려질 줄이야

  학원을 다니는 것은 아주 효율이 떨어진다. 가르치는 선생님은 하나이고 배우는 학생들은 여럿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도 다르기 때문에 학원수업은 학교수업의 되풀이일 뿐이다. 게다가 고3이라 수능을 대비하고 있다면 학원은 더욱 비효율적일 뿐이다. 재수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면, 고3때 여럿이 모여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은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고등학교 때는 가장 중요한 목표가 대학에 가는 것이었다. 1학년 때는 좀 멀게 느껴졌지만 2학년이 되고부터는 약간의 부담을 안고 있었고, 고3때는 많은 압박을 받았다. 중학생일 때는 학교수업을 보충하기 위해 동네서 가장 큰 학원엘 다녔다. 공부는 나름 열심히 해서 성적은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었고, 중학교 때는 공부가 힘들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 다닌 학원은 유명 학원가에 있는 단과학원들이었다. 방학 때만 다녔는데, 주로 탐구영역 위주로 다녔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과학탐구 물리 강사가 200명 넘는 학생들 앞에서 강의보다 개그를 더 많이 했다는 것이다. 방학 때는 보충수업이 오전에 끝났기 때문에 오후에는 학원에 갔다가 밤에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고3이 되니까 학원에 가는 것도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주로 학교와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를 했다.



  고3 여름방학이 되자 부모님은 과외선생님을 연결해주셨다. 그 선생님은 이미 형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수학선생님이었는데, 나는 형으로부터 이 선생님이 아주 잘 가르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형도 수학만큼은 고득점자여서 신뢰가 갔었다. 형도 고3때 나랑 비슷한 시기에 과외를 시작했었는데, 그게 좋은 기억이었는지 나도 같은 선생님께 요청을 드린 것이었다. 엄마는 형도 형 친구와 같이 2대1 과외를 받았으니 나도 그런 친구를 한 명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다가 중학교 동창인 다른 학교에 다니는 엄마친구딸(진짜 엄친딸)에게도 연락을 하셨다. 나는 별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의외로 함께 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이미 그 학교에서 전교1등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진짜 의외였다. 당시에 전교1등은 내신 기준이었고, 수능을 대비한 모의고사 성적은 좀 다르던 때였다. 수시전형도 없던 때라 고등학교 내신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의 문은 좁게 느껴졌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아이가 처음 과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과외냐며 싫다고 했다는데, OO이(내이름)랑 같이 한다니까 그럼 하겠다고 했단다. 과외 선생님은 일주일에 두번 주말에 오셔서 우릴 가르쳐 주셨는데, 고3에 맞게 엄청 많은 문제를 풀어오게 하셨고, 수업시간에도 계속 문제를 풀게 하셨다. 우리는 풀기 어려웠던 문제들 위주로 질문을 했고 선생님은 중요한 포인트들만 짚어주시며 설명해주셨다. 우리가 이미 아는 개념들은 반복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에 효율이 높았다.



  그리고 함께 과외하는 이 아이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나라서 과외도 해보기로 했다는데 실망시킬 순 없다는 생각에 진짜 열심히 했다. 역시 공부는 열심히 하면 분명 느는 게 보인다. 우린 수학만큼은 고득점을 유지할 수 있었고(사실 다른 과목도 고득점이었다), 최상위권 대학은 아니어도 둘다 괜찮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과외 시간은 항상 즐거웠다. 이 아이와 함께라서 수학도 좋게 느껴졌다. 우리는 격주로 서로의 집에서 과외수업을 받았는데, 또래 여학생의 방에 들어간 것도 이 아이가 처음이었다.



  한번은 토요일에 담임 선생님의 배려로 학교에서 고기를 구워먹은 적이 있었다. 명분은 고3학생들 힘내라며 만든 자리였는데, 너무 먹는 것에 집착했는지 덜 익힌 삼겹살을 먹었던 것 같다. 그 후에 배에서 들리는 신호가 심상치 않았는데 탈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처음 든 생각이 이러다 과외 못하는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수업을 받긴 했는데, 기적적으로 과외수업을 받는 2시간 동안만 속이 괜찮았다. 그후로 계속 화장실을 드나들다가 먹은 걸 모두 토해내고서야 살 수 있었다. 그날 수업장소가 우리집이어서 천만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엄친딸 이 아이는 대학생이 됨과 동시에 연애를 해서 우린 그냥 친구사이였는데 엄마들끼리 친한 사이라 자주 볼 일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군대있을 때 그 외로운 시기에 친구로서 편지도 보내 준 아주 고마운 친구라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좀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Photo by Eugene Chystiakov i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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