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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May 03. 2024

댄스로 흥이 충만했던 밤

너가 그런 애인줄 몰랐어

  나는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다녔다. 말이 남녀공학이지 1,2학년 때는 홀수반은 남자반, 짝수반은 여자반인 그런 학교였다. 학교는 집에서 3분 거리에 있었고,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절반정도는 이 중학교로 진학하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같은 중학교로 진학해서 그런지 초등학교 동창생 중에서는 자기도 이 학교로 보내달라고 울던 녀석도 있었다. 그 녀석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6학년 담임 선생님도 어이가 없어하셨고,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도 왜 갑자기 울고 그러는지 황당해 했었다. 


  중학교라서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공부는 그럭저럭 했는데, 나야 뭐 늘 조용한 편이어서 그런지 나를 신경쓰는 아이들은 없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내가 성적이 꽤 나오는 것을 보고, "니가 공부 잘 하는 줄 몰랐어" 라고 하기도 했다. 그냥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의외라는 반응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조용조용하게 낄 때는 따 껴 있었던 나였다. 운동도 잘 못하지만 농구건 축구건 항상 친구들과 껴서 함께 했었고, 주먹으로 하는 야구, 그 때는 짬뽕이라고 불렀던 것도 함께 했었다.


  나는 노래도 대충 잘 부르는 편이었는데, 함께 노래방을 갔던 아이들은 내가 생각보다 괜찮게 부른다는 말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썩 시원찮은 칭찬이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절대로 나설 것 같지 않은 상황에 나서서 전교생을 뒤집어 놓았던 적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마침내 남녀가 합반이 되었는데, 운동회가 있었던 날로 기억된다. 반별로 가장행렬(지금의 용어로는 코스프레로 이해할 수 있다)을 했는데, 우리반에서는 뭔가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컸는지 남자아이들 중 두 명을 뽑아 여장을 시킨 적이 있었다. 이건 분명 공개적인 망신주기 수준의 기획이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여장을 했었다. 뭐 대충 화장을 하고 옷 속에 풍선을 넣고 치마도 두른 채로 운동장을 한바퀴 도는 일이었다.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건 나를 아는 다른 반 친구들도 날 찾아와서 난리법석을 떨었던 게 기억이 난다. 아마도 전혀 튀지 않았던 새로운 얼굴이 상상을 벗어난 복장으로 나타나서 그랬던 것 같다. 당시 내 기분은 어땠었는지 잘 생각은 안난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슬슬 관심받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탄로난 것인지, 우리 반 아이들은 뭔가 예상 외의 재미를 터뜨리고 싶을 때 나를 찾았던 것 같다. 


  수학여행을 가면 조금씩 흥분상태의 아이들이 계획보다 더 과도한 기획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 반은 원래 여자 아이들이 장기자랑에 나가기로 했던 상황이었다. 일부 남자아이들은 자기가 라이브로 노래를 하고 싶었다는 둥 지키지도 못할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장기자랑에 나가기로 했던 여자아이들 중 하나가 급하게 남자애들을 찾아다니면서 한 명만 같이 춤을 출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그런 부름에 용기있는 한 아이가 나섰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좀 민망할 정도로 극렬했었다. 대체적인 반응들은 니가 왜 나서냐고, 니가 나서면 우리 반 망한다는 식의 만류였다. 지들이 나갈 것도 아니면서 나가겠다는 애한테 욕하고 화내던 그 상황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다 갑자기 여론이 내 쪽으로 쏠렸다. 누군가 내가 나가면 재밌을 것 같다는 말을 했고,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무대가 준비되었다. 우리반은 지금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트로트를 준비했는데, 중학생과 트로트는 장기자랑에서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의 무대는 한 여자 아이의 단독 댄스로 시작되었고, 다른 여자 아이의 노래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나를 포함한 세명의 춤사위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의외로 시작부터 그 여자아이의 춤이 관객들에게 먹혔다고 생각한다. 호응도가 매우 괜찮았고, 노래를 부를 때까지도 반응은 이어졌으며 세명이 함께 춤을 출 때는 열광에 휩싸였다. 춤을 잘 췄기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나는 전에도 몇몇 친구들 앞에서 내가 개발한 안무로 춤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왜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사람이 분위기에 맞춰서 몸을 흔들 때, 그런데 그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일 때 터지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때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내가 비록 비보이처럼 춤을 잘 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흥이 터졌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우리 학교에서 가장 잘 나간다던 애들까지도 날 찾아와 악수를 했으니 말이다. (중학생인데 악수라니..) 함께 무대를 마쳤던 수준급 실력의 여자 아이는 내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 말을 남겼다.


너가 이렇게 잘 노는 애인 줄 몰랐어



이 아이는 나중에 우연히 나이트에서도 한번 만났었는데, 중학교 수학여행 때의 그 무대가 생각나서 되게 웃겼었다. 





사진: UnsplashAhmad Od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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