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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May 09. 2024

그가 집을 나가야 했던 이유

감당하기 힘든 짐

  어른이 필요한 이유는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감당할 수 없는, 감당하게 해서는 안되는 짐을 대신해서 감당하기 위함이다. 어른은 미성숙한 어린 아이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을 때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특히, 그 아이가 가족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8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난 남자 아이가 있었다. 그의 집은 가난하였고, 아버지는 그가 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후에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그의 아버지를 치료할 만한 병원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떤 병인지도 모르고 돌아가셨는데, 아마도 암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가족 중에 큰 형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큰 형만큼은 도시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 아래로 누나 두명은 적당히 중학교만 마칠 수 있었다. 넷째는 갓난아기 때 몸이 약해서 짧은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큰 형님이 없는 집안에서 다섯째는 온갖 궂은 일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10살 때부터 엄마와 누나들과 농사일을 도와야 했고, 매일 새벽에 산에서 나무를 해와야 했다.


  다섯째 오남이는 막내인 남동생을 돌보는 일을 자주 해야만 했다. 누나들은 오남이와 막내 사이의 여동생 둘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누나들은 오남이에게 막내를 잘 돌봐야 한다며 막내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모두 너의 책임이라고 말을 하였다. 오남이는 그 말을 깊이 새겼고, 자신이 동생을 잘 돌봐주겠노라 다짐하였다.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평소 잘 놀던 막내 동생이 기운도 없고, 자꾸 등이 아프다고 그랬다. 점심에 먹은 것이 체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오남이는 동생을 안고 방에 눕히려고 했다. 동생을 안고 문지방을 넘다가 뭐에 걸렸는지 철푸덕 맨 땅에 둘은 겹치게 넘어졌다. 경기를 일으키며 비명을 지르는 동생의 악다구니에 온 가족이 뛰어나왔다. 다섯살도 안된 아이의 소리가 심상치 않게 느껴진 것이다.


  막내는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척추 신경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동네에 있는 유일한 의원에서는 백발이 희끗하고 사각의 금테 안경을 낀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환자에 대해 물었다.

" 아프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우리 애가 동생을 안고 넘어졌다는데요, 아주 심하게 소리를 질렀어요"

" 넘어지면서 척추를 다쳤을 수도 있겠네요. 흐음.."


  가족들이 막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진심으로 걱정해주며, 기적적으로 상태가 좋아지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막내는 다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신경이 완전히 낫지는 못했다. 그의 등은 굽은 채로 펴지질 않았다. 막내가 느낀 좌절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가족들 모두 좌절감을 느꼈다. 특히, 오남이는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선생님 말처럼 동생의 불행에 대한 잘못이 오롯이 자기의 것이라고 여겨졌다. 누구도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없었다.


  좌절감이 폭발한 막내는 가족들에게 형을 집에서 내 보내라고 소리를 질렀다. 왜 누구도 어린 막내와 아직 어린 오남이 사이에서 중재하지 못했을까, 아니 중재하지 않았을까. 오남이는 소리를 지르는 동생을 피해 집을 나가 논두렁을 서성이다가 동생이 잠들고 나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당연히 자기 죄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여기는 중이었다.


  어린 동생을 돌보게 하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떠넘긴 어른, 성급한 진단으로 돌이키기 힘든 죄책감을 심어준 어른, 분노한 어린아이와 죄책감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를 돌보지 않은 어른. 어른이 왜 어른답지 못했을까.





Thanks to Limor Zellermayer i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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