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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May 10. 2024

너무 친절했던 친구

덕분에 시험공부를 하나도 못했다

"안녕, 나는 시은이라고 해. 임시은."

"반가워, 나는 주연정이야. 우리 둘다 이번에 전과했어."

"아, 안녕. 잘부탁해."


  대학 2학년, 새학년이 되니 못보던 아이들이 인사를 해왔다. 이 두 사람은 1학년을 다른 과에서 보내고, 이번에 전과를 했는데 쾌활한 성격이 처음부터 좋아보였다. 우리 셋은 금방 친해졌고 다른 친구들 두세명이 더 붙어서 패밀리를 이뤄 캠퍼스에서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특히 나는 연정이와 친했는데, 연정이는 키가 크고 날씬했으며 짧은 곱슬머리가 잘 어울렸다. 우리는 거의 날마다 술을 함께 마셨고 대화가 잘 통했다. 연정이와 나는 서로를 베스트 프렌드라고 불렀는데 진짜 친구 이상으로는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 패밀리는 같은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아서 시험공부도 도서관에서 함께 했었다. 나는 주로 벼락치기로 시험을 치렀다. 시험기간에는 집에도 잘 가질 않고 도서관에서 밤을 새며 시험공부를 했다. 그렇게 시험을 보고 잠깐 과방같은 데서 쪽잠을 자고 다시 도서관에 갔다. 집에는 잠깐 들러서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게 전부였다. 시험기간이라 힘들지만 더 많은 시간을 패밀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으면서도 시험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싫었다.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는데, 시험기간이라고 아르바이트를 쉴 수는 없었다. 연정이는 내 자리를 맡아주었고, 나는 그 자리에 다음날 시험보는 과목의 전공책을 올려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처음에는 일이 끝나면 바로 도서관으로 올 생각이었다. 혹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전공책이 도서관에 있으니 시험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올거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일이 끝나고 나니 학교에서 바로 일하러 간터라 집에서 좀 씻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학교보다는 집이 일하는 데서 더 가깝기도 했다. 결국 나는 집에 오게 되었고, 잠을 못자서 고단한 상태인데다 뜨거운 물까지 끼얹고 나니 몸이 나른해졌다. 잠시만 쉬었다 나가자는 생각에 몸을 살짝 기댔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자기혐오의 고함을 치며 가방을 챙겼는데, 하마터면 시험시간도 그냥 자느라 놓칠 뻔 했다. 그 와중에 시험엔 늦지 않는다는 긍정의 마음을 갖는 내게 더욱 진절머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잘하면 한시간은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을 쳐본 사람은 다들 알 것이다. 시험보기 직전의 시간이 가장 집중력 높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급히 도서관에 도착해서 내 자리에 가서 보니 이미 패밀리들은 시험을 치는 강의실에 간 것 같았다. 문제는 친구들 뿐 아니라 내 전공책도 같이 없어진 것 같았다. 연정이에게 전화해 물어보니 연정이는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무척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강의실로 갔다. 그리고 패밀리가 있는 곳의 빈 자리에 앉았는데, 시은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나에게 왔다. 내 하드커버 전공책을 들고.


"야, 내가 너 책까지 챙겨서 왔다. 여기~♡"

"아 고마워. (너였구나...)"


내 책을 들고 오느라 무거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절이 마냥 고맙진 않았다. 비록 시험공부는 못했지만 패밀리들이 서로 이부분 중요하다고 시험에 나올거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주워들으며 간신히 몇 문제는 풀 수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 절대 시험기간에 집에 가지 않겠다고. 왜 미리 시험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안했는지 모르겠다. 근본적인 문제는 평소에 시간이 많을 때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말이다.

  





Thanks to Wonderlane i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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