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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Aug 19. 2024

분노하는 이유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사람에게는 태생적으로 공정함을 추구하는 기질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인간의 기본 감정 중 하나인 분노는 불공평한 상황에 대한 메세지를 담은 감정이다. 공정함의 기준과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상황마다 분노하는 사람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의 기준을 강요당한 기억이 있다. 너무 만연해서 당연히 그게 맞다고 세뇌당했지만 친척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을 때, 동생이라는 이유로 항상 형의 절반만 받았었다. 심지어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조차 받지 못했었다. 모든 친척 어른들이 그랬다면 당연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겠지만, 이 규칙은 친가쪽에서만 적용되고 있었다. 외가에 가면 모든 아이들이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에 따라) 똑같은 금액을 받았다. 처음에는 분노까지는 아니어도 불공평함에 대한 불만은 가지고 있었다. 명절 때 친가와 외가를 모두 갔기 때문에 당연히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혼나는 경우에도, 평소 장난을 더 많이 친다는 이유로 형보다 한마디씩 더 혼났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형을 나무랄 때는 부드러웠던 말투가 나를 향할 때는 더 날카로워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형과 게임을 하며 놀다가 내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게임이 종료된 적이 있었다. 형은 당연하게도 내가 건드려서 그 판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억울한 마음에 함께 대들고 싸우며 내가 하지 않았다고 소리쳤지만 엄마는 형에게 대드는 나를 혼내기 시작하셨다. 분노를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을 잘 몰랐던 어린 아이가 형에게 '너'라고 말했다는 이유가 혼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엄마는 게임을 하다가 서로 오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형에게 '너'라고 말하는 것은 안된다고 하였다.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먼저 오해받고 맞은 건 난데, 왜 나는 형에게 맞았을 뿐 아니라 엄마에게까지 혼난단 말인가. 이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완전한 공평함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형에게도 한마디 나무라는 말을 했더라면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며 억울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실 형이 먼저 오해하고 때리지 않았다면 형에게 '너'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 알지도 못하면서 동생을 때렸냐고 한마디만 해줬으면 됐을걸. 고작 두 살 많은 형에게 '너'라고 한 것이 오해 때문에 주먹질을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인지 이해는 안됐다. 아마 오래 전부터 형과 차별적 대우를 받았던 경험들이 쌓이면서 스스로 해석하지 못한 감정의 에너지를 분출시킨 하루였던 것 같다. 


  내 마음을 풀어준 것은 의외였지만 우리 형이었다. 때려서 미안하다며, 자기가 잘 몰랐었다고 사과를 하는 형 덕분에 응어리진 마음이 풀렸다. 형은 게임기를 내밀면서 앞으로 먼저 하라고 건네줬는데, 형제 간 싸움은 당시는 치열하긴 해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다시 풀리는 것 같다. 


  




사진: UnsplashAlexander D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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