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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Sep 15. 2023

결국 그녀는 중요한 한마디만을 새겨 넣었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중에서

들춰보기 꺼려지는 역사가 있다. 노예제도가 그중 하나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고 믿기 어려운 사실이기도 하다. 자신이 죽인 딸의 비석에 한 단어를 새긴 흑인여자가 있다. 그 단어는 ‘빌러비드(beloved)'이다. 작가 토니 모리슨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 젊은 엄마 마거릿 가너는 노예로 살다 도망쳤고 그녀는 주인의 농장으로 자식들을 돌려보내느니 차라리 그중 하나를 죽여버린(그리고 나머지 자식들도 죽이려고 한) 혐으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재판은 도망노예를 소유주에게 송환하도록 한 도망노예법에 맞서는 투쟁에서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그녀의 온전한 정신과 뉘우침 없는 태도는 신문뿐만 아니라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녀의 생각은 매우 단호했다. 또한 그녀의 발언으로 판단하건대, 지성과 잔혹성, 그리고 자유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불사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에는 유령이 등장한다. 흑인 도망노예인 엄마의 손에 죽은 아이이자 묘비에 ‘빌러비드’라고 쓰인 아이의 유령이 엄마에게 나타나고 그녀의 삶을 흔든다. 그 유령은 엄마에게만 나타나는 정신착란과 같은 것도 아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엄마의 딸, 이웃의 흑인들에게도 그 유령의 존재는 보인다. 작가가 논픽션을 모티브로 쓴 픽션에 유령이라는 존재를 심어놓은 것은 노예제가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노예로 살았던 이들의 가슴에 유령처럼 도사리는 음침하고 떨쳐버릴 수 없는 공포와 상처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더럽혀져서 자신을 좋아할 수도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게 되었던 그들의 삶은 마치 유령과도 같은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읽는 내내 차올랐던 감정이 결국은 책을 덮었을 때  눈물로 터져 나왔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중에서


그녀가 직접 골라 무덤처럼 두 무릎을 활짝 벌린 채 발끝으로 기대섰던 비석. 손톱처럼 분홍빛이 감돌고 흩뿌려진 돌가루가 반짝이던.  십 분이오. 남자가 말했지. 십 분을 허락하면 공짜로 해주겠소.

 네 글자를 새기는 데 십 분. 십 분을 더 허락했더라면 ‘디얼리’란 글자도 새길 수 있었을까? 그때는 남자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못했지만,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는 미련이 아직도 그녀의 마음을 괴롭혔다. 이십 분, 아니 삼십 분이었다면 장례식에서 들은, ‘디얼리 빌러비드(참으로 사랑하는)’라고 한 목사의 말(사실 목사가 한 말은 그게 다였다)을 전부 아기의 묘비에 새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중요한 한마디만을 새겨 넣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비석들 사이에서 비문 새기는 사내와 그 짓을 하면서, 사내의 어린 아들이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에는 아주 오래된 분노와 함께 새롭게 눈뜬 욕망이 어려 있었다. 그 정도면 분명 충분했다. 또 다른 목사나 또 다른 노예제 폐지론자, 그리고 혐오로 가득 찬 마을 사람들에게도 대답이 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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