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셰발, 페르 발뢰의 '사라진 소방차'를 읽고
동일 인물이 나오는 시리즈 소설을 읽는 재미는 여기에 있다. 엄지와 검지로 코를 문지르는 주인공의 행동이 친숙해지고 주인공이 왜 찬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감기를 달고 사는지 납득이 가게 된다(주인공은 입이 짧고 식욕도 없으며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아파도 좀처럼 약은 먹지 않는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주인공의 신변의 변화에 관심이 가고 내가 읽었던 이전 시리즈의 사건을 언급하면 반갑다(나도 그 이야기에 끼워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연인 관계인 마이 셰발, 페르 발뢰의 공동작업으로 1965년 첫 작품을 내고 10년 동안 총 10권의 범죄소설을 썼다.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라고도 한다.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는 주인공에 맞먹는 비중을 가진 등장인물들에 있다. 콜베리, 군발트, 뢴, 멜란데르는 마르틴 베크의 동료경찰로 각자의 개성과 나름의 업무방식이 있다. 현장검증, 탐문, 조사를 나누어하고 모두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추론을 한다. 함께 십여 년을 동료로 지냈지만 서로 다 친한 사이는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마르틴 베크와 콜베리는 짝꿍이고 뢴은 무식한(콜베리의 표현) 군발트를 감싸준다. 한번 본 것은 잊지 않는 멜란데르는 관계에 있어서 중립인 듯 보이고 안 보이면 화장실에서 찾으면 된다.(장에 문제가 있는 듯…) 다들 베테랑 수사관들이라 경찰로서의 감은 있지만 요행은 없다. 그저 성실히 묵묵히 노동을 하듯 수사를 한다.
몇 주 전부터 한주에 한 권씩 읽기 시작해서 이번 주에는 5번째 시리즈인 ‘사라진 소방차’를 읽었다. 여전히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더디고 셜록홈스가 아닌 경찰들은 무능하고 무력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경찰들의 집요함과 끈질김이 투입된 결과 조금씩, 서서히 진상이 밝혀지고 사건은 해결된다. 마지막 장면에 마르틴 베크의 짝꿍 콜베리가 칼에 맞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지만 다음 시리즈에서 콜베리에게 일어난 사고가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해프닝으로 언급될 것인지 궁금하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북유럽 범죄소설의 고전이라고 불리는데 그에 걸맞게 국내에 출판된(출판사 엘릭시르) 책은 매 권마다 이 시리즈를 사랑하는 소설가들의 서문으로 포문을 연다. 나는 일부러 서문을 읽는 것을 가장 마지막으로 미룬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찬사가 가득한 서문을 천천히 음미하며 동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바로 그 말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서문을 읽었다면 너무 무조건 긍정이라서 의심을 품는 것도 정당한데……이야기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남들의 부러움을 살 테고……아주 금방……행복한 독자가 될 것이다. 이보다 나은 책은 어지간해서 만나기 힘들다. 아닌 게 아니라 나와 늘 함께했던 책이니 믿으시라(사라진 소방차 서문*중에서)
* 레이프 페르손 : 스웨덴 범죄학자이자 추리소설가. 통렬한 블랙 유머가 독보적인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