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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Nov 14. 2024

수영장

수영장을 처음 간 것은 12월이었다. 탈의실 신발장은 들어가려는 사람이나 나오려는 사람 중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통행이 가능했다. 탈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우웽’하는 헤어 드라이기 소리가 들렸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는 벌거벗은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신발을 챙겨 들고 사물함을 찾으며 가는 통로는 좁았다. 두꺼운 겨울 잠바를 입은 나와 아이들은 팔을 최대한 앞으로 모았지만 할머니들과 자꾸 부딪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옷을 벗는데 둘째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내 옆으로 붙어 선다. 아이의 얼굴위치에 할머니의 엉덩이가 쑥 나왔다 들어간다. 허리를 굽혀 옷을 입는 중이시다. 어린이 강습시간이었기에 아이들도 보이지만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할머니들이다. 


첫날 수영을 하고 온 나에게 남편이 어땠냐고 물었다.

‘도떼기시장 같아. 할머니들이 바글바글하고 시설은 좁고 낡았어. 수영장 물은 너무 차고... 싼 게 비지떡이지 뭐.’ 집에서 가까운 수영장은 어린이 전용수영장이라 강습비가 비쌌다. 두 아이를 보내기에 금액이 부담스러웠는데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네 수영장에 비하면 가격은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매월 수강생을 선착순으로 받기 때문에 당일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야 수강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남편이 새벽 6시에 일어나 수영장에 가서 두 아이의 수영강습 신청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1년은 무조건 다닐 테니 그렇게 알라고 엄포를 놓은 터였지만 차가운 수영장물 때문에 입술이 보라색이 된 둘째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아이가 수영강습을 받는 동안 나는 일일 이용료를 무인 발권기에서 발급받아 함께 수영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수영장은 총 6개의 레인이 있었다. 그중 가장 오른쪽의 2개의 레인은 강습용이고 가장 왼쪽에 있는 한 개의 래인은 ‘걷기용 레인’이었다. 나머지 3개의 레인에서는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걷기용 레인 집중되어 있다. 한 무리는 일렬로 또는 2열로 수영장 끝에서 끝으로 걷기도 하고 통통거리며 뛰기도 하고 게걸음 걷듯 옆으로 걷기도 한다. 또 다른 한 무리는 레인의 끝에 삼삼오오 모여 제자리 뛰기를 하거나 한 발을 수영장 바깥의 모서리에 올려놓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강습을 받는 1시간 동안 나는 걷기 레인에서 걷다가 옆 레인으로 넘어가서 수영을 하거나 하는 것을 몇 번 반복하다 40분쯤 되면 수영장 밖을 나온다. 


샤워장 내에는 큰 글씨로 ‘샤워장에서 제~~~발 소변을 보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제발을 강조한 것을 보니 좀처럼 개선이 안 되는가 보다. 탈의실의 거울에는 ‘드라이기를 머리를 말리는 것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마세요’라는 안내문도 있다. 그 다른 용도란 이런 것이다.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다가 어느 정도 마르면 한 다리를 들고 아래를 말리는 것 같은. 발가락을 말리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운동을 싫어하고 물도 싫어하고 무엇보다 추위가 싫은 나에게 수영장 가는 유일한 낙은 샤워실 옆에 있는 ‘체온유지실’에 가는 것이다. 일종의 한증막 같은 곳인데 계단식 의자가 두 단이 있고 최대 5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다. 벽면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10분 이상 있지 맙시다. 오일이나 요거트를 바르고 들어가지 맙시다 등등의 안내문이 있고. 모래시계가 매달려 있다. 한쪽 구석에는 실내 온도를 유지시키는 화로가 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할머니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길가에 심어놓은 호박이 열려서 한 개는 따서 길가에 올려두고 한 개는 따서 집에 가지고 갔는데 다음날 보니 길 가에 올려놓은 호박이 없어졌더라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가 이상하게 재미있다. 찰진 전라도 사투리를 듣는 재미도 있고 단조로운 일상의 적막함이나 외로움과 함께 고요함과 평화로움도 느껴진다. 같은 이야기라도 할머니들의 말에는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할머니들의 벗은 몸을 본다. 인생의 내리막길을 지나고 있는 그들의 몸은 아래로 향해 있다. 어깨도, 살도 무거운 듯, 버거운 듯 가라앉아 있고 다리도 휘어져있다. 나는 할머니들도 여자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확인한다. 샤워 중에 피부에 좋다는 것을 서로 나눠 쓰기도 하고 다이어트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도구를 사용해서 얼굴을 열심히 문지르시기도 하고 살이 빠졌다는 말을 듣는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서린다.


수영장 시설이 있는 건물의 문을 열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5개의 의자가 나란히 붙어있다. 3줄로 되어있는 의자는 건물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다. 터미널의 대합실 같은 모습이다. 이상한 배치라고 생각했는데 수영장의 주 이용자인 고령자를 위한 설계였다. 그곳은 실제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대합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앉은 곳에서 정면으로 마을버스가 도착하는 것이 보인다. 직접 운전하거나 누군가 데리러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마을버스를 이용해서 수영장에 오시는 듯했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대합실 같은 곳에 앉아계신 할머니들을 본다. 샤워실에서 보는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알몸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민주적인 것‘으로 귀족사회는 나체의 묘사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두리뭉실한 이미지가 옷으로 인해 개성이 드러난다.


수영장을 다닌 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는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할머니도 몇몇 생겼다. 내가 '체온 유지실'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고 수영장 물에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싫다. 아이들은 이제 접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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